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9 - Day.11 | 실마리, 인사이트 그리고 남은 과제
2024.05.08 - 2024.05.19
10일 수련 코스를 신수련생으로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코스에 참석하기 전 검색으로 이 글을 발견하셨다면
개인적으로는 읽지 않고 다녀오시길 추천하고 싶어요.
다녀와서 읽으시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길 :)
2편의 내용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Day.9
9일 차가 되자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고엔카 선생님은 이 날이 진지하게(seriously) 수련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하셨다. 10일째는 침묵 규율이 해제되기 때문이다. 열흘이 넘도록 침묵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온갖 소음이 있는 일상으로 돌아가면 누군가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10일 차에는 센터 내에서의 침묵이 해제되고 서로 담소를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이 날은 더 진지하게 집중하고 싶었다. 몸의 감각에 집중하고 쓸데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괴로워도 훗날 돌아보면 이 날들의 모든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였는지 알게 될 거라 믿었다. DTS가 그랬고, 나를 성장시켰던 '버틴다'라고 생각한 모든 날이 그랬기 때문이다.
전날 지도 선생님과의 면담 후 펑펑 울고 나서 스스로의 몸과 감각과 생각을 태도가 조금 더 태연해졌다. 이 수행의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도, 감각의 유흥도 아니고 '마음의 평정심(perfect equaninity)'이라는 것을 머리에 새기고 수련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코스가 곧 끝난다고 생각하니 조바심과 함께 그리움과 불안도 올라왔다. 그래도 괜찮았다. 훌륭한 대응책을 배웠기 때문이다.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성실하게 지속력 있게 명상 수련을 해가고 싶다.
Day.10 메따 Day
센터에서 먹는 아침 식사는 늘 기대가 됐다. 메뉴는 빵 혹은 죽으로 나뉘었다. 빵은 (비건) 식빵과 과일잼, 땅콩잼이 세팅되어 있었고 죽은 흰 죽 혹은 검은깨죽과 김, 간장, 참기름, 간단한 샐러드와 밑반찬 등이 나왔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빵과 죽을 번갈아 먹었는데 죽을 먹는 날에도 빵 코너를 한 번 들여다보았다. 왜냐하면 매일 땅콩잼 위에 칼로 글자를 새겨주셨기 때문이다. 첫날엔 'Be Happy'라고 적혀있었고 수련 진행에 따라 'Aniccia(아닛쨔)'이기도 했으며 이날 아침의 문구는 'Metta Day�'였다.
메따에 대해 블로그 후기에서 슥 읽고 간 내용이 있었다. 사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났고 울컥하거나 눈물이 날 수 있다는 후기가 기억났다. 그래서 이 날은 명상홀에 갈 때 야무지게 휴지를 챙겨갔다.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파워 F인 내게 눈물 버튼은 늘 예민하니까.
하지만 의외로 거의 울컥하지 않았다. 그냥 코가 잠깐 찡-했던 정도?
메따는 명상을 통해 배운 평온함, 평화, 자비와 사랑, 고통으로부터의 벗어남이 나 외의 타인과 모든 생명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명상이다.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축복이나 중보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 내가 알아온 사람들에게 행복을 빌고 사랑과 자비를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 경험은 기독교 문화 내에서 훨씬 더 강력하고 설득적으로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새롭거나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물론 사랑하는 이들, 그리고 사랑하지 못했던 이들까지 떠올리며 깊이깊이 그들의 평안을 바랐다.
아무리 나 혼자 말을 하지 않아도 집중력은 흩어졌다.
오전 명상이 끝나고 침묵이 해제됐다. 명상홀 내부와 그 주변에서는 여전히 침묵 규율이 적용됐지만 그 외에는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눈맞춤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침묵을 더 유지하고 싶었다.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순간 사회적 자아가 나를 압도하고 또다시 불안과 회피로 (그러나 겉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밝은) 돌아가게 만들 것만 같았다. 침묵이 해제되자 나이대에 따라 삼삼오오 대화가 시작됐는데 나는 아무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방 안에 들어가 있었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대화 소리가 힘들어 귀마개를 하고 낮잠을 잤다. 하마터면 오후 명상에 늦을 뻔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겁 많고 이기적인 모습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잠깐 쉬는 시간에 산책을 하다가 바람이 좋고 산이 좋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수련 내내 내 왼쪽에 앉아 계셨던 수련생 분이 벤치 옆에 누워 계시다가 갑자기 말을 거셨다. "이제 다 나았어요?"라고.
