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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현 Jun 03. 2019

안토니오의 어느 하루

즐거움은 근심에서 나온다

여보세요?


낯선 전화다. 무심코 받으니 동대문에서 외국인들이 나를 찾고 있다고 한다. 오늘 일정표를 찾아보니 낙산 문화해설이 오전 10시로 잡혀 있지 않은가. 서울 문화관광해설사로 6년째 활동 중인데 오후 일정으로 착각해 관광객에게 실수를 한 건 처음이다. 서둘러 달려갔으나 약속 시각에서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보더니 미국인 나탈리 호(Natalie Ho) 자매는 괜찮다며 웃었다. ‘안토니오’라는 가톨릭 세례명으로 내 소개를 하고 미안한 마음에 낙산 투어 후 점심을 사겠다고 하자 반색을 하였다. 아침부터 소동을 피워서인지 정신이 어수선했다. 내가 외국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니 이런 여유와 배려심을 보여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사연 많은 낙산 성곽길

섬처럼 길 한가운데 있어 외로워 보이는 동대문. 이곳에서부터 일정을 시작했다. 조선시대 사대문 중 하나이자 보물 1호 건축물이다. 고종 때 중건한 성돌은 15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검푸르다. 낮은 지대에 위치해 적의 공격에 방어하려고 사대문 중 유일하게 반달 모양의 옹성이 둘러쌌다. 유학의 덕목인 인(仁)을 넣어 흥인문이라 했는데, 고종 때 지세를 보강하는 산맥의 한자 지(之)를 넣어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불렀으니 이름 하나에도 세심하게 정신을 담아내었다. 어디 그뿐인가. 매일 밤 10시경 인정(人定)이라 하여 28회 종을 쳐서 통행금지를 알리고, 다음날 새벽 4시경 파루(罷漏)라 하여 33번을 쳐서 그 해제를 알렸다고 한다. 문 개폐시간에 맞춰 백성들이 마치 구름처럼 몰려온다 하여 종로를 운종가(雲從街)라고 부르기도 했다. 육의전이나 피맛골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는 어떠한가. 청량리로 가는 도로를 개설한다며 도성을 파괴하고, 전차가 동대문을 통과하도록 만들어서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이제는 차도에 둘러싸인 섬을 보며 옛 모습을 반추하는 사이에 나탈리가 불쑥 던지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한국인들은 잘 훈련된(well-disciplined)
민족인 것 같아요.


교통질서를 준수하고 매뉴얼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이다. 하기야 복잡한 교통체계 속에서 차량이나 행인들이 신호를 잘 지키는 것을 보고 중국인들도 한국이 선진국임을 인정한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휴지통을 찾기 어렵고, 버스 정류장에는 노선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하는지 교통정보가 실시간으로 보여주니 그럴 만도 하다. 하물며 지하철에는 ‘이 역은 타는 곳과 전동차 틈새가 넓어 발이 빠질 수 있으니, 내릴 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친절한 방송과 함께 자막이 뜬다. 게다가 남성용 화장실 변기에는 큰 파리가 그려져 정조준을 유도하며 ‘남자가 흘리는 건 눈물만이 아닙니다. 한걸음만 다가서세요’라는 야릇한 글귀까지 있어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외국 어디를 가도 교통정보나 공중질서를 꼼꼼히 알려주는 나라를 본 적이 없다. 한편으로는 공중 에티켓을 자율적으로 지키기 힘든 우리의 문화적 특성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민낯을 보여주지만 한결 나아진 질서 의식을 동시에 느껴본다.


낙산으로 가는 언덕에는 이화여대 병원과 동대문 교회가 오랫동안 있었는데, 낙산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다 이전하고 그 자리엔 한양도성 박물관이 야생화 군락지와 함께 눈길을 끌었다. 낙산성곽을 따라 올라가면 왼쪽에 이화 벽화마을이 있고, 오른쪽은 장수마을이다. 이화마을은 정부 지원으로 예술가들이 건물 외벽에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해 낡고 소외된 마을 이미지가 밝고 화사하게 바뀌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이화장(梨花莊)이 돌담 너머로 보이고, TV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으로 인해 통영의 동피랑 마을처럼 인기 있는 동네가 되었다. 그런데 관광객의 소음과 쓰레기 때문에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는가 하면, 외부인이 늘어나 마을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건너편 장수마을은 정반대다. 주민들은 대부분 고령자가 많아 뉴타운 재개발을 반대했고, 그냥 고쳐서 살 수 있는 마을재생 사업에 성공한 지역이다. 이 곳을 지나가 보면 오래된 담벼락과 좁은 골목길, 지붕엔 호박넝쿨이 덮여 있고 그 사이로 고양이가 유유히 지나간다. 허름한 마을이지만 유년시절 동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편안하였다.


