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4 - Day.8 | 들리는 건 없는데 너무 시끄러운 내면
2024.05.08 - 2024.05.19
10일 수련 코스를 신수련생으로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코스에 참석하기 전 검색으로 이 글을 발견하셨다면
개인적으로는 읽지 않고 다녀오시길 추천하고 싶어요.
다녀와서 읽으시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
1편의 내용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Day.4 위빳사나 Day
0일 차부터 3일 차까지 모든 자극에서 차단되었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콘텐츠들부터 지식, 활자, 심지어는 자극적인 음식이나 향기로부터도 차단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동시에 그렇게 잔잔해지는 내면에 익숙하지 않아 침울해지고 전반적으로 다운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이 날 꿈을 꿨다. 한 남자가 나왔다.
나는 그를 폴킴이라고 불렀는데(평소에 폴킴님을 생각한 적 없음.. 공식 팬 전혀 아님) 나중에 꿈에서 깨어나 생각해 보니 그의 얼굴은 사실 내가 자주 보던 한 유튜버의 얼굴이었다. 꿈 후반부에는 그의 얼굴이 중학생 시절 좋아하던 교회 오빠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마음이 가라앉는 내적 침잠의 시기에 이 꿈은 매우 큰 도파민이 됐다. 엉뚱한 사람에게 내내 폴킴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웃겼다. 결국 그 얼굴이 내가 좋아하던 (그리고 그 누구보다 사춘기 시절 내게 큰 상처를 줬던) 한 사람의 얼굴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꿈에서 깬 직후부터 아침을 먹고 산책하면서, 샤워를 하면서, 쉬는 시간에 멍하니 앉아서 내내 이 꿈을 떠올리며 웃었다. 명상센터에 들어온 이후로 입 주위 근육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사용하며 계속해서 피식대고 미소 지었다.
물론 지금은 대체 저게 왜 웃겼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어쩌면 호흡을 느끼는데 집중하면서 슬슬 내면의 상카라가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싶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도 갈망의 상카라가 떠오르려고 무의식이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날은 위빳사나 데이였다.
호흡 명상법에서 드디어 전신의 감각에 집중해 보는 위빳사나 명상법을 배우는 날이었다.
오후 단체 명상 시간 내리(3시 30분 - 5시) 위빳사나를 배웠다. 머리 꼭대기부터 발가락 끝까지 세세한 부위로 나눠 각 부분에 지금 어떤 감각이 드는지를 하나하나 느껴보는 명상이었다.
지글지글하고 저릿저릿한 감각이 들기도, 욱신거리는 감각이 들기도, 차갑거나 뜨끈한 감각이 들기도, 무디거나 아무 감각이 없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세한 감각에 집중하는 그 자체 그리고 그 감각이 좋든 나쁘든 어차피 사라질 것이라는 아닛쨔를 기억하는 것이었다.
아딧타나(*큰 결심을 가지고 명상 시간 내내 손과 발 어느 부위도 움직이지 않는 것)를 하며 배웠는데 1시간이 다 되어가자 무릎과 허벅지가 너무너무 아파서 식은땀이 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아... 나는 허리 디스크 병력이 있는데 이건 안될 일이지. 다음 명상부터는 의자를 달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5,60대 분들도 그냥 앉아서 수련하시는데 내가 의자에 앉는 건 자존심이 상한다. 그렇다면... 그냥 퇴소해야겠다'는 다소 격정적인 결론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저녁 법문 시간에 고엔카 선생님은 '오늘 명상 내내 무릎이 아파서 그만두고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죠?'라고 물으셨다. 30여 년 전의 선생님은 나를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았다. 그리고 100명 가까운 수련생들이 그 한 마디에 모두 공감의 웃음을 터뜨렸다.
나의 조기 퇴소 이유는 이렇게 좌절되었다.
Day.5
이 날도 비슷한 꿈을 꿨다. 하지만 전날처럼 그 꿈이 재밌지는 않았다.
