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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릴랜서 Apr 07. 2020

#6 실루엣만으로 만드는 감성, 프린스 앤 프린세스

그림자만으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엄청난 흥행으로 이제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3D 애니메이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컴퓨터 3D 애니메이션은 생겨난 지 이제 겨우 25년 정도 된 신생 장르이며, 그 이전에 수많은 애니메이션 장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스타일 뽐냈던 애니메이션 <프린스 앤 프린세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링크를 걸어놓았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보시면 좋을 듯하다.




애니메이션 형식의 새로운 고전


<Princes et Princesses>와 같은 형식을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른다. 1999년에 프랑스에서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2001년에 개봉했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은 그림자극처럼 실루엣으로 표현이 되기 때문에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당시 디즈니 프린세스들, 그리고 토이스토리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디즈니, 픽사와 굉장히 다른, 실험적인 스타일을 취했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성공한 것 같다. 내 주변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이 애니메이션을 아는 사람이 꽤 많다. 이 애니메이션은 일단 여러 단편을 엮어놓은 형태이고, 배경과 인물이 어쩔 수 없이 평면적이다. 약 15년 전에 이걸 접했던 어린 나에게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런 애니메이션을, 내 친구들 대부분도 알고 있다. 정말 지금 생각해봐도 미스터리다.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그때도 이 애니메이션이 엄청나게 독특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핑구' '패트와 매트'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지브리'의 그때까지 나와있던 모든 애니메이션을 섭렵한 상태였다. 디즈니는 심지어 VOD 전용으로만 나오는 애니메이션까지 다 봤다. 라이온 킹 2, 알라딘 2 이런 것들 말이다. 이런 덕분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2D 애니메이션, 3D 애니메이션까지는 매우 익숙했지만, 이 실루엣 애니메이션은 나에게 전에 없던 충격적인 형식이었다.


실제로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실루엣 애니메이션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영화의 경우에는 <프린스 앤 프린세스> 그리고 <밤의 이야기> 이 두 가지 애니메이션이 대표적으로 나오며 다른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밤의 이야기>는 <프린스 앤 프린세스>의 감독이었던 미셸 오슬로 감독의 차기작이었고, 사실상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프린스 앤 프린세스>가 없었다면 <밤의 이야기>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미셸 오슬로 감독이 실루엣 애니메이션을 처음 개발한 것은 아니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어머니
'로테 라이니거'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특히 장편영화로 만드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모션그래픽이나 광고에서는 종종 쓰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지만 영화는 검색해보면 미셸 오슬로 감독의 애니메이션 말고는 특별히 찾기 어렵다. 아마도 형식적인 제약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미셸 오슬로 감독도 이러한 방식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아니다. 가장 처음 이런 방식을 시도한 사람은 독일의 감독 '로테 라이니거'이다. 로테 라이니거라는 감독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감독은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세계 최초로 실루엣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으며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초기의 장편 애니메이션 중에 하나(<아흐메트 왕자의 모험>)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로테 라이니거의 삶에 대해 짧게 설명하자면, 로테 라이니거는 15살 때 독일 판타스틱영화의 명사이자 라인하르트 극장의 주연배우인 폴 베게너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 극장 부설 연기학교에 들어간 로테 라이니거는 예술적 실험에 관심이 많았던 폴 베게너의 영화 자막을 실루엣 기법으로 만들게 되었으며, 이후 1919년 베게너의 소개로 실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열고자 하는 젊은 애니메이터들을 만나 첫 실루엣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 (씨네 21 기사 '로테 라이니거의 실루엣 필름 상영회'에서 발췌)


로테 라이니거의 몇몇 작품들이 유튜브에 올라와있어서 몇 편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가장 처음 만들어진 <사랑에 빠진 마음의 장식>도 올라와있다! 유튜브에는 50년대 작품이 가장 많이 올라와있는데,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아래 링크를 걸어두겠다.


세계 최초의 실루엣 애니메이션인 <사랑에 빠진 마음의 장식>과 영어 나레이션이 있어 좀 더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쉬운 50년대 작품 <The magic horse>이다. 세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중에 하나인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은 유튜브에는 없었다. 만약 로테 라이니거 감독 자체에 대해 궁금하거나 감독의 작품을 훑어보고 싶은 사람들은 BBC Ideas라는 영상도 있으니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The magic horse> 스틸컷 (출처: 유튜브)



<사랑에 빠진 마음의 장식> (1919)

<The magic horse> (1953)

Lotte Reiniger에 관한 BBC 영상


지금으로부터 약 60~100년 전 작품들이지만 상당히 정교하고 잘 만들어진 작품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로테 라이니거는 그 공적에 비해 인정받지 못했다. (BBC 영상에서는 디즈니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묻혀버렸다고 설명한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미래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사실 극장용으로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정통적인 방식의 실루엣 애니메이션은 종이를 한 장씩 오려서 움직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하지만 노동력이 많이 든다고 다 시장에서 배척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표현력에서 오는 것 같다. 


우선 실루엣 애니메이션은 표정을 담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주로 전신을 보여주는 샷들이 많으며 이걸 계속 보고 있으면 마치 벽화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사람이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정도로 실루엣을 보여줄 수 있는 각도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카메라 각도도 대부분 고정되어있다. 


스탑모션 애니메이션(주로 클레이)과 비교해보자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탑모션 애니메이션은 한 프레임씩 촬영해야 한다는 것 외에 제한이 없으며 다양한 질감과 빛, 카메라 각도 등을 활용할 수 있고, 스탑모션만의 특유의 느낌이 있어서 꾸준히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때문이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한계가 안타깝긴 하지만 모션그래픽이나 단편에서는 지속적으로 시도해볼 만한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로테 라이니거를 시작으로 <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상당히 많은 컬러를 보여주었다. (라이니거도 컬러를 넣은 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배경에만 활용했다.) 그리고 꽤 성공적으로 세상에 그것을 전달했다. 


이것이 <프린스 앤 프린세스>가 새로운 고전이 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실루엣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한계점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로테 라이니거처럼 우화를 들려주는 내용으로만 구성되어있다는 점이다. <프린스 앤 프린세스>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실루엣 애니메이션이 디지털이라는 기술 발전에 힘입어 또 한 번 새로운 형식적, 내용적 발전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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