문향(文香) 가득한 성북동 어귀에서

동대문에서 혜화문까지 3.2km의 낙산성곽 길은 서울을 좌우로 볼 수 있는 멋진 조망권을 선사하는 코스다. 성북동 국시 집에서 나탈리 자매와 담백한 국수로 출출함을 달랬다. 바지락, 멸치가 아닌 사골 육수로 국물을 내고 호박과 다진 고기를 올린 칼국수에는 정성이 담겨 있다. 예전에 김영삼 대통령이 즐겨 찾던 곳으로 유명해진 이 식당은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성북동 어귀에는 나폴레옹 과자점 건물이 눈길을 끈다. 과자점 이름이 왜 나폴레옹일까 궁금해 찾아보니 원래는 초대 사장인 강인정이 1968년 일본에서 제과기술을 배워와 ‘동경제과’라는 상호로 등록하려 했으나 그 시절 정부로부터 거절되었다고 한다. 낙담하여 집에 왔는데, 아들이 읽고 있던 나폴레옹 전기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한때는 제과 제빵 명장의 산실로도 유명했고, 군산의 이성당, 대전의 성심당과 더불어 전국 5대 빵집의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단팥 빵과 슈크림 빵이 대표적인데 좀 비싼 게 흠이다.


이화마을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한 관광객들 ©손훈
마음씨 좋은 나탈리 자매와 동대문을 배경으로 ©손훈


나탈리 자매와는 다음을 기약하며 이즈음 헤어졌다. 그리고 기왕 시내로 나온 김에 북악산 자락을 걷고 싶었다. 혜화문에서 숙정문과 창의문으로 넘어가는 성곽 길은 경사 때문에 좀 힘들긴 하지만 북악 스카이웨이와 북한산의 멋진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져 도심 속의 자연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걷다 보면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말년에 사셨던 심우장(㝷牛莊)이 있고 그 위에 달동네라 불리는 북정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성북동은 물이 맑고 경치가 좋으나 땅에 돌이 많아서 쓸 수 있는 농토가 거의 없다 보니 정착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영조는 도성 수비를 강화하려고 1765년 포목의 마전권(시장에서 파는 베와 무명 등을 햇볕으로 표백하는 것)을 주어 주민들의 생계를 도와주었고, ‘마전터’는 성북동의 옛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마전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해 메주 담그는 일(훈조)을 할당해 궁궐에 납품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큰 가마솥에 콩을 삶으면 ‘북적북적’ 소리가 나서 동네 이름이 북정마을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문득 어릴 때 할머니가 메주 만든다고 큰 솥에 콩을 삶으면 그 구수한 냄새에 동하여 슬쩍 콩을 집다가 손을 덴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호호 불며 간식으로 그저 그만인 메주콩이었다.


성북동은 삶의 터이자 인물의 보고다. 교통과 자연환경이 좋아 유명한 문인,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고, 종교단체, 학교도 유난히 많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 여전히 남아있고, 복개된 성북천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외국 대사관저와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다. 왼쪽 언덕에는 한국전쟁 이후 서민들 주택이 무분별하게 들어서 있어 빈부차가 분명한 곳이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중


김광섭 시인은 <성북동 비둘기>에서 달동네의 애환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한때 요정이었던 대원각이 사찰인 길상사로 바뀌면서 성북동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주인인 김영한 보살은 법정 스님과의 인연으로 1996년 1천억 원에 달하는 땅과 건물을 대한불교 조계종에 시주했다. 자신은 홀로 살면서 그의 영원한 연인이자 시인인 백석을 기다리며 애틋한 사랑을 간직하여 왔다고 한다. 임종 무렵, 눈 내리는 날에 자신의 유골을 길상사 경내에 뿌려 달라고 했으니 극락전 앞 4백 년 된 느티나무는 그들의 사랑을 말없이 지켜보았으리라. 역사적 향기와 많은 사연을 간직한 성북동의 매력에 빠져있는 건 나 혼자만일까.


