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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Dec 11. 2018

지금 서울이 담아낼 수 있는 것

매거진 B 서울 개정판(2nd Edition) 취재 후기

서울 개정판을 준비하며

매거진 B는 지난 7년 동안 주로 균형 잡힌 브랜드를 소개해왔다. 그리고 2016년부터는 도시도 다루고 있다. 도시 역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요즘의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2018년 말 기준으로 베를린, 포틀랜드, 교토 편을 출간했고, 서울도 2016년 10월에 처음 다뤘다.


일부 섹션을 보강해 서울 개정판을 준비하자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건 올해 여름 즈음이다. 내부 에디터에 따르면 이미 작년부터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서울이 빠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획 회의를 통해 2016년 초판에서 소개한 6개 카테고리(패션, 라이프스타일 & 디자인, 스테이, 뮤직, 다이닝, 커피)를 업데이트하고, 서울의 체질을 보여주자는 의도로 ‘살기 좋은 도시’, ‘편의성과 쾌적함을 갖춘 도시’ 관점으로 새로운 섹션을 추가하기로 결정됐다. 전자가 산업의 지형을 보여준다면 신설된 후자는 행정의 지형을 보여준다.


그 사이 나도 B 팀에 합류했다. 며칠 뒤 DJI 편 마감에 투입됐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10월 넷째 주. 마감을 마칠 즈음 서울 개정판 준비로 신설된 섹션을 배당받았다. 위에 말한 내용도 이즈음 들었다. 그동안 내 선에서 대부분 해결할 수 있는 작업(리서치, 집필과 편집)을 해왔다면, 이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외부 필자 3명, 번역가, 포토그래퍼, 일러스트레이터의 도움을 받았고 덕분에 3편의 에세이, 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뷰, 서울의 정교한 교통 시스템과 담당자 코멘트, 서울의 위상과 인프라의 변화를 보여주는 숫자들을 지면에 담을 수 있었다.



섭외, 섭외, 섭외

먼저 서울에 관한 에세이를 쓸 외부 필자 2명을 더 섭외해야 했다. 내가 1순위로 생각하고 있던 두 명에게 콜드 콜을 했고, 운이 좋게도 그들의 글을 받을 수 있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브라이언 해리스 기자는 자신이 한국에 부임한 2016년 겨울의 촛불혁명을 언급했고, ‘오픈하우스 서울’의 임진영 대표는 몇 년 사이 도시 정책과 민간 영역에서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건축 지형에 대해 썼다.


형, 저 그리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2018년 11월 4일의 트윗


그리고 이미 2016년 서울 편에 기고한 적이 있는 박찬용 에디터가 후속 취재를 통해 글을 거의 새로 썼다. 그는 반응이 좋았던 지난 칼럼 ‘서울형 젠트리피케이션의 공식’의 패치 버전을 뚝딱 만들어냈다. 물론 말이 ‘뚝딱’이지, 다른 마감 중에도 불구하고 을지로 곳곳을 직접 다녀오며 품을 많이 들였다. 원래 제목은 서울의 톰과 제리였는데 다른 에세이 제목들과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아쉽지만 조율해야 했다. 분량이 제법 긴 편이라 지면 상 일부 덜어낼 확률이 높았는데, 그는 편집하더라도 마지막 단락만은 꼭 남겼으면 한다고 부탁하기도 했다. 마지막 두 문장은 이렇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은 힙스터가 아니라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에 거주하거나 세탁소를 운영하던 서민 혹은 서민형 사업 운영자다. 행정 당국은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서울시장 인터뷰는 일정을 잡는 게 가장 큰 미션이었다. 2018년 10월 24일, 시장의 전 보좌관이자 ‘보수비서의 진보시장 관찰기’라는 이름으로 글을 연재했던 신영웅 씨와 처음 통화를 하며 자초지종을 밝혔고 다시 소개받은 이지나 주무관을 통해 가까스로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영웅 씨는 1달, 최소 2주 전이어야 일정을 확보할 수 있지만 “일단 어떻게든 뚫어볼게요”라고 답해 나를 안심시켰고, 다행히도 약속을 지켰다. 나중에 전해 듣기론 다른 일정 하나가 취소되면서 그 운이 내게 넘어왔다고 했다. 그렇게 11월 14일 오전 9시, 서울시청 6층 시장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청 ©표기식


큰 테이블 건너에는 익숙한 얼굴의 시장이 앉아 있었는데, 그 테이블 옆으로 익숙하지 않은 얼굴의 보좌관 네 명도 앉아 있었던 것 같다. 혹시라도 돌발 상황이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을까? 오랜만에 입은 셔츠 한쪽이 이미 땀으로 젖어 난처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날 사진은 표기식 실장이 찍었다. 표 실장은 이미 B의 파타고니아 편에서 이본 쉬나드의 초상을 담기도 했으며, 지난 3월 모노클이 한국을 커버했을 때 포토그래퍼로 참여한 바 있다. 그는 짧은 인터뷰 시간에도 불구하고 꽤 순발력 있게 시장실 곳곳을 담아냈다.