명상과 상카라(명확한 정의는 따로 있겠지만 나는 상카라를 일종의 무의식 속 불순물이라고 정의했다)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 보니 내 무의식에서 '사랑받고자, 인정받고자' 했던 뒤틀린 갈망의 시작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새벽 명상을 가장 좋아했지만 기침을 이유로(핑계로) 가지 않았다. 4시 알람을 끄고 조금만 더 눈을 붙인다는 것이 예상대로 5시 가까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다행인 것은 이 한 번의 늦잠으로 수련 전체를 망쳤다는 실패감이나 자책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명상을 하면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내게 큰 고통이 된다는 것을 인식했고 센터 안에 있을 동안만이라도 조금 더 스스로에게 너그럽고 싶었다.
6일 차가 또 한 번의 큰 퇴소 위기라고 해서 5일 차에 마음이 많이 싱숭생숭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그럭저럭 넘길 만한 하루였다. 퇴소하고 나면 기독교 전통의 맥락에서 이 명상법의 요소들을 찾아보고 비교하고 적용하고 번역해보고 싶어졌다.
법문 시간에 듣게 된 위빳사나 명상법을 만든 붓다의 이야기는 내게 생소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들렸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를 열심히 봐서인지 붓다가 몇 천 년 전의 양자역학자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법문 시간은 언제나 기다려지고 재미있었다. 콘텐츠랄 것이 딱히 없는 매일에서 동영상 강의가 얼마나 큰 유희와 유익이 되는지 크게 느꼈다. 하지만 법문을 시작할 때마다 고엔카 선생님이 말하는 고정 멘트 "이제 5일 지났습니다. 앞으로 5일간의 수련이 더 남았습니다." 하는 멘트는 늘 좌절스러웠다. 순간순간은 견딜만했지만 수련하는 과정이 꽤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수련을 진지하게 해야 한다는 말씀에 진심으로 동의했고 그런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았지만, 스스로 머리와 가슴을 너무 무겁게 가져가기 않길 바라며 수련을 계속해갔다.
Day.6
가장 많이 퇴소한다는 2일 차와 6일 차.
어렴풋하지만 이 날 저녁 법문 시간이 시작될 때 '오? 오늘 6일 차였는데 생각보다 별로 안 힘들었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작은 범위에서 호흡을 느끼고 온몸의 감각을 느끼는 것에 점차 집중이 되었고 아딧타나도 (물론 보조 쿠션 2개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성공할 수 있었다. 이제 1시간 동안은 명상을 하며 꿈쩍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고관절과 무릎은 계속 너무나 아팠고 양 옆의 수련생 분들이 고요하고 차분하게 잘 앉아 계셔서 자존심에 이를 꽉 깨물고 버틴 시간들도 있었다. 너무 평온한 두 분 덕에 샘이 나고 조급한 마음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이 와중에도 자존심을 부리고 샘을 내는 나를 보면서 DTS 시절이 떠올랐다. 누군가 잘하는 모습(특히 그것이 정서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과 관련된 경우 유독)은 항상 부럽고 시기가 난다. 그런 스스로가 별로 멋지지 않아서 자책을 하거나 누군가 눈치챌까 봐 신경을 쓰기도 한다. 이 정서적 사이클도 나에게 큰 갈망 혹은 혐오의 상카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Day.7
이 날은 하루종일 '왜 8일 차가 아니라 아직도 7일 차지?' 하는 생각이 시시때때로 들었다.
