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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릴랜서 Oct 14. 2023

프리랜서 커리어 로그 - 나의 외국회사 면접기(3)

같은 대답과 다른 반응

사진: Unsplash의Vlad Hilitanu

예상치 못하게 글이 길어지면서 외국회사 면접기가 3편까지 오게 되었다. 이번 면접기에서는 내가 감동받았던 면접 사연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사실 사람에 따라서는 감동적이지 않은 내용일수도 있겠지만, 팍팍한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있던 나에게는 감동이었다.




우연한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을 때


프리랜서로의 시간이 계속 흐르면서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정말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친듯이 프로젝트를 쳐내던 때였다. 점점 일상이 파괴되는 느낌이 들었다. 우연히 페이스북 그룹에서 한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평소 페이스북은 3달에 한 번 들어갈까말까 했었는데 이 공고를 보게 된 건 정말 우연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5줄 이내의 말도 안되게 심플한 구인 게시물이었지만 글로벌 대기업, 조건도 100% 재택에 유연 근무제 그리고 무기계약 프리랜서에 미국 달러로 받는 급여. 세상에 이런 포지션이 존재한다고? 싶을 정도였다. 올린 시간을 확인해보니 3일 전이었다. 이런 조건이라면 3일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을까 싶었다.


댓글창을 확인해보니 영어가 안되서 지원하지 못해 아쉽다는 내용의 댓글이 엄청나게 달려있었다. 그 댓글들을 보고 퍼뜩 든 생각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을 했고, 바로 다음날, 연락을 받았다. 다음주 중에 면접이 가능하겠느냐고.




면접에서 오래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라


면접은 한국어, 영어 절반씩 진행되었다. 한국어부터 진행되었고, 그 다음 영어로 진행되었다. 공고가 심플했던 만큼 한국어로는 팀에 대한 여러 설명들을 해주셨다. 사실 한국어로 했던 내용은 생각이 잘 안난다. 내가 면접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면접관은 당시 우리팀 팀장님이셨다.


영어로 면접이 시작되었을 때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었다.


Where do you find yourself in 5 years?
(5년 후의 당신은 어떤 사람일 것 같나요?)


외국 회사에서 정규직 뽑을 때 특히 아주 흔하게 묻는 질문이고 나는 몰랐지만 이것도 답변하는 요령이 있었다. 그런데 그 요령도 '나의 성장'을 회사의 비전과 맞추어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 질문에 나는 바로 대답하진 못했다. 당시에 끊임없이 닥쳐오는 일을 쳐내느라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5년 후에 멀티미디어 전문가가 되어있으면 좋겠네요. 이야기가 조금 길지만 제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은 AR/VR에 관한 내용을 배우고 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영화를 전공했었는데 사실 저는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조금씩 넘어가는 과정에서 모션그래픽, VFX 등등 다양한 장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AR/VR에 대해서 배우고 있네요. 이 과정에서 생각해보니 저는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한 표현 방식을 알게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5년 후에는 다양한 미디어 장르를 넘나들 수 있는 멀티미디어 전문가가 되어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게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면접에 진심으로 대답하는 나는 정말 진심으로 대답했었다. 하지만 정말 새로웠던 경험은 바로 이 이야기를 듣고 해주셨던 답변이었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네요.


5년 후에 이런 사람이 되어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비슷하게 위의 내 이야기를 한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이런 피드백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다른 면접관 중에서도 다양한 장르를 했다면 다양한 스킬을 가지고 있겠네요.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강점을 묻는 질문으로 넘어간 경우는 있었지만 나의 지난날에 대한 평가를 나조차 다시 하게 된 적은 처음이었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한다는 생각에 당시 배움에 투자하는 시간을 내심 아까워했었는데 그러한 배움의 순간들이 그 자체로 가치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사실 네임밸류나 근무조건만 봐도 너무 좋은 조건이라 좋은 지원자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완전히 바꿨다. 무슨 일이 있어도 팀에 합류하고 싶어졌다. 이런 분이 내 상사라면 오래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다음 질문은 정말 모든 회사 면접에서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What is your strength for this role?

(이 직무를 맡았을 때 당신의 강점은 무엇인가요?)


특히 외국 회사 면접에서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다 물어봤었다. 프리랜서이든 정규직이든 프로젝트성이든 무기계약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꼭 물어봤다. 한국 회사들은 주로 자기소개서에 쓰도록 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처럼 답변했다.


A사의 제품 특성상 유저들이 여러 제품을 함께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말씀 드린 것처럼 다양한 장르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제품들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직무를 맡게 된다면 유저들이 A사의 여러 제품을 동시에 사용할 때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공유하는 부분에 강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는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사실 제가 정말 많은 외주 프로젝트 미팅과 인터뷰를 거치면서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처음인데, 이런 분이 상사라면 오래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팀에 꼭 합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 미소를 지으시면서,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도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라고 말씀하시고는 면접이 마무리되었다. 말씀처럼 나는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때까진 쉬운 줄 알았는데 끝까지 끝난게 아니었다. 온보딩 2주 전에 코로나 때문에 포지션이 홀드되면서 일을 시작하기까지 무려 13개월을 기다렸지만, 현재도 이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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