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피아노가 치고 싶었나 봐

음대 졸업생, 14년 만에 다시 피아노를 치다.


"쮸리, 이 피아노 어때?"


집사람이 뜬금없이 당근마켓 링크를 보냈다. 내가 한 번씩 지나가는 말로 피아노 치고 싶다고 한 걸 기억한 것이다. 링크 속에는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의 낡은 디지털피아노가 있었다. 그 피아노가 내 마음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2010년 음대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악기사에서 일하는 동생을 따라 서울 신림동 자취방으로 이사를 갔다. 난 항상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땐 집에서, 대학생 땐 학교 연습실에서. 하지만 자취방에는 피아노를 둘 자리가 없었다. 옆집과 바짝 붙어 있어 소음을 잡아줄 만한 공간도 아니었다. 동네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괜찮은 피아노 연습실이 보이지 않았다. 난생처음 언제든 피아노를 칠 수 있던 환경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다. 피아노와 물리적으로 멀어지니 덜컥하고 마음이 내려앉았다. 불안한 마음에 음악 강사로 일하며 모아둔 돈으로 가격이 꽤 나가는 신디사이저 피아노를 구매했다.


신디사이저 피아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좁은 자취방에 업라이트 피아노를 둘 수는 없었다. 꽤 오랫동안 구매 후기를 훑어보며 선택한 신디사이저는 기대 이상이었다. 건반에선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고 이런저런 피아노 소리를 담은 소프트웨어는 훌륭했다. 특히 우아한 스타인웨이 음색은 마치 무대에 올라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감동은 한순간이었다. 신디사이저는 신디사이저일 뿐이지 절대로 어쿠스틱이 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끝에 닿는 건반은 바람에 휴지 한 장이 날아가는 것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업라이트나 그랜드피아노처럼 내가 바라는 대로 소리를 컨트롤하는 건 불가능했다. 우아하다고 생각했던 스타인웨이 음색마저 싸구려 소리로 느껴졌고 나는 괴로웠다. 이 피아노로 베토벤을 치고 스크리아빈을 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따위 피아노를 치느니 안 치고 말지.


결국 3년 만에 신디사이저를 구석에 처박아놓고 옷을 쌓아 놓거나 고양이 캣타워로 썼다. 가끔 술 마시고 피아노가 치고 싶을 때면 쌓아 놓은 옷들을 바닥에 던져놓고 피아노를 치곤 했다. 다음날이면 다시 옷 무더기에 파묻히긴 했지만.




집사람이 방치된 신디사이저를 처분하자고 했다. 키우던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줄줄이 아파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지고 있던 가방, 스피커, 예전에 쓰던 폰을 팔고 마지막으로 신디사이저를 처분했다. 헐값에 팔려가는 신디사이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했다. 편안함을 느끼는 내가 이상했다.


왜 그랬을까. 사실 옷 무더기로 신디사이저를 파묻어 놨을 때도 나는 클래식 피아노를 제대로 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옷더미를 던져 놓을 때 피아노에 대한 마음도 함께 묻었는지 좀처럼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건반에 손만 올리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퇴근하면 침대에 눕기 바쁜 직장인에게는 체력도 시간도 없다면서 '적어도 국산 그랜드피아노 정도는 돼야 칠 마음이라도 생기지'라며 형편없어진 신디사이저만 탓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의욕도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피아노를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었던 게 더 컸다. 오랜 시간 피아노를 안 치며 굳어버린 손끝의 감각을, 다시 무(無)로 돌아간 듯 느껴질 허무함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신디사이저를 처분한 뒤, 바닥에 쌓인 먼지를 치우다가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신디사이저 피아노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피아노를 앞에 두고도 손끝 하나 올려놓을 의욕과 용기가 없던 내가 불편한 것이었다. 나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자 마음이 온전히 가벼워졌다. 더는 이 집안에 피아노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을 게 확실했다. 혹시라도 피아노가 치고 싶은 날이면 연습실 좀 빌려서 뚱땅거리고 오지 뭐.


