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의 기억
3부 2막 제 이름을 갖기까지
<호흡의 기억>
있는 그대로 되새기고, 이해하면 너를 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너와는 만남도, 멀어짐도, 기다림도, 이해도 무엇 하나 쉽지가 않다. 그래서 더욱 짧았던 만남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인정한 후에 감정은 무게가 덜어지기는커녕 더욱 선명해졌다.
어느 날은 아무런 행동도, 표현도 닿지 않았던 이 관계를 신뢰할 수 없어서 단절했던 내가 너무 매정했던 건 아닐까 하며 마음에 무거운 추를 하나 얹어 놓고,
또 어느 날은 나를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다시 추 하나 덜어 놓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적이지만은 않은, 또 그렇게 이성적이지만도 않은 날을 살아간다. 아슬한 그 사이를 줄 타며 감정만으로 쓴 글은 이성이 읽을 땐 녹아내릴 듯한 아우성처럼 느껴져 못마땅해하고, 이성이 쓴 글은 너무 냉소적이라며 베일듯한 날에 더는 읽기를 포기한 듯 돌아선다. 정리가 잘되지는 않지만, 꾸준히 노력해 보고는 있다.
오랜 시간 가졌던 마음을 놓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랜 시간 기다렸던 마음에 긴장을 푸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선택해야 했던 매 순간 우리들은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걸 이해한다.
그럼에도 가끔 나는 억울하고, 아쉬워서 밤을 새우는 일도 있다. 전보다 더 이해하게 됐는데, 그럼에도 갖지 못한 기회가, 시간이 아쉬워서 흔들린다. 오래 너를 놓지 못하는 이유겠지.
이미 내 일부가 되어 버린 이 오랜 감정을 놓으면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어쩌면 기대를 저버렸다는 자책, 알아주지 않았다는 후회, 믿음을 저버렸다는 미안함, 가능성을 닫았다는 죄책감, 너에게 이런 사람이 되었다는 인식이 아직도 내가 남아있는 이유일까. 차마 닫지 못한 그 마지막 페이지엔 갈피를 뺄 수가 없다.
‘왜 너는 아직도 떠오르는 걸까?’
그 짧았던 만남이. 단순한 그리움이 아닌, 풀리지 않은 의문이 존재했다. 산소를 원하는 것처럼, 본능이 원하는 것에 이유를 붙일 수 있을까. 이건 호흡의 기억이다.
나는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주변을 감지하며 살았고, 너는 불안을 그냥 흘려보냈다.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그 태도에 나는 불안이 커지지 않았고, 너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듯한 느낌에 편안해 보였다. 처음으로 내가 조절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안정, 애쓰지 않아도 편할 수 있다는 감각을 경험했다.
의도적인 행동으로 인한 안정감이 아닌 삶을 대하는 무의식적 태도였다. 경계가 풀린 상태, 자기 검열이 사라진 시간, 역할을 내려놓아도 무너지지 않던 순간. 그 순간은 단번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안정감을 주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존재라는 느낌은 그 무의식적 태도가 멈춰 별말 없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존재라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 낯선 안정감이 사라지자, 불안은 통제 불능이 되었다. 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았고, 나의 가치를 의심하며 복구하려 애썼다. 그 후 나는 달라졌다.
그때의 가치 상실은 ‘이상적인 나’가 되기 위한 완벽한 트리거의 역할을 했다. 완벽주의는 나의 방어기제가 되었다.
그때의 안정은 사랑 자체라기보다, 내가 평소 하던 역할을 내려놓아도 괜찮았던 드문 순간이었다. 이 관계에서 느낀 건 설렘보다, 소유보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다. 무의식에 형성된 삶의 방식들이 서로 맞물리며 작동을 멈추는 순간.
‘편했다’고 말하면 부족하고, ‘사랑이었다’고 말하면 너무 빠르고, 그냥 지나가자니 이미 감각이 기억해 버렸다. 그때는 부르지 못한 감정이었고, 나중에 무너진 뒤에야 ‘이게 그렇게 큰 감정이었구나’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쉽게 느낄 수 없는 그 상태는 두 번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순간은 미래를 기대하게 했고, 소유처럼 느껴졌고, 그 상태를 잃고 싶지 않았다. 이 감정은 내가 단절하고도, 고통스러울 때도 쉽게 끊기지 않았던 정서적 안정감이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건 사람이 아니라 상태였다. “왜 너의 곁이 좋았는지”, “왜 아직도 그때가 그리운지”, “왜 그렇게 오래 남았는지”, “왜 단절이 해방이 아니었는지” 이게 그토록 길었던 내 질문들에 대한 답이었다.
안정감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미래를 보게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사랑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고,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감정의 무게는 줄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