사실 아이컨택도 거의 하지 않고 내 내면에만 몰입하고 있느라 그분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인상착의만 보고 (큰 프린팅이 있는 오버핏 티셔츠와 예쁜 핑크색 바지를 늘 입고 계셨다.) 20대 중후반이실 거라 넘겨짚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니 나보다 조금 언니 나이대에 멋진 눈빛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일단 명상 초반에 기침을 너무 많이 했었기 때문에 '죄송했고 배려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잠깐의 스몰톡을 했는데 그분은 2명의 아이가 있으시다고 했다. 말씀하시는 모습이나 어휘의 선택이나 여유로움을 보면서 '아, 저분 진짜 일잘러시겠다. 저분이 우리 팀장님이라면 진짜 호되게 일하겠지만 정말 많이 배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분이었다. 몇 살인지,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등의 대화가 아니라 아주 차분하고 상호 사적인 바운더리를 궁금해하지 않는 편안한 대화였다.
Day.11 마무리 그리고 퇴소
정신이 없을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정신없이 흘러갔다. 일어나자마자 세수하고 명상하고 마지막 법문을 듣고 메따 명상까지 쭉 이어졌다. 마지막 명상 시간에는 사실... 하나도 집중을 못했다. 퇴소하고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 별 생각이 다 들었기 때문. 그래도 성실하게 내 몸의 모든 감각을 느끼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나를 아끼는 연습을 해나가겠다고 결심했다. 부디 오래 지속되기를, 부디 내가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부디 세상의 모든 존재가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MAY ALL BEINGS BE HAPPY.
바왓두 삽바 망갈랑.
*퇴소 후 검색해 보니 고엔카 선생님은 2013년에 돌아가셨다. 1991년에 찍은 영상으로도 30여 년 뒤의 내게 큰 울림과 가르침을 주신 그분의 진정성과 지혜, 그 삶에 감탄한다. 덕분에 사랑을 흠뻑 느꼈다.
명상 마지막에 고엔카 선생님이 '바왓두 삽바 망갈랑'을 세 번 읊으시면 수련생들은 '사두, 사두, 사두'라고 답했다. 이건 기독교에서의 '아멘'과 비슷한 의미로 지금 하신 말씀에 깊이 동의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두나 아멘 모두 외국어를 그대로 차용한 언어인데도 사두라는 언어가 낯설어 꽤나 긴 시간 동안 거북함을 느꼈었다. 기독교 문화를 접해보지 않은 이에게 아멘도 비슷한 거북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배타적인 삶을 살지 않도록 노력하고 점검해야겠다 싶었다.
담마. 종교, 종파, 인종, 전통을 넘어서는 자연의 보편 법칙을 담은 이 명상을 1년 정도 꾸준히 해보고 싶다. 지식적 판단보다 경험적 판단이 먼저 필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특정한 단어를 언어화하지 않고,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고 오로지 감각에만 집중하고 또 흘려보내는 이 방법의 유익을 경험하고 싶다.
여기서 배운 명상은 '살과 피'로 이루어진 인간에게 유효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살과 피를 경험한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서 이와 비슷한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기쁨을 극대화하고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부흥과 확장만을 외치던 내 시대의 기독교는 그 나름의 엄청난 결과를 냈지만, 동시에 유래 없는 불안을 겪고 있는 내 또래와 후배들에게는 이렇다 할 방법을 주지 못하고 있다. 나는 어디서부터 그 흔적과 힌트를 찾아갈 수 있을까? 일상 속에 부지런히 꾸준히 적용해 봐야겠다.
이렇게 명상 센터의 후기를 마무리한다.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시간 내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당연히) 없었고 실마리를 얻어 나왔다. 큰 숙제가 내 앞에 남았다. 배운 것을 잘 정착시키고 싶다.
나와 내 사랑하는 이들, 모든 사람과 생명이 오늘도 평안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