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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Him Dec 18. 2021

13. 버티는 삶과 대단한 삶

사라지고 남은 것들





이 또한 지나간다는 말이 제일 싫다


이 고통은 지나가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버티고 나서

지나갔다고 느끼는 건가요?



백혈병 투병기를 작성하면서

2년 전 내가 겪은 일들과 사진들을 돌아보면

밝고 희망찬 이야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나고 나서야 느꼈던 감정들을 조금씩 모아

그나마 교훈적인 이야기들로 정리 중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간 걸까?'


백혈병 확진을 피검사를 통해 받았지만

정확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어떤 유전자가 망가진 것에 따라

백혈병에 타입이 달라지기 때문에

백혈병 환자라면 반드시 거쳐가야만 하는 관문인 골수검사를 시작하였다.


"난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어 걱정 마"


수십 번 마음속으로 나에게 강인함을 심어주었다.

골수검사는 사진으로만 봐도 세상에서 가장 긴 주삿바늘을 보유하였으며

이 길고 긴 주삿바늘이 내 정맥도 아닌 뼈를 뚫고 들어온다는 느낌을 상상하였을 때


손톱으로 쇠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름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지나고 나서야 이 정도로 겁먹을 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지만

10번 넘게 내 골수를 바친 골수검사 장인으로서

첫 번째 골수검사는 내가 느낄 수 없던 최고의 고통을 선사한 것은 뚜렷하였다.


골수검사를 시작하기 전 내 마지막 주문이었다.


"별거 아니야 난 이것보다 더 힘든 고통도 겪었잖아?"


정확히 이 강력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주문은

골수검사의 바늘이 들어오기도 전 마취를 시작하는 주사 바늘에 의해 무너졌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바늘의 느낌이었으며

솔직히 어차피 마취하러 들어간 김에 골수까지 뽑고 오면 안 되나

생각이 들었지만, 골수 검사를 안 아프게 하기 위한 마취라고 하니

네가 내게 선사한 고통은 봐주겠다는 마음을 가지려는 찰나


마취 주사를 넣은 지 3초도 안됬을 무렵 골수검사가 시작되었다.

솔직히 마취가 이렇게 빨리 될 수 있나 생각이 뇌에 도달하기도 전

내 몸에 긴 칼이 들어왔다.


"읍.."


사람이 정말 고통스러우면 비명도 안 나온다고 하던데

골수를 뽑겠다는 그 긴 칼이 내 뼈를 뚫을 때

난 솔직히 내 엉덩이 뼈를 관통하여 내 앞으로 나오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으드득하는 소리와 남자 인턴분이 주삿바늘로 내 엉덩이 뼈를 뚫는 소리와

그 느낌이 오묘하게 맞아 들었을 때


난 기절하기 직전의 고통이 들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도 안 나왔다.

골수검사가 끝났을 때는 배가 위 흥건한 식은땀과

이걸 어떻게 10번 넘게 하지? 막막함이 묻어났다.


솔직히 난 골수검사 10번을 버틴 거지

절대 지나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시간은 지나갔지만

물리적인 고통은 내가 온전히 버틴 것이다.


고통은 지나가지 않는다.

고통은 버텨야 지나간다.


수많은 고통들을 버텼으며

긴 2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내 삶이 버텼기에 대단해졌을까?

'아니다'

그저 제자리로 돌아온 것뿐이다.


남들은 느끼지도 않아도 될

골수검사의 고통을 10번씩이나 버티면서

난 남들의 위치에 섰다.


그 힘든 고통을 겪었어도

남들보다 대단하지 않다.


 그저 버티는  이었기에 


대단해질 수 있는 시간도

대단해질 수 있는 노력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고통을 버티면서

내 삶의 신념은 많이 바뀌었다.


대단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버틴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삶을 원하지도 않는다.


난 대단한 삶보다

내가 고통을 참고 버티며 얻은


내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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