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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ree Ways Nov 26. 2022

저만 이런거 아니죠?_제주여행 두번째 이야기

오랜만의 비행이 주는 신선함

2020년 1월 24일, 서울에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저의 슬픔은 이날 시작되었죠. 틈만 나면 해외로 짐을 싸서 여행을 떠나던 지마음 작가는 좌절에 좌절을 거듭했습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이 역병은 3년이나 발을 꽁꽁 묶어 버렸으니까요. 그 사이 저는 흔한 제주도도 가지 않고 서울 땅을 꿋꿋하게 지켰더랬습니다.


긴 공백을 깨고 드디어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 날. 그 첫 여행이 3ways와 함께라서 더 설레였어요. 우리는 아침 7시 20분 아시아나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고, 공항에서 6시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원래 약속시간 지키는 것 보면 성격도 보인다고 하잖아요. 비슷할거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저희는 팀 이름처럼 정말 셋 다 약속시간을 지키는 스타일이 다 달랐습니다.ㅎㅎㅎ


아침잠이 없는 지노그림 작가님은 무려 30분이나 일찍 도착한거에요. 성격이 급해 뭐든지 일찍 끝마치고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작가님의 성격을 딱 닮았더라고요. 5시 30분, 단톡방에 그가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울려 공항으로 가고 있는 저희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왜인지 모르게 우리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을 주더라고요.


지금사진 작가님은 아주 정확하게 6시 1분 전에 도착. 섬세하고 정확한 성격 그대로 약속시간도 딱 맞게 지켜주시네요. 늦는 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타이트하게 도착하다 보니 이건 또 이것대로 불안함을 안겨주었더랬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마음 작가는 10분 전에 도착했어요. 무슨 약속이든 늦기 싫어해서 대략 10-20분쯤 여유있게 출발하거든요. 살짝 미리 가서 여유있게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오늘은 지노그림 작가님께 1등을 놓치고야 말았다는 것.ㅎㅎㅎ


어쨌거나 각자 체크인 후에 짐을 보내고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저희는 따로 또 같이 다니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기때문에 각자 할일은 각자 알아서 하는 편입니다. 한줄로 쭉 같이 서지 않고요. 그런데 짐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창피함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말았어요.


체크인을 하고 캐리어를 짐 보내는 곳 위에 올렸는데요. 얼마 되지 않아 소리가 막 울리는 겁니다. 제주에 가서 함께 나눠 마시려고 가방에 와인을 2병이나 담았는데 그것때문에 울린 것일까?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제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고 가방에 무엇을 넣었는지 이것저것 생각회로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정지가 되고 말았죠. 체크인을 돕던 승무원이 물었습니다.

 

"가방에 혹시 뭐 들어있나요? 보조배터리나 넣으면 안되는 물건이 있을까요?"

"아, 네. 보조배터리요..."

"지금 꺼내주셔야 합니다. 보조배터리는 기내에 가지고 타셔야 해요."



아뿔사. 너무 오랜만에 비행이라 보조배터리를 당당하게 캐리어에 넣고 말았지 뭐에요. 그런데 승무원님. 지금 여기서 사람들 다 보는데 캐리어를 열고 보조배터리를 꺼내야 하나요? 승무원님은 뒤에 사람들이 기다리니 어서 빨리 꺼내고 다시 가방을 올려 놓으라고 말했습니다. 이미 빨갛게 달아오른 저의 얼굴은 당근이 되었습니다. 귀와 목까지 빨갛게 물들어버렸죠.ㅎㅎㅎ


평소엔 다른 사람들의 짐까지 챙기고, 사전에 가방에 혹시 보조배터리 넣었으면 꼭 미리 빼라고 공지까지 했던 제가 이런 실수를 하는 날이 오다니요. 이게 다 3년 동안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만든 그놈의 역병 때문입니다. 얼른 가방을 열어 빛의 속도로 보조배터리를 빼고 다시 가방을 올려놓았지만 이미 저는 창피함에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모두가 저의 만행을 지켜보고 있었죠.


이전에는 카운터 앞에서 가방을 열고 이것저것 꺼내는 사람들을 보며 왜 이런거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할까 하고 한심하게 쳐다보곤 했는데요. 제주로 출발하는 날엔 제가 바로 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ㅎㅎㅎ 이래서 뭐든지 나는 저렇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면 안되나 봅니다. 저도 언젠가는 잘 지켜졌던 것들도 실수 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전날 짐을 쌀 때도 얼마나 이것저것 3ways에게 물었는지 모릅니다. 간만에 비행기를 타려니 캐리어에 무엇을 넣으면 되고, 무엇은 안되는지 헷갈리더라고요. 오랜만의 여행이 제게 가져다 준 신선함은 선물 같았습니다. 참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죠. 마치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 가는 기분처럼 작은 떨림이 있었습니다.


짐을 보내고 3ways와 다시 만나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고를 쳐서 브런치에 쓸 글이 생겼다고요.ㅎㅎㅎ 지금사진 작가님과 지노그림 작가님이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 아니냐고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설마 진짜 브런치 글 때문에 그런 일을 했을리가요.


슬프지만 작가의 삶이 그런 것 같아요. 자신과 주변의 모든 일이 글감이 되거든요. 그래서 항상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가도 재밌다고 생각되면 휴대폰에라도 메모를 하고 있죠. 혹자는 싫어하기도 혹자는 좋아하기도 하는데 저는 중간즈음 인 것 같습니다. 저의 아픈 이야기까지 끄집어 내야 할 때는 좀 힘들고, 즐거운 이야기를 할 때엔 재밌고요. 어쩌겠습니까. 이미 작가의 삶을 걷기로 택한 것을. 이젠 어떤 이야기든 조금 자유롭고 편안하게 제 이야기들을 펼쳐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어쨌거나 시작부터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저의 실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번 제주 여행에서 매우 자주 계속됩니다. 자, 비행기 탈 때엔 보조배터리는 들고 타는 겁니다.ㅎㅎㅎ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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