메가시티가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살기 좋은 도시’, ‘편의성과 쾌적함을 갖춘 도시’ 관점으로 서울의 어떤 면을 소개하는 게 좋을까? 여러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전체를 관통할 만한 주제가 모호했다. 가볍게 다루자니 누구나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 같고, 한편으로 서울은 너무 많은 부분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실체가 모호했다. 임진영 대표가 에세이에서 언급한 것처럼 ‘1000명의 시민에게 서울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1000개의 지도가 만들어질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침 워싱턴 D.C.에서 잠시 이곳으로 출장 온 후배를 만났다. 현재 세계은행 한국 녹색성장 신탁기금(KGGTF) 팀에서 일하고 있는 이호성 도시·교통 담당관이다. 그는 의외로 정책의 일관성을 언급했다.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매번 뒤집듯 바꿀 수 없다는 말이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서 한국의 공공 부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많이 보고 있는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밌어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많은 부분이 바뀌는 것 같지만 의외로 바뀌지 않는 부분도 있어요. ‘창조 경제’, ‘4차 산업혁명’ 등 핵심 메시지만 바뀌는 셈이죠. 정부나 각 공공기관에서 하는 업무는 이어질 수밖에 없어요. 정치 지도자나 관리자가 바뀐다고 해서, 실무자까지 다 바꿀 수는 없거든요. 그리고 공무원이야 1,2년 만에 보직이 바뀌더라도 주요 연구원 등 싱크탱크나 공사에서는 그 업무를 계속하고 있어요. 어떤 정책이 한 번 정해지면 예산에 그대로 반영이 되고... 생각보다 일관성이 있어요.”


그는 정부 부처가 유닛 단위로 움직인다고 덧붙였다. 일반 기업과 같이 기능과 상황에 따라 정부 조직을 유기적으로 조율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매번 정부 부처를 엄청 뒤집고 개편하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사실 유닛은 그대로 간대요. 업무는 그대로이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때) 해양수산부가 폐지될 때, 수산물 분야는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로, 해양 및 항만분야 등 인프라 만드는 건 국토해양부로 보냈다가 나중에 (박근혜 정부 때) 다시 떼어내 합쳐서 해양수산부로 부활시켰죠. 유닛을 쪼개고 붙이는 문제라는 거예요.”


한편 그즈음 나는 <플레이스/서울>이란 책을 보고 있었다. 이 책에서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긍정적인 편은 아니었다. 저자인 피터 W. 페레토는 “쉼 없는 개발의 물결에 편안히 몸을 내맡긴”, “모더니즘의 새로운 돌연변이”, “제 실존을 숙고하기에는 너무나 바쁘게 움직이는 대도시”라고 서울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그나마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분야가 있을까? 다시 한번 호성이 힌트를 줬다. 본인이 도시·교통 담당이라 더 추천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는 서울의 교통 분야가 정말 대단하다고, 그런데 서울 사람만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교통의 주요 요소를 꼽았고, 이지나 주무관을 통해 연결된 각 부처 주무관에게 연락을 돌렸다. 연말 시즌이기도 하고, 다들 업무에 바빠 대부분은 전화 통화로 대체했고 그중 일부 공무원은 관련 문서를 메일로 보내주기도 했다. 딱 한 분이 시간을 더 내어줬다. 덕분에 서울로7017과 연결된 사무실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도시 공간에서 교통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려면 일러스트레이션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했고, 전부터 안면이 있는 김민지 일러스트레이터(AM327)에게 급히 메시지를 보냈다. 공식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몇 가지 스케치를 보냈고, 그 역시 여러 번의 단계를 거쳐 최종안까지 보내줬다. 덕분에 글만 팍팍하게 들어갈 뻔한 지면이 조금은 더 부드러워졌다.


