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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Him Jul 25. 2022

15. 멈추면 느껴지는 것

사라지고 남은 것들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아도

그리 대단한 인생은 아니었을 것 같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의 시간은 흘러갔다. 신년 맞이 새로 산 다이어리에 한 일들을 밀려 적을 때 가끔은 한 일들이 너무 없어 다이어리에 아무것도 적지 못한 적도 많았으며,

체감상 월요일에서 바로 수요일이 되거나

저번 주말에는 뭐했는지 생각이 안나는 경험도 적지 않았다.


가끔 그냥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적이 있었지만

젊었을 때 들여다본 나의 시간의 창고는 빼곡히 쌓인 시간들로 노력의 끈을 느슨하게 잡기에 충분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무의 나이테가 새겨지듯이

내 감정에도 두 가지 감정선이 뚜렷하게 보였는데

소중함과 후회의 감정들이었다.


시간의 소중함은 표현하지 않아도

누구나 느끼듯이 내게도 시간의 소중함은

거대하였다. 특히 30살이 얼마나 남았는지

매년 체크할 때마다 마치 30살이 되면 바로 노후를 맞이해야 하는 것처럼 이루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다.

인생 업적의 부담감들이 쌓여 시간을 멈추고 싶었지만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주어진 시간 속에서 열심히 살고 싶었지만

나란 놈의 최선은 반짝 들어왔다 꺼지는 빛과 같았고 열정은 가끔 나를 일으켰으나 매일을 열심히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삶을 유튜브로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나의 시간은 낭비해가며 사는 것이 전부였다.


불행의 시간이 끝나면 깨달은 것이 많은 멋진 어른이 될 것 같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나의 인생을 정의할 때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단어이다.

백혈병이라는 큰 병을 겪으며 시간은 흘러가지만 어떤 생각과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멈추던 때 아니 강제로 나의 시간을 멈췄던 때

그 병 하나 이겨내고 보통 사람들 속에 섞여도 티 안 나기까지 3년이 흘렀다.


보통 사람들의 3년을 생각하며

나 자신이 쏟아부은 3년은 너무나 커 보이고 또 난 조급해져 갔다.

내 인생의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에 대한 전형적인 보상심리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큰돈을 주식투자에 잃고 잃은 돈을 복구하고자 더 큰 도박에 빠지는

이러면 안 되는 거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버린 시간들을 주워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 큰 병을 주시면서 내가 깨닫기를 바란 것은 단지 시간의 소중함뿐만이 아니었을 것인데

하지만 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좁은 시각과 생각들

그렇다고 무언가를 이루지도 않은 나를 깎아먹기 딱 좋은 환경에 놓여

참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던 거 같다.


나를 멈추는 것에 가치를 느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들 다해보는 휴학 한 번쯤은 해보며 나를 발전시키고

남들이 한 번쯤은 가보는 유럽여행도 돈과 시간이 아까웠으며

멈추면 못 나갈 것 같은 나를 가둬놓은 불안이란 미로 속에서

좀 더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가 내가 어디 위치인지 파악하고 탈출구를 찾아야 했지만

멈추면 못 나갈 것 같은 불안감에 높은 곳을 올라가는 것보다는

계속 같은 자리 위치를 맴돌고 뛰는 것이 더욱 열심히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난 스스로 나를 멈추고 시간을 흘러 보낸 것에 만족해본 적이 없었다.


나를 처음으로 멈춰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계획에 없던 예기치 못한 병은

내 인생을 재정비할 수도 있었던 혹은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했던 시간이었을 수도 있지만

투병생활이 아닌 3년이 온전히 나 스스로 멈추었던 시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어쩌면 나 스스로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내 현실을 바꿔줄 수 있는 건

현실을 멈출 수 있는 용기와

현실을 바꿔줄 만한 돈과

과거를 위안 삼을만한 시간적 여유


세 가지 모두 내게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의 파도를 마주해도

내 인생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난 나의 젊음이 지나가는 과정 속에서

또 한 번 시간의 파도에 흘러가 보려 한다.


현재의 난 나에게 수없이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엇이 겁나는 것인지

무엇이 가로막는 것인지


난 나 스스로에게 내린 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나 자신의 모자람을 원망하기 힘들 때

난 비겁하지만 나를 멈추게 한 백혈병만을 탓하며

다른 의미의 행복만을 찾으려 할 것이다.


결국 요동쳤던 마음의 파도는 다시 잔잔해지고

또 한 번 시간이 나를 멀리 데려다 놓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 후회하겠지


멈추지 못한 것을 그때가 늦지 않았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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