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 봉지 속에 별사탕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중에서

by 세잎

그건 마치 건빵 봉지 속에서 별사탕을 꺼냈을 때의 기분 같은 것.

삶은 대체로 퍽퍽한 건빵 같은 일상이 이어지지만,

그 속엔 또한 별사탕 같은 순간들이 숨어 있다.

그러니 실망 말고 손가락을 잘 더듬어서 별사탕을 찾아낼 것.

비록 건빵 건빵 건빵 건빵 다음에 목 메일 때쯤 별사탕이더라도,

그렇게 맛본 행복을 잘 기억해 둘 것.


-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중에서




추억의 과자.

너에게 추억의 과자는 무엇이니? 아, 이 질문을 받기엔 지금 너는 아직도 한창 과자를 즐겨 먹는 어린 학생일 수도 있겠구나.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이 책에 나온 '건빵'은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과자'라고 불리는 옛날 과자야. 엄마보다도 아빠를 비롯한 남자들이 더 추억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건빵을 보통 군대에서 많이 먹거든. 엄마도 사실 건빵을 즐겨 먹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건빵이 어떤 맛인지는 알아.


건빵 하면 단연코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바로 '별사탕'이야. 별사탕은 또 뭐냐고?


건빵봉지를 열면 작고 새하얀 별처럼 생긴 사탕이 들어있어. 그걸 별사탕이라고 하는데 건빵의 개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 과자 봉투에 적혀있는 이름이 별사탕이 아닌 건빵이니 뭐 별순 없지만 엄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사실 건빵보다는 구석구석 숨어있는 작은 별사탕을 더 좋아해. 투박하고 퍽퍽한 건빵보다는 예쁘고 달달한 별사탕이 더 맛있거든.


그래서 건빵을 먹을 때면 주인공인 건빵보다는 작은 별사탕을 찾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건빵 봉지 속 별사탕을 찾으면 좋아했을까?


퍽퍽한 건빵을 먹다가 목이 메어 그만 먹을까 싶다가도 우연히 발견해서 먹은 별사탕의 달달함을 잊지 못해서 이지 않을까.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월, 화, 수, 목, 금, 똑같은 하루의 일상이 반복되지. 아침에 출근(혹은 등교)해서 똑같은 일상을 보내다가 저녁에 퇴근(혹은 하교)을 하지. 간혹 그날그날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 이벤트 마저 기분 좋은 이벤트보다는 해결해야 하는 예상치 못한 문제일 때가 많아.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지겨울 수도 즐거움이 없을 수도 있어. 그저 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별사탕 같은 희망이 있어. 바로 주말이야. 월화수목 퍽퍽한 평일을 연달아 보내도 주말을 앞둔 금요일은 으레 설레기 마련이니까. (물론 주말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야.)


단 이틀이지만 그 이틀의 주말을 기다리며 5일이나 되는 평일을 힘낼 수 있는 것 같아.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삶 속에는 마치 주말처럼 혹은 건빵 속 별사탕처럼 기대할만한 무언가가 더 많이 숨어있다고 생각해. 단지 그걸 잘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갈 뿐이지.


아주 평범한 일도 내가 특별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니까. 주인공이 아닌 별사탕을 건빵보다 더 멋진 존재로 만든 것처럼 말이지.




엄마에게도 별사탕 같은 삶의 순간들이 참 많이 있었는데, 그중 유독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었어. 약 3년 전쯤의 일이야.


한창 3학년 입시 상담을 해주고, 수업자료를 만들고 퇴근을 하느라 퇴근시간이 이미 훌쩍 지났을 때였어. 직장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야근한 날이었지.