내가 초반에 보낸 컨셉 스케치. 오른쪽은 민지씨 그림이다. 완성본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손현/김민지


서울의 여러 수치를 보여주는 페이지는 지난 10월부터 사무실로 출근 중인 한동은 어시스턴트와 함께 진행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통계 자료는 너무 많은데, 그 속에서 어떤 주제로 묶어야 할지 더 고민했다. 여담이지만 하필 마감 중에 서울시 홈페이지가 대대적으로 개편하느라 접속 자체가 안되던 때가 있었는데, 동은 씨 덕에 다행히 잘 마무리한 것 같다.


앞으로 10년 뒤에 큰 변화를 초래할 요인인 ‘인구’를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지만 다른 취재와 병행하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었다. 마지막 교정 직전에는 아마도 B를 주로 접할 독자가 속한 청년층의 현황을 일부 추가했다. 참고로 서울에 살고 있는 청년층(25~34세)의 미혼 비율은 71.6%, 그중에서도 1~2인 가구 비율은 51.3%라고 한다. 둘 다 집계 시점이 조금 지났기 때문에 두 숫자는 앞으로 더 증가하지 않을까 싶다.


+ update: Figures 페이지에 서울시가 KT와 함께 제공하는 '서울시 일일 생활 인구'를 실었는데, 그중 '관내이동' 데이터를 활용해 이를 시각화한 글을 발견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살펴보시길.



적당한 재미

잡지 에디터 10년 차인 찬용 씨는 내게 이런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결국 잡지는 ‘엔터테인먼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아카데믹하게 접근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재미가 담겨 있어야 독자들이 페이지를 넘기겠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 재미까지 담진 못했다. 평소에도 유머와는 거리가 먼데, 재미 요소를 어떻게 담을 수 있을지는 차차 고민해야겠다. 본격적인 몸풀기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몸풀기’라고 적기엔 이번 취재 중에 은근히 부담이 컸다. 갓 팀에 합류해 뭔가를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확실히 배운 점은 하나 있다. 지면은 디지털 포맷과 다르다는 점. ‘한정된 지면’은 말 그대로 여러 제약을 주지만 한편으론 그 안에서 좀 더 밀도 높은 상상을 가능하게 했다.


이번에도 열일한 인하우스 포토그래퍼인 윤미연(aka 미요)이 팀원들에게 각자 '서울'에서 찍은 영상을 모아 편집했다.


이 글에서는 내가 담당한 섹션만 소개했을 뿐이다. 여섯 개의 씬(scene)과 더불어 아우디코리아와 따로 협업해 제작한 루트 B(Route B)까지 있으니 분량으로 따지면 겨우 1/8이다. 편집장을 비롯해 인하우스 팀과 함께 협력한 외부 스탭까지 고려하면 참여 인원은 훨씬 많다. 아쉽게도 이번 서울 개정판에는 ‘컨트리뷰터(Contributor)’ 페이지가 따로 없다. 대신 페이지 곳곳에, 책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 그들의 이름이 엔딩 크레디트처럼 들어가 있다. 그 이름을 넣으려고 다들 한남동에서 야근을 밥 먹듯 했고, 귀가할 땐 서울의 우수한 교통망을 활용했다. 한 번은 퇴근길에 택시 기사의 코멘트를 따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책은 나왔고, 많은 독자들이 즐겁게 읽었으면 좋겠다.


©손현


박은성 편집장의 글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다행히도 이번 서울 개정판을 통해 만나고 취재한 이들이 그 우려를 해소시켰습니다. 패션과 라이프스타일・디자인, 스테이, 뮤직, 다이닝, 커피를 아울러 6개의 비즈니스 영역에서 활동하는 각각의 크리에이터들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냉소보다는 애정을 품고, 이 도시에 퇴적된 것을 담담히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제시하는 아이디어는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사명감이나 트렌드를 선도하려는 의지보다 ‘지금 서울이 담아낼 수 있는 것’에 집중합니다. (중략) 관계를 맺어온 것의 변화를 관찰・추적하고 지면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앞으로 매거진 B가 다룬 여러 도시와 브랜드의 의미 있는 순간을 지속적으로 기록하려면 마치 현재 서울의 크리에이터들이 그런 것처럼 재단이나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끌어안는’ 연습이 필요하겠죠. 비단 책을 만드는 일뿐 아니라 삶의 여러 방면에서 창의적 에너지는 이 연습을 통해 발휘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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