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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와한 출산기 4

우리 둘 다 눈치 챙겨!!!!

by 세잎

고귀하고도 거룩한 출산의 과정.

진통이 시작되어 자궁문이 10cm까지 열려야 하는 분만 1기부터 마지막 태반이 나오는 분만 4기까지 초산모 기준 총 약 14시간이 소요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D-DAY 출산당일


15분 간격이던 통증은 드디어 10분 간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유튜브 등에서 찾아봤던 출산후기 영상들처럼 몸을 베베꼴정도로 아픈 진통이 아니었기에 병원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고민만 할바에 그냥 병원 가서 물어보고 오자!


남편과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출산가방 없이,

산책하듯 걸어서......


병원을 걸어가면서도 남편과 나는 "이러다 진짜 오늘 룰루 보는 거 아니야?" 우스갯소리를 했고, 병원에 도착해서도 분만실이 아닌 일반 외래 진료실 앞에 서서 접수를 기다렸다.



- 외래 진료실(접수대) -

오전 11시


"어떻게 오셨어요?"

"아 진통이 와서요."

"(살짝 놀라시며) 누구.. 아 본인이요? 몇 분 간격으로 진통 오셨나요?"

"10분이요...! 많이 아프진 않았는데 시간이 너무 규칙적이어서요."

"아 네 과장님 진료 한번 보실게요."


나는 진통이 오면 바로 분만실 앞에 가서 응급 인터폰을 누르고 남편과 애틋하고도 아련하게 '이따 만나'를 외치며 위대한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이며 덤덤하게 분만복을 갈아입으러 들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외래 진료실 앞에서 다른 산모들과 함께 대기하며, 환자 대기 순서 화면에 "응급"이 써져 있는 내 이름을 보고 진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응급"인데 왜 이렇게 "응급"이 아닌 거 같지.


내 이름이 호명되고 초음파와 내진을 받는데 내진을 하시던 선생님 첫마디는 "오우"였다.


"4cm 열렸네. 바로 입원하셔야겠습니다. 초산이시니까 아마 오늘 밤에나 아기 볼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다음날 될 수도 있고요. 어우 그런데 아직 괜찮은가 보네. 원래 이 정도면 그렇게 못 웃어요. 지금처럼 긴장하지 말고 이따 잘해봅시다."


이때 생각했다. 아 그냥 통증 15분 간격일 때 바로 병원 와볼걸.




- 분만실 -

오전 11시 30분

우리는 출산가방도 없이 똘래똘래 걸어왔었기에 남편을 집으로 보내 출산가방을 챙겨 오게 했고, 나 혼자 분만실로 들어가 분만 준비를 시작했다. 결국 그 애틋한 "이따 만나"를 하지 못하고 혼자 씩씩하게 분만실로 들어갔다.

(*내가 있었던 병원은 진통, 분만, 회복을 보호자와 함께 모두 한 공간에서 실시하는 가족분만실이었다.)


그리고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기 전에, 가져온 초코바를 (몰래) 꺼내 먹었다. 진통을 참아내며 밤까지 아무것도 못 먹을걸 대비해 미리 먹어둘 초코바를 챙겨놓은 게 생각난 것이다.

출산가방은 안 챙겨 왔으면서 출산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힘 낼 각오로 초코바를 챙겨 오다니. 나원참.


견과류 박힌 초코바를 야무지게 씹어먹고는 룰루에게 말했다.


"룰루야. 우리 드디어 오늘이다. 엄마가 기가 막히게 룰루 신호 알아채릴테니까 룰루도 엄마가 힘줄 때 눈치채고 바로 뽝 힘차게 나와줘야 해. 우리 둘의 기가 막힌 합으로 열 달 기나긴 여정의 피날레를 장식해 보자!!

우리 둘 다 눈치 챙겨!!"


준비를 마치고 나름 비장하게 분만실로 향한 나는 내 출산과정 통틀어 나에게 가장 큰 당혹감과 고통을 준 친구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서 와. 수술용 대바늘은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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