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나보다 사랑했다

복원된 진심

by 숨 Breath

3부 2막 제 이름을 갖기까지


<복원된 진심>


생각보다 더 많이 널 사랑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에 내가 어떻게 널 사랑했는지는 잊어버렸다. 아니, 나보다 너를 택했던 세상에 더는 네가 없다는 것, 나를 택해야 하는 선택이 쌓여 너를 잊게 했다.


상처에 내가 사랑했던 방식이 무모하고 잘못되었다 치부했다. 결과에 따른 행동을 판단했기에, 미숙하기만 해 망친 것이라며 스스로 몰아세웠다. 고통과 수모, 비참함에 지지 않으려 했는데 부정에 덮였다.


많이 아꼈던 마음은 잊히고, 감정은 미처 끝내지 못한 채 남았다.




그렇게 나는, 네가 없는 선택지에 남은 나를 택할 수밖에. 나는 너를 잊어가며 나를 택하는 법을 배웠다. 무엇을 잊는지도 모르는 채.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움직임에 나아가기보다 멈춰 섰으며, 잠깐 꾼 꿈에도 뭔가를 잊으면 안 되는 무언가를 잊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저 깊은 무언가는 이미 무얼 알고 있는지 깊은 슬픔을 느꼈고,

그게 익숙하다 여기며, 살아갔다.


너라는 대상보다 왜 나는 너를 이토록 잊을 수 없는지 같은

이해되지 않은 물음에, 인정이 늦었다.



진실은 달랐다. 진심이 늦었다.



없는 게 아니라 너무 깊어 오래 걸렸다.



내가 한 것은 사랑이었고, 그 후에는 부정이었고, 이해가 필요했으며, 지금은 인정이다.



그렇다.


나는 너를, 나보다 사랑했다.



창(사용).jpg




깔끔한 인상에 달콤한 향기, 환한 이마, 무심한 눈, 지적인 코, 달싹거리는 입술.


기억력이 나쁜 내가 너를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아 노란 작은 수첩에 너를 기록해 갔다.


세상에 나온 물건의 이름들보다 공상을 즐겼던 나는 아는 것이 별것 없는 줄 그제야 알았다.

네가 알려 주는 것들이 세상이고,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 취향에 가까워졌다.


“뭐 해?”라는 질문은 뭐 하는지보다 기분이 어떠한지, 상태는 괜찮은지가 더 궁금해서 묻는 거였다.


네가 ‘귀찮다’는 한마디면 뭐든 대신해 줄 수 있었다.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던 것보다, 내게 칭얼거리는 네가 좋아서 그랬다. 칭얼거려도 되는 그런 세상에 살게 하고 싶었다. 내가 갖지 못한 세상을 너에게 주고 싶었다.


내 품이 넓어 너를 품은 것이 아니라, 너를 품기 위해 품이 넓어져 갔다.


내가 가진 고유한 선, 경계, 예민함. 네 앞에선 그것들이 힘을 잃었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그 거대한 무력감 앞에 어쩌지 못하고, 그럴 수 있어서 좋았다. 어디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내가 너에게만 투항하며, 너를 지키고 싶었고, 달래고 싶었다. 그게 그때의 나였다. 이미 나는 너에게 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네가 좋아 웃는 그 한 번의 웃음이면 움직이지 못해도 좋으니, 그곳에 갇히고 싶었다. 어차피 그때의 내 움직임은 이미 네 것이었으니.


너를 만나면 저 안쪽부터 채워지는 감각에 마치 내가 닻을 내리고 싶은 곳이 그 곁인 줄 알았다.





너는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떻게 사랑했는지 한참을 잊고 있었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