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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Him Nov 10. 2021

11. 마음의 흉터

사라지고 남은 것들


시간의 흐름에 의해

고마운 누군가들로 인해


상처로 인한 마음의 구멍들은 완벽히 메꿔지지는 않지만

거미줄처럼 추억들과 시간들로 함께 서서히 엮어진다.


그렇게 기억은 미화된다.




아픔의 향기가 시간의 바람에 실려왔다.


아직도 처음 백혈병을 진단 받은 6월이 되면

그날이 떠오르면서 두발로 서있는 내가 놀랍다.


항암 치료를 위해 왼쪽 가슴에 뚫었던 히크만 바늘의 흉터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흉터는 이제 흔적으로만 남았지만

그 바늘을 달고 살았던 그 시절의 마음의 흉터는 더욱 진하게 선명하다.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서

그때 더욱 놀아둘 걸

그때 더욱 공부해둘 걸

그때 더욱 효도할 걸

하나하나 쌓이는 아쉬움이 커갈수록

확실히 그때가 이제는 내 현실과 멀어진 시대라는 것을 느낀다.


생존과 내일 눈뜨기만을 기대하던 그 시대에 난

후회보단 내 상황에 대한 원망뿐이었다.


나의 상황 속에 가장 근접하게 들어왔었던

엄마에게 내가 백혈병에 걸렸던 상황을 마치 남의 일인듯이

물어 볼때가 있었다.


" 엄마는 내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했을 때  무슨 기분이었어?"


엄마의 대답은 어느정도 예상했었지만

엄마는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사는 기분이 안드신다고 대답했다.


나도 잠시 느꼈던 죽음에 대한 불길함을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 대입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온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미안했다.


아프고 싶은 아들은 아니었지만

결국 아팠던 아들이어서..


엄마는

내가 입원한 성모병원까지 집에서부터

대략 1시간정도 운전을 해야 하는데

나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어떻게 잠에 들었는지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으셨다고 했다.


지난일을 털기 위해 물어본 질문이었지만

오히려 지난일이 상기 되었는지

웃으며 출발한 엄마와의 산책이 울면서 끝이 났다.


나만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던 마음의 흉터가

우리 엄마에게도 남아 있었다.


지나고 나서 느껴지는 아픔의 향기는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내가 백혈병을 겪으며 느꼈던 고통들이 끝이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삶이 이전과 같은 궤도로

올라 섰을 때


나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받아 들여 준

내 주변이 느낀 그날의 고통을 전해 들으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


그리고 지난 날을 회상하면

내가 무너질까봐 내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았던 부모님에게

그 부모님이 무너질까봐 잡아준 누나들에게

누나들이 무너질까봐 힘이 되준 매형들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한다.


너무나 힘들었던 나의 투병의 흔적들을  

서로가 느낀 감정들로 엮어

그렇게 우리 가족에겐

추억이 되었다.


잊을 수는 없지만

서서히 잊혀져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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