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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Feb 11. 2018

결국 또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라인 공간에 사진을 끊임없이 올리고 소비하는 사람으로서 모순적인 말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사진을 과하게 찍는 행위를 경계하고 있다. 타인에게 끼치는 피해를 제외하고도 스스로에게 두 가지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물리적 데이터가 불필요하게 커지고 있고, 그걸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점점 커진다. 더 중요한 사실은 내가 사진(또는 영상)을 찍는 동안 온전히 그 순간에 몰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소중한 순간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과 다를 때가 많다.

반면 렌즈와 사진 처리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순간을 포착하는 행위는 더 편리해졌다. 그리고 사진을 공유함으로써 얻는 반응도 즉각적이다 보니 찍고 올리는 패턴에 중독된다.

그럼 나는 왜 이리 찍는 행위에 집착할까? 이미 답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흘러가는 순간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기왕이면 내가 원하는 아름다운 구도와 색감으로. 비록 그것이 진실을 왜곡할지라도.

왜곡된 욕망을 충족하는 데 있어서 내가 기계를 딱히 가리지 않는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즉, ‘장비병’이 없다. 최근 5년여 동안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사용한 도구는 고작 스마트폰에 달린 작은 카메라였고, 갤럭시 S1(곧 S9이 출시된다고 한다), 아이폰 4, 4S를 거쳐 요즘은 5S를 용케도 잘 쓰고 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카메라를 새로 샀다. 인정한다. 가장 큰 모순을 저질렀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번 생에 계속 사진을 찍고 소비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이미지를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그렇게 라이카에서 나온 엔트리급 디지털카메라로 결정했다. 소위 말하는 ‘가성비’는 따지지 않았다. 비슷한 가격으로 훨씬 사양이 좋은 DSLR을 살 수도 있지만, 적어도 라이카여야 했다. 라이카로 정한 이유에 대한 변명은 하지 않겠다.

지난 도쿄 여행 동안 거의 모든 사진은 스마트폰이 아닌, 새로 산 카메라로 찍었다. 내가 스무 살 적, 아버지가 처음으로 디지털카메라(니콘 쿨픽스 4500)를 사주셨을 때 사진으로 기록되는 세계가 너무 신기해서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던 것처럼 오랜만에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화면 너머에는 주로 수현과 윤이 누나가 보였고, 둘의 배경에는 도쿄 곳곳에서 마주한 세련된 장소가 있었다. 모델이 좋은 건지, 라이카의 렌즈가 좋은 건지 의외로 컬러 사진의 색감이 좋아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또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많은 사진을 남겼다. 셔터를 누르는 동안, 온전히 셋이 여행하는 순간을 놓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침 수전 손택은 사진에 관한 비평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다양한 형태의 소유이다. 우리는 사진이라는 대용품을 통해서 소중한 사람이나 사물을 소유하는데, 이런 소유 방식 덕택에 사진은 독특한 오브제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우리가 일부 경험했든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든 어떤 사건을 소비하기도 한다. 이런 소비에 길들여진 탓에 우리는 경험(직접 겪었는지 전혀 못 겪어본 경험인지)을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우리는 이미지 제작과 기계를 통한 이미지 복제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직접 겪기보다는) 일종의 정보 형태로 소유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사진의 세 번째 소유 형태이다.

-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  p.22


언제쯤 이 소유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우선 새로 산 카메라부터 적응한 다음에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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