현지 학교 선택 그리고 이유
첫째딸과 팍상한 배를 타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왜 필리핀을 선택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엄마가 이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번 선택을 계기로 엄마는 진짜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까지.
그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 스스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이제 정말 엄마가 되었구나.
아이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만이 엄마의 역할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이가 갈 바를 모를 때 어른인 내가 앞에서 끌고 가기보다는, 아이가 의지할 수 있도록 옆에서 협력하고 조력하는 자리, 아이가 불안하지 않도록 “괜찮다, 네 편이 여기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것.
그렇게 아이에게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해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사춘기 아이에게 “괜찮다. 할 수 있다.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불가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물론 둘째와 막내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첫째딸에게 쏟은 이 마음이 결국은 아이들 모두에게도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아직 동생들은 어리다. 이 아이들에게는 지금, 행복한 시간만 허락해 주면 될 것 같다.
무섭지 않게, 겁내지 않도록 “잘하고 있어”라고 응원해 주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함께 하고 어루만지고 달래다 보면, 어린 동생들도 이 마음을 언젠가는 분명히 알게 될 거라 믿는다.
무엇보다 첫째아이에게 지금 이 시점에 가장 필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자리에서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해 주는 것. 그 방법이 혹시 틀렸을지라도,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아직 알지 못하니까.
많은 선교사님들이 다양한 조언을 해주신다. 대학을 위해서는 여기가 좋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이곳이 낫지 않겠느냐, 영어 공부를 위해서는 또 다른 지역이 더 좋다…. 그 말들이 틀리지 않다는 것도 알고, 분명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우리의 형편으로는 불가능한 선택지도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로컬 사립학교, 따갈로그 수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정리해 본다.
첫 번째는 안정감이다. 내가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도움을 구할 사람이 있고, 학교와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있는 곳. 아이들이 흔들릴 때 엄마까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교회다. 다시 돌아올 때 나는 한인교회를 떠올리며 돌아왔다. 집과 학교가 교회와 가까웠으면 했던 이유는 단순한 편의 때문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 다시 예배와 섬김을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본교회를 떠나오며 그동안 이어오던 섬김의 자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하나님께 계속 묻고 있었다. 한인교회는 새롭게 선택한 곳이라기보다, 이미 과거에 영적으로 공급받았던 자리였고, 다시 돌아와 섬겨야 할 곳으로 마음을 주신 자리였다. 설명으로 다 할 수는 없지만, 이곳은 사람이 좋아서 선택한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명과 소명으로 다시 부르신 자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곳이었다.
그냥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마음을 따라 다시 서게 된 한인교회였다.
세 번째는 필리핀이다. 나는 필리핀을 사랑한다. 아이들이 영어도 잘 했으면 좋겠지만, 필리핀 언어인 따갈로그도 자연스럽게 익혔으면 좋겠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쓰실 날이 있을 것을 믿고, 선교의 자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현지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 문화를 직접 살아보면, 정체성에 대한 걱정보다는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훨씬 풍성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네 번째는 진로와 ‘보상’에 대한 생각이다. 여기서 고생했으니 대학을 잘 가야 한다는 보상, 힘들었으니 무언가를 가져가야 한다는 보상. 그런 마음으로 진로를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충분한 조건과 혜택 속에서 이곳에 왔다. 그래서 보상으로 얻는 결과가 아니라, 실력으로 서는 법을 스스로 이해하길 바란다. 대학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동시에,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닌 세상으로 아이들의 시야가 넓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생각이 나면, 이 기록은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지금은 이 정도만 적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