길상사 극락전 ©손훈


전망 좋은 북악산 성곽길

말바위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받아 경사가 심한 북악산 성곽길로 들어섰다. 잠시 후 사대문 중 북문에 해당하는 숙정문에 이르렀다. 이 문은 음양오행설에 따라 음(陰)에 해당하여 늘 닫아두었고 가뭄이 있을 때만 남대문을 닫고 북문을 열어 두었다 한다. 정상에 이르니 소나무와 바위에 흰색 페인트로 둥근 원이 여러 군데 그려져 있다.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총격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31명의 공비들이 청와대를 공격하자 우리 경찰, 군인들과 치열하게 싸웠고, 공비들 대부분은 사살되고 김신조만 체포됐다. “왜 내려왔느냐”라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며 살벌한 대답으로 응수했다. 그런데 이 용맹한 공비들이 별 성과도 없이 패전한 건 여기의 성곽들 덕분이라는 얘기가 전해진다. 보기에 높지는 않지만 엄폐하여 사격하기 좋도록 근총안, 원총안의 총구가 있고, 화살을 쏘도록 만들어진 타구가 있어 우리가 방어하기 좋았다는 것이다. 반면에 공비들은 나무와 바위 뒤에서 교전해야 했으니 불리한 지형에 놓여 있었다. 나중에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성곽 18km의 중요성을 깨달아 1975년부터 복원을 시작해 지금 70% 정도 복원했고, 명칭도 ‘서울 한양도성’으로 바꿔 도성의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성북동 전경, 숙정문(북대문), 경사 심한 북악산 성곽길, 1968년 공비와의 총격 흔적 ©손훈



다시 도심으로

도심으로 돌아와 잠시 교보문고를 들렀다. 조선왕조실록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참고 서적을 구입하려고 책들을 뒤적거렸다. 계산대에 가기 전, 뭔가 허전하여 소지품을 챙겨보니 휴대폰이 없는 게 아닌가! 가슴이 철렁했다. 산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최신형 갤럭시 9인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거쳐간 서점 코너들을 다시 둘러봤지만, 없었다. 내 폰 번호로 여러 번 전화해도 응답이 없어 일단 교보문고에 분실 신고를 했다. 아내의 전화번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마리아(아내의 세례명)’로 등록해 놓았으니 번호가 기억나지 않는다.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제일 아쉬운 건 전화번호부와 저장된 많은 사진들이었다. 미리 백업해놓을 걸 하고 스스로 탓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20여 분을 헤매다가 아내 번호가 문득 떠올라 서점 직원에게 부탁해 전화를 걸었다. 


“당신한테 전화하니 어떤 여자분이 받길래 그 이유를 물었죠. 종로3가역 통로 의자에서 이 폰을 발견했대요. 본인도 두 번이나 잃어버렸다가 찾은 기억이 있어서 안쓰러운 마음에 주워 고객 지원센터에 맡겨둘 테니 찾아가랍니다. 제발 좀 흘리지 말고 다녀요.”


휴, 아침부터 난리 더니 휴대폰까지 잃어버려 재수가 되게 없는 날이다. 그래도 좋은 사람 덕분에 찾을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습득한 이에게 케이크로 고마움을 전하고 휴대폰을 다시 손에 넣고 보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요즘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데 불안하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이 잦고, 약속이나 업무 같은 중요한 일을 곧잘 잊어버린다. 책이나 영화의 흐름, 대화 맥락을 잘 놓치면 증상이 의심된다고 한다.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올해로 연세가 아흔다섯이시다. 아버지는 치매 정도가 심해져 이제는 가족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이름을 부르는 탓에 대화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치매환자의 비인간적인 삶이 무척이나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오늘의 내 행적은 치매의 전 단계 증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착잡한 심정으로 지하철을 탔다. 승객의 표정도 왠지 어둡고 피곤에 절어 보였다.


“카톡!” 손해보험사에서 보낸 카카오톡 알림이었다. 가입한 적립보험이 만기가 되어 적립금을 주겠다는 통지였다. 아니, 이게 웬일이지. 보험설계사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대략 몇 백만 원쯤 될 거라고 한다. 한줄기 햇살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큰돈은 아니지만 퇴직자에게 알토란 같은 자금이 아닐 수 없었다. 낙생어우(樂生於憂). 즐거움은 근심하는 가운데서 나온다는 고사가 생각났다. 차창 너머로 푸르른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어느덧 일몰의 붉은 기운이 서서히 나를 감싸고 있었다. (끝)



2019년 5월 26일(일)

글 | 손훈

편집 | 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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