실제로 1년이 지나도록 피아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연습실에 가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런데 집사람이 뜬금없이 ‘쮸리, 이 피아노 어때?’하고 보낸 당근 링크를 보고는, 그 링크 속에 정말 말도 안 되는, 듣도 보도 못 한 브랜드의 7만 원쯤 되는 64키 중고 디지털피아노를 보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랬을까, 그 말도 안 되는 피아노를 보자마자 완전히 버렸다고 생각한 피아노에 대한 마음이, 이젠 남아있지 않다고 느꼈던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단 의욕이 마구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난 생각했다.


‘클래식 피아노를 치려면 88키가 다 있어야 해. 집사람이 추천한 건 아웃. 중고라도 터치감이나 소리가 예상되는 수준의 브랜드로 가려면 야마하 정도는 돼야지. 신디사이저나 스테이지 키보드는 너무 가벼우니까 콘솔형이어야 하고 보기에도 좋게 유광이었으면 좋겠어.’


난 나름의 조건을 세우고 당근에 올라오는 모든 중고 디지털 피아노를 검색하고 뒤져보았다. 그러다 올라온 지 3일 된 40만 원짜리 디지털 피아노가 눈에 들어왔다. 88키 야마하 콘솔형 유광 디지털피아노. 이거였다.


다음날 회사에 반차를 쓰고 집사람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뚫고 판매자 집에 달려가 피아노를 실어 왔다. 주차장에서 집까지 집사람과 낑낑대며 피아노를 옮기는데 어찌나 설레는지. 웃음이 자꾸 실실 새어나왔다.


집사람이 전날 나와 고양이들의 동선을 고려한 최적의 집 구조를 미리 잡아둔 덕에 피아노를 집 안으로 들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캣타워, 캣휠, 방석, 장난감, 고양이 물품으로 가득했던 투룸에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피아노 설치를 마치곤 아쉽지만 출근부터 했다. 회사에 앉아있는 동안 머릿속은 온통 피아노 생각뿐이었다.


‘뭘 쳐보지? 입시곡은 몸이 기억하니까 입시곡으로 당분간 손을 풀어볼까? 아, 브람스 파가니니도 치고 싶었어. 아니면 반성하는 마음으로 하농이랑 체르니를 좀 칠까? 아냐. 하농이랑 체르니 칠 시간이 어딨어? 쳐보고 싶던 베토벤이랑 스크리아빈부터 쳐볼 거야!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피아노 치고 싶다.’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퇴근하자마자 외출복을 입은 채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 음색도, 터치감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책장 깊이 숨겨놨던 악보들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그토록 다시 치고 싶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악보를 꺼냈다. 돌고 돌아 내 음악과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두 마디를 치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손가락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뻣뻣해져 돌아가지 않았다. EBS 어린이 프로그램 인형이 더 잘 움직일 판이었다.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하농 39번을 펼쳤다.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기본 중의 기본인 C 메이저 스케일(도레미파솔라시도)조차 안 쳐지다니. 네 살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들인 돈이 얼만데.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 현실에 매몰될 시간이 없었다. 매몰되어있을 시간에 연습해서 감각을 돌려놓는 게 급선무였다. 천천히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치며 생각했다.


‘어쩌겠어? 내가 버려버린 피아노인걸. 다시 주워 담아야지.’


그 뒤로, 매일 저녁, 쳐보고 싶었던 곡을 이것저것 쳐보며 시간을 보냈다. 굳어버린 손가락의 감각을 되살리는 지루하고 단조로운 연습곡조차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 즐거움이 얼마나 심했냐면, 퇴근하면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생각에 출근길마저 신이 났고 저녁 연습을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다음 날 연습이 기대되서 출근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렇게 피아노를 다시 친지 한 달쯤, 나는 불현듯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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