나의 지난 삶에 대해, 주변 상황과 사람들에 대해 복잡한 생각들이 쉬는 시간마다 내 마음을 괴롭혔다. 때로는 이후의 커리어나 쓰고 싶은 글, 재밌는 공상들로 머리가 가득 차기도 했다. 휴식시간 내내 침대에 누워 열린 창문 밖 아카시아 나무를 보며 혼자 웃기도,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다지 신뢰할 수 없지만) 아마도 북향이었던 창문의 방향 덕분에 하루종일 방이 어두웠는데 이 어두움이 꽤 좋았다. 창문을 열면 훅 하고 들어오는 아카시아 향기도 황홀했다. 하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새소리, 산책하는 사람들이 흙을 밟는 소리가 들리는 게 좋았다. 다시 한번 침묵이라는 규율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떠올려보니 10년 전 DTS를 받을 때에도 첫 방이 해가 들지 않는 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함께 방을 쓰던 사람들이 모두 멘탈 쿠크다스였기 때문에 309호+쿠크다스의 의미를 담아 '구크다스'라고 방 이름을 지었었다. 나는 10년 전에도 그 어두운 방에서 내면을 깊이 파는 내적 치유 시간을 보냈다.
아, 그리고 이 날은 미리 보고 갔던 블로그 후기가 많이 떠올랐다.
'내 머릿속에 그렇게 말 많고 시끄러운 사람이 산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라는 말. 혼자 있어도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가끔은 방 안에서 혼자 음소거로 노래를 크게 부르기도 하고 춤을 마구 추기도 했다. 이렇게나 내적 흥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오랜만에 인지했다.
Day.8
지도 선생님과 두 번째 면담을 했다. 며칠 만에 간 새벽 명상부터 내내 내 가슴께를 짓누르며 올라오는 단어가 있었다.
Big, 크다
이게 내 상카라의 흔적 혹은 원인이 되는 것 중 하나인지, 이렇게 구체성을 띄는 단어나 경험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구체적 단어, 기억, 감정 등은 그냥 지워버리고 감각에만 몰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 단어와 기억 드을 구체적으로 직면하고 나서 감각을 보아야 하는지 궁금했다. 명상하는 내내 물리적 고통이 크게 느껴졌고 머리도 복잡했다.
고통의 큰 두 축인 '갈망'과 '혐오' 중에 갈망에 관한 것도 궁금했다. 갈망을 일으키지 않고 싶어서 즐겁고 행복한 감정이나 감각을 느끼는 것 자체가 두렵고 꺼려졌다. 심지어 나는 커리어 내내 갈망과 혐오를 통해 도파민을 일으키는 콘텐츠를 만들어온 사람이기 때문에 더 혼란스러웠다.
Q1. 명상을 하다가 구체적 단어나 기억이 떠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우려고 애쓸까요 아니면 직면하고 견뎌야 할까요?
A1. 명상을 하다 보면 무의식 속 오래된 불순물이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분석하고 정의하려 할 필요 없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감각에 집중하면 된다.
Q2. 즐거운 감각이나 행복한 감정이 '갈망'이 될까 봐 두려워요. 그래서 아예 즐거움이나 행복함을 느끼는 것 자체를 차단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약간 로봇처럼요. 어디까지 즐거워도 되고 어디부터는 갈망이 될 위험인 걸까요?
A2. (근엄하고 무서웠던 지도 선생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런 걸 그렇게까지 '염려'하는 자체가 너의 상카라다. 염려가 상카라라는 것을 인지하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고 다시 감각에 집중하면 된다.
Q3. 저는 (때로는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고 도파민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온 사람이에요. 그럼 이건 갈망과 혐오를 일으키는 나쁜 직업인가요?
A3. '이건 이야기일 뿐'이라고 명확히 안내할 수 있다면 괜찮다. 현실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나름 신실한 기독교인이라고 갑자기 고백해 버렸다. 그래서 이 명상법에 나오는 붓다의 이야기나 용어들이 매우 낯설기도 본능적으로 꺼려지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주 가볍고 쿨하게 '이 명상법을 잘 수행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예수님 믿는 것도 그 힘으로 더 열심히 하라'라고 하셨다. 쩝.
짧고 명료한 질답이었다.
그런데 이 면담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오열했다. 멈출 수 없이 속에서 눈물이 솟았다. 왜 우는지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오랫동안 곱씹어보니 2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염려하는 행위 자체를 흘려보내도 된다는 것, 단 하나의 정답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긴장하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고통의 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이 인지되면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