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남은 것들
날 걱정하는 눈빛과
날 동정하는 눈빛은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남의 인생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었다.
인생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차오르며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 뜻대로 잘되는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잘해서 나의 재능으로 어려움 없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하였지만, 나의 노력이 뒷받침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나 스스로 이룬 업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가끔 내 노력에 비해 결과가 잘 나와
나의 인생이 스스로 대단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남에게 뒤쳐지는 기분을 매우 싫어했으며
남의 인생과 성공은 나의 노력의 자극제이자 동기부여이니
실패한 사람들 인생의 나는 귀 기울이며 살 시간이 없었다.
높은 곳만 바라보고 올라가는 생각만 하며 살았다.
이제는 백혈병이 걸린 내가
남들과 거리가 멀어진 인생이 되었으니
그때 내가 느낀 좌절은
왜 실패한 사람들이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나
전진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기에 충분하였다.
단순히 몸이 망가지고 외면적인 변화도 너무 힘들었지만
정신이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스스로 할 수 있던 일들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지고
나 자신에게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성취할 때마다 나 스스로에게 부여해주었던
자존감, 자신감이 모두 결여된
빈 껍데기만이 남아있는 느낌을 받았다.
인생이 망가지는 순간을 느꼈다.
백혈병에 걸렸다고 말하는 순간
수많은 사람이 내 인생의 관심을 가져주었다.
진심으로 느낀 위로와 따뜻함도 많았지만
결국 나를 쳐다보는 시선은 내가 받아들이기 나름이었다.
내가 혹시나 다칠까 봐 가만히 지켜만 봐주던 사람들도
지금은 고맙지만 그때는 왜 나를 바라만 보고 있을까
내가 우스워져서 그런가 싶은 생각을 많이 하였다.
나의 생각과 남의 생각이 불일치할 때
오해가 생기고 그런 오해를 이해할 수 있는
여유는 난 가질 수 없었다.
그때의 난 신경 쓰고 살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신경 쓰며
굳이 내 마음에 가져와
천천히 깊게 밀어 넣었다.
그때마다 생긴 마음의 출혈은
매일 밤 눈물로 쏟아져 나왔다.
돈이 없을 때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면 되었고
힘들 때는
잠시 쉬면 되었지만
건강을 잃었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망가진 나를 일으켜 달라는
기도뿐이었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입원하였던 성모병원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기도문을 방송으로 틀어주었다.
난 그 기도문을 따라 매일 아침 기도하였다.
일어서기만 하면
예전처럼 뛰는 것은 바라지 않을 테니
남들처럼 걷고 숨 쉬며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기만 해도
지금 받는 시선과 동정의 눈빛은
날 깊게 찌르지 않을 테니
그 사소한 일상만이라도 얻을 수 있게
수 없이 기도했었다.
그리고 병원 응급실에 들어간 지
한 달이 흐른 뒤
비록 항암약에 그 많던 머리를 잃었고
내가 알던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아니었지만
난 걸어 나왔다
세상 밖으로
망가진 나를 일으킨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