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남은 것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 24시간은
가끔 인생이 공평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눈뜨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아침 8시에 성모병원에 울리던 기도문 소리에
난 눈을 뜨자마자 하루를 부여받은 것에 감사하다고 매일 기도하였다.
24시간을 선물해주시고
24시간을 다시 뺏어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월급 통장에 월급이 스쳐 지나가도 찍힐 때는 기분이 좋듯이
내 삶이 매일 오전 8시에 입금되었을 때 느끼는 감사함이 있었다.
내게 살아 숨 쉰다는 것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처음으로 화장실에서 기절하였을 때 느낄 수 있었다.
무균실에서는 모든 환자에게 이동 시 헬멧 착용을 권장한다.
항암치료 때문에 쇠약해지는 기력이 가끔 환자들이 쓰러지거나
기절할 때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쓰라고 권장하지만
난 20대인 나의 기력을 믿었으며,
헬멧 착용 시 느껴지는 그 무언가에 의존한다는
환자가 가지기 쉬운 의존성과
나약함이 더욱 싫었다.
하지만 새벽에 나 홀로 화장실에서 가고
그 안에서 너무나 나약한 모습으로 기절하였을 때,
순간적으로 내 몸이 왜 이렇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이 잠시 멈춰 있었다.
쿵하는 소리를 들은 나의 앞 침대 환자분은
비상벨을 눌러주셨고
그 비상벨을 듣고 달려오신 간호사님들은
내 화장실 밖에서 나의 생사를 확인하듯
내게 괜찮냐는 질문을 계속 쏟아내셨다.
너무나 다행히 앞으로 기절한 것이 아닌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듯이 기절하여
나는 어디 한 곳도 다치지 않았지만
순간적인 저혈압은 내 몸의 오한이 돌게 하였다.
간호사님들은 나를 부축하며 병상 침대로 나를 옮겼고 나는 한여름에 벌벌 떨며 내 몸의 식은땀과
한기를 느끼며 차가움과 서러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이 모습을 우리 가족이 안 본 게 너무나 다행이라는
생각과 많이 나약해진 나 자신을 인정해야 하는
나 스스로가 너무나 힘들었다.
그렇게 긴 잠에 빠졌었다.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 시간이 흘러갔다.
자고 일어나면 내가 눈을 못 뜰 것 같았다.
하지만 아침 8시에 내 하루를 똑같이 선물 받았다.
너무나 낮았던 혈압과 빠르게 올라갔던
몸의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온 뒤
나의 정신은 돌아왔고
지난밤 내가 쿵하고 쓰러진 소리를 듣고
비상벨을 눌러준 내 앞 병상 환자분과
나를 위해 수고해주신 간호사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러 움직일 때
난 비니 대신 헬맷을 착용하였다.
그제야 난 내가 제일 불쌍해 보일 것 같던
헬멧 쓴 모습도 병문안을 온 사람들에게
신기한 광경인 것처럼 보여주었고
난 그 헬맷을 쓰고 무균실 복도를 돌아다니며
운동도 시작하였다.
살면서 내가 가장 약해진 모습에
높았던 자신감과 자존감을 사라지고
내가 살아본 인생 중 가장 현실에 순응하며
낮은 곳으로 내려간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현실은 날 굴복시키기에 충분했고
인정하며 현실을 받아들이니
그래도 눈뜨고 내 삶을 부여받은 것에 대한
작은 감사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높은 곳으로 가고자 했던 나를
살아온 인생 중 가장 낮은 곳으로 보내시며
아침 8시마다 나의 하루를 선물하신 주님께
그날부터 난 기도하였다.
하루의 선물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