그 당시 엄마가 근무하던 학교와 집까지의 거리는 차로 약 40분 거리였어. 40분은 안 막힐 때 기준이고, 출퇴근시간 10분이라도 늦게 출발하면 꽉 막힌 고속도로에 갇혀 기본 1시간은 거뜬히 넘어갔지. 매일 아침 막히는 고속도로를 지나오느라 하루 일과가 시작도 되기 전에 이미 진이 빠질 때가 많았단다.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로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가는 길, 그 피로를 배로 늘려주듯 거북이걸음으로 세월아 네월아 막힌 도로 위를 지나올 때가 많았어.


그럴 때는 '이 고속도로가 원수인가 차가 원수인가 그냥 걸어서 이 도로를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뿐이었어. 하루의 시작과 끝은 늘 막히는 고속도로였지. 그날은 야근까지 하고 퇴근한 날이니 안 그래도 퍽퍽하고 힘들었던 하루, 야근으로 인해 그 퍽퍽함이 최고조에 이르렀어.


'집에 가면 난 녹초가 되겠구나.' 하고 이미 내 몸상태와 마음상태를 예견하며 시동을 걸고 출발했어. 출발할 때는 분명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나니 이미 해는 다 내려가고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한 거야. 겨울이 다가오던 때라 그런지 금세 어둠이 찾아오더라. 고속도로 위를 한 10분 달렸을까. 도로 위의 풍경은 그저 나와 같이 퍽퍽하고도 분주한 하루를 보낸 후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차들 뿐이었어.


어느샌가 주변에 다른 차들도 점점 없어지고 짙어지는 어둠에 무서움마저 생기려는 찰나,

그 순간, 그 깜깜하고도 무미건조한 도로 위에서 양 옆의 가로등들이 타다닥 일제히 켜지는 거야.


출처 : 블로그 <꽃피는 송이네>


마치 내 자동차의 속도에 맞춰서 누군가 딱딱 스위치를 켜 준 것처럼 말이야. 달리는 차 속도에 맞춰서 일제히 켜지는 가로등 불빛은 정말 장관이었어. 마치 스포트라이트가 하나둘씩 켜지는 무대 위의 조명 같기도, 깜깜한 밤하늘의 별빛 같기도 했지.


평소보다도 더 힘들었던 하루. 한껏 지친 몸을 차에 싣고 서둘러 집에 가던 내게 생각지 못한 장면이 필름사진처럼 찰칵 찍히는 것 같은 순간이었어. 그 순간 그날의 피로도, 한주의 힘듦도 싹 잊히는 듯했단다. 2년도 훨씬 지난 일인데 밤운전을 할 때면 항상 그날의 밤하늘이, 그날의 가로등 불빛이 여전히 선명하게 떠오르곤 해.


정말 별거 아닌 일인데 말이야. 그저 도로 위의 가로등 불빛일 뿐인데. 그 불빛이 피곤함과 힘듦으로 가득 찼던 내 하루를 한순간에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낭만적이고 멋진 하루로 바꿔버렸어. 그날 이후로 가로등 켜져 있는 고속도로 밤운전을 좋아할 정도로 말이야.





평범한 일상에서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찾아내는 건 그래서 중요해. 그 하루를 180도 다르게 만들어 줄 수 있거든. 똑같은 일상이라도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루하고 별 볼 일 없는 하루로 기억될 수도, 누군가에게는 단 한 가지 요소만으로도 낭만적인 하루로 기억될 수도 있어.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주 소소하지만 일상의 그 작은 행복들이 모여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거야. 예고되지 않은 우연한 행복이 어떨 때는 더 큰 재미와 기쁨을 주기도 하니까 말이야.


건빵 봉지 속에 있는 별사탕이 사실 정말 별거 아닌 작디작은 사탕일 뿐이잖아. 건빵으로 가득 찼던 퍽퍽한 입안이 별사탕 덕분에 달콤한 향으로 가득 차고 이내 미소가 띠어지는 것처럼. 너의 일상에서도 별사탕처럼 작지만 반짝이는 행복의 순간들을 하나둘 찾아가길 바라.


바로 오늘이 그 별사탕을 찾은 하루일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