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연애 때부터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듣는 이의 기분이 좋아지는 예쁜 언어를 그만의 따뜻한 온기가 담긴 억양으로 선물처럼 전달해주곤 했다.
결혼 후에도 그의 선물 같은 언어는 여전했으며, 부모가 된 지금, 그의 예쁘고 따뜻한 언어는 우리 아들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남편이 나와 아이에게 하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간혹 놀라기도 한다. 그는 공감적인 사람이기보다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기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극 T 성향의 사람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아주 다정한, 아니 아주 달달한 T랄까...... 공감보다는 이성적 사고가 먼저 튀어나오지만 끊임없이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노력형 T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언어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덕분이에요."라는 말이다.
남편은 습관처럼 "덕분이죠."라는 말을 내게 해주곤 했다. 기분이 좋을 때 뿐만 아니라, 사람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 날씨와 환경을 이야기할 때에도 그는 그 모든 좋은 일을 아내인 "나의 덕"이라며 말해준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내가 특별한 뭔가를 해주지 않아도 그저 내 존재 자체를 감사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오빠, 오늘 우리 아들 떼도 안 부리고 100점 만점에 200점이죠 너무 예뻐요, 우리 아들."
"맞아요. 너무 예뻐요. 세잎이(필명) 덕분이죠~."
"오빠, 오늘 일하고 와서 고생했을 텐데 아들 놀아주고 집안일까지 너무 고생했어요."
"아니에요. 세잎이가 더 고생했죠. 당신 덕분이에요."
"오빠, 오늘 여행 가기 딱 좋은 날 아니에요? 날씨 장난 아니에요 너무 좋아요!!!"
"세잎이가 날짜를 기가 막히게 골랐어요. 세잎이 덕분이에요."
"에이 이런 거까지 다 내 덕분이래~! 아니에요 오빠 덕분이죠."
"세잎이 덕분이에요."
"아니에요, 오빠 덕분이에요."
가끔 이렇게 서로 "덕분이에요." 배틀이 시작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에게는 습관처럼 나오는 말일지라도, "덕분"이라는 짧은 이 단어는 나에게 큰 위로를 전해준다. 육아 때문에 하루종일 힘들었던 날, 직장에서 힘든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날, 혹은 아무 스트레스도 없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던 날조차도 그의 말 한마디 '덕분'에 나의 하루는 멋진 하루가 된다.
나의 노고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며 위로해 주는 듯한 "덕분"이라는 말. 이 마법 같은 단어가 우리 부부에게 일상이 되어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복한 일상과 기쁜 나날들을 서로의 덕으로 서로의 공으로 돌리고 있다.
이 '덕분'이라는 말의 위력은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 하루이거나 최악의 하루일수록 더욱 빛이 난다.
무언가 아쉽거나 생각처럼 하루가 잘 돌아가지 않을 때, 둘 중 한 사람의 실수로 상황이 점점 안 좋게 변해갈 때, 결코 서로를 '탓'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최악이 되지 않았음을 서로의 '공'으로 돌린다.
사실 나는 아쉬움이 남으면 계속해서 그 아쉬움이 머리에 맴돌고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덕분"이라는 언어 습관이 그런 나를 변하게 해 주었다. 못한 것보다는 잘한 것을 기억하게 하고, 아쉬운 부분보다는 좋았던 부분을 기억하게 되었다.
긍정적 회로를 돌리는 그와, 성찰적 회로를 돌리는 내가 합쳐져 우리는 부정적 상황에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할 때가 많아졌다.
이미 엎질러진 물, 누군가를 탓해서 상황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기에 이럴 때일수록 습관적으로 나오는 "덕분"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상대의 언어로 인해 기분이 안 좋아지면 사람은 더욱 예민해지고 예기치 못한 실수들도 많아질 수 있다. 반대로 사소한 두 글자짜리 단어이지만, 이 '덕분'이라는 말 덕분에, 안 좋았던 상황조차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상황이 오히려 좋아질 수도 있다.
부정적 언어보다는 긍정적 언어를 말하는 것.
차가운 반응보다는 따뜻한 반응을 전해주는 것.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그 누군가의 덕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가장 가까운 배우자에게 주는 우리 부부의 아주 사소한 습관이다.
오늘은 남편 덕분에 얼마나 더 따뜻한 하루가 될지, 오늘은 우리 아들 덕분에 얼마나 더 행복한 하루가 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