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씹어 볼수록살과 치가 떨리는그날밤의 기억|너도 가끔 생각나지?
설마,
너...
아직도 그런 짓 하고 다니진 않겠지?
여느 저녁처럼,
학교에서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저녁 10시 정도
뚜벅뚜벅 칠흑 같은 밤을 해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도보로 30분 거리였다.
15분 정도는 학교 앞에 새로 생긴 가로등이 쭉 펼쳐진 신작로를 따라 걸어야 했고,
나머지 15분 정도는 언덕을 올라 산기슭을 지나면 되었다.
전반의 15분은 유난히도 길고 큰 가로등의 따가운 빛을 받으며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걸었기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후반의 15분은 귀곡산장 같은 언덕과 산기슭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 늘 상 마음에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귀곡 산장 같은 산기슭을 지날 때 마을을 군락들이 훤히 내다 보이다
왼 편에 2미터도 넘는 갈대 나무가 키 재기를 하며 빼곡히 들어서 있었고 오른편에는 소나무와 갈대 나무가 빼곡히 산기슭을 메우고 있었다.
마의 구간은 바로 이 통로이었는데 그 길이가 약 200 미터 정도 되었다.
그 길의 왼편은 마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였고 오른편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그 구간 사이의 산비탈엔 버섯 재배용 버섯나무들이 시옷자로 칠흑 색깔로 구멍이 촘촘히 난 검정 비닐로 덮인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여느 저녁때처럼 영어 단어를 외우며 신작로의 밤을 풀어헤치며 걸어오는데,
그날따라 엘란트라 한 대가 내 발길과 보조를 맞추며 내 뒤를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작로 길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목 언저리에서 뒤를 돌아보니 뒤따라 오던 엘란트라는 왼쪽 길목으로 커브를 틀었다. 날 뒤쫓았다고 생각했던 차량이 언덕 밑 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본 후 안도의 한 숨을 쉬고 칠흑 같은 밤 마의 구간인 후반 15분의 여정을 이어나갔다.
언덕을 올라 마의 구간인 갈대 나무와 버섯 밭으로 둘러싸인 200미터를 진입하려 던 순간,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검은색 옷, 모자, 장갑으로 장착한 마르고 180센티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신장을 가진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 오더니 마의 구간인 200미터 갈대밭과 버섯 밭 터널로 들어가서 덜썩 무릎을 굽히고 쭈그려 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가 들어마시며,
"나 3학년 1반인데,
너 집에 데려다주려고 따라왔어"
라고 말했다.
그 당시 학교에서 임원을 맡아서 하고 있었기에 나는 같은 또래들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는 3학년 1반이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나는 이 순간이 위험의 순간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순간,
어른들이 누누이 말씀하신던,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이 웬일인지 그 순간 번뜩 떠 올랐다.
나는 침착하게 마을을 배경으로 환하게 뜬 보름달을 한 번 쳐다본 후,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어,
나... 3학년 1반 아이들 다 아는데...
누군지 얼굴 한 번 보여줄래?"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마의 구간인 갈대밭과 버섯 밭의 검정 터널로부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거기 어두워서 네 얼굴 하나도 안 보인다. 여기 달빛이 있으니 얼굴 한 번 보여 줄래?"라고
말한 후,
뒤 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을 향해 왔던 언덕길을 잽싸게 뛰어내려 갔다.
다행히 초등학교 때 장거리 육상 선수였던 나는
어떻게 뛰었는지도 모르게 축지법을 쓰듯
순식간에 언덕을 내려왔고
언덕 아래
신작로의 가로등 길을 인생의 한 줄기 빛인 것 마냥 의지하며
마을 중심을 향해 쏜살같이 뛰어들어 갔다.
내가 마을 중심으로 항하는 큰 도로를 건넌 후 그 사람이 나를 놓친 걸 나는 확신했다.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치며 건넜던 큰 도로 맞은편에 세워 두었던 그 사람의 차 엘란트라의 뒷 트렁크를 연 후,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얇은 쇠사슬을 정리하며,
나를 향해 신경질을 내며 토악질 해 낸 그 사람의 한 마디,
"아!
씨발,
데려다준다니까..."
신작로 근처에 사는 동창의 집의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
금방 있었던 일을 이실직고 친구와 친구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친구는 물 한 컵을 내오며 나에게 진정하라 했고
내가 쏟아내는 긴박한 이야기를 친구 아버지와 친구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친구와 친구 아버지는 그날 밤 나를 집에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른 후
나의 경험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한 기억과 오버랩되는 부분에 온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날 밤으로부터
몇 년 전,
그 동네 어떤 학교의 어떤 반의 모범생 회장 역할을 했던 여학생이 있었다.
장느에 상관없이 학교에서 주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쓸던 그 여학생이
햇볕 따가운 어느 토요일 오후 바로 그 산기슭에서
동네 건달들에게 집단 구타와 성폭행을 당했는 소식을 들었다.
여학생 집에서는 조용히 그 일을 덮었고,
그 후,
모범생이었던
그 여학생은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수녀가 되었다.
지금쯤 벌써 중년으로 접어들었을 너희들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
딸과 아들의 아버지로,
사회의 건실한 시민 한 구성원으로
뻔뻔하고 당당하며 자연스럽게
하루하루
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겠지?
난 생각했다.
혹시 날 따라오던 그 사람이 모범생 회장 역할을 했던 여학생에게 몹쓸 짓을 한
무리 중 한 명이 아녔을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