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의 독백
3.
그 여름날은 그 날부터 몹시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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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정적, 나는 무언갈 말하려 옹알거리며 입술을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난 살 굿 빛이었어."
생각에 기인한 단출한 대답이었다.
Z는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살구?"
"응 살구."
나는 Z에게 어깨를 으쓱 살구며 말했다. 그런 Z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꽤 재밌는 대답인데?"
Z는 빙글 돌려 웃더니 감탄했다. 나는 그런 Z가 나를 놀리는 걸 알면서도 신기하게 생각해 되물었다.
"발칙한 대답이라곤 안 하네?"
그렇게 Z에게 말했다. 그리곤 이내 생각에 잠겨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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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쯤이었다.
오랜만에 학교를 지났을 때 이상하게도 거기엔 차도, 사람도, 동물도 없는 오롯이 혼자만 있는 공간이었다.
바람이 나무의 낙엽 머리칼을 흐트러트리고, 나무는 그런 바람의 손길이 좋은지 그르렁 거리며 소리를 내었다.
텅 빈 공간에 오롯이, 나만이 있는 세상이었다.
그 세상 가까이에 Y가 있었다.
나는 그런 Y를 알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번호를 물어봤고, 몇 번의 만남, 몇 번의 술자리 끝에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으로 Y를 품에 안을 날이었다.
자취방. Y의 방은 벽지를 새로 바른 듯 베이지 색 벽지에 풀이 바짝 들어있었다.
Y가 입고 있던 블라우스의 단추를 풀었다.
봉긋이 나온 가슴께는 꽤나 도드라졌고 내가 멍하니 쳐다보자 Y는 수줍게 웃으며 내 이마를 '툭' 쳤다.
앞섬을 풀어헤치자 Y의 상반신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어느 한구석, 관능적이기보다 앳된 소녀의 그것과도 같았다.
Y는 왼쪽 윗가슴에 점 세 개가 흩뿌려저 있었다.
입술은 작고 도드라졌다.
몸 어디에도 이렇다 할 흠이 없이 새하얗고 깨끗한 색이었다.
내 가슴께까지 오는 작은 키와 본인 쇄골뼈까지 오는 머리칼, 둥근 눈썹, 속쌍꺼풀.
그 작은 몸이 내 몸과 얽히고설켰을 땐, 나는 외로운 사람에게 외로움을, 모자란 사람에겐 더한 것을 나눠준 듯 다 가진 자의 표정이었다.
한 템포, 한 템포... 처음은 느리게, 점점 진동의 폭이 짧아졌고 몸과 몸이 맞닿을 때마다 서로의 오감은 쾌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서로의 입술에선, 낮고 높은 음의 단말마가 오고 가며 화음을 이루었다. 격정적인 탄성, 스타카토의 신음은 묘하게 서로의 전율을 고조시켰다.
이윽고 감정선의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Y는 내 오른쪽 어깨춤에 머리를 가져다 댔고. 그녀의 이로 어깨를 깨물었다.
한 소끔, 서로가 끓어올랐을 무렵, 서로를 말없이 부둥켜 앉고 사랑을 속삭였다.
계속해 Y를 만났다. 고삐가 풀린 듯, 서로가 서로에게 이끌려 밤이건 낮이건 시간이 될 때마다 서로를 찾았다.
그 무렵, 나는 오른쪽 어깨 끄트머리에 네모반듯하게 잘린 새하얀 파스가 붙어있었다.
그렇게 몇 달쯤 되었다.
서로가 점차 소원해지고, 싸움이 잦아졌다. 서로의 흠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두 번의 헤어짐을 통해 서로를 그리워하는 게 아닌, 서로의 흠을 바라보게 되었다.
의미 없는 싸움, 다툼, 이기심, 질투 이런 것들이 뭉쳐서 엄청난 감정으로 변했다.
그런 감정들을 통해 비친 Y를 보았을 때, 나는 Y를 덮고 있는 피부가 하얀색이 아닌, 살 굿 빛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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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또 Y 생각하는구나?"
멍한 표정의 나를 바라보고 Y가 말했다.
"응, 네가 첫 섹스는 무슨 색이었느니, 어쨌느니 이야기하는 통에"
정신을 차린 나는 Z에게 말했다.
"그러시겠지, 애초에 당혹스러웠으면 장단을 맞추지 말았어야지."
Z는 나를 놀리듯 말했고 그런 Z를 보며 나는 그냥 겸연쩍게 웃었다.
Z의 눈은 아직도 검은색에 초점이 머물러 있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