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 에디터는 토스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봤을까
‘난리네, 난리야.’
사무실을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터, 종이컵에 적힌 큼직큼직한 문구들이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죠. 서로 다른 팀에서 진행 중인 캠페인이나 프로젝트 결과물이 같은 업무 공간에서 자리싸움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설레지 않으면 없애라.”
“꼭, 필요한 기능 하나만 남긴다.”
“감동시키거나 없애거나.”
- 디자인 챕터에서 준비한 전사 2월 캠페인 ‘미니멈 피처(Minimum Features)’
“추천이 제일 쉬웠어요!”
- 피플앤컬처팀에서 진행 중인 동료 추천 캠페인
모니터 옆에는 지난달에 끝난 얼리버드 캠페인의 흔적인 파랑새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참, 이번 주에 막 공개된 토스의 첫 다큐멘터리 <핀테크, 간편함을 넘어 FINTECH - BEHIND THE SIMPLICITY>(이하 <핀테크>)를 사내에 알리는 티켓도 모든 팀원의 책상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토스팀에 합류한 지 4개월이 막 지난 신입 에디터입니다. 그동안 이곳에서 일하며, 다른 동료들이 일하는 방식을 직접 관찰해보니 왜 회사 이름이 ‘비바리퍼블리카’인지 알 것 같습니다. ‘공화주의 만세(Viva Republica)’라는 뜻처럼,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면이 있는 공화주의 속에서 회사가 굴러간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랑 지금 뭐가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음… 항상 일관되게 혼란스럽고, 항상 난리법석이고 안정된 적이 없었고, 항상 문제가 빵빵 터지고…”
2014년 9월 29일 토스팀에 합류한 초기 멤버 영철님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다행히 제 느낌이 틀리진 않았나 봅니다.
토스에는 전사 차원의 큰 목표가 있지만, 그게 작동하는 방식은 일사불란보다 난리법석에 가까워요. 생뚱맞은 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대신, 누군가 아이디어를 피칭하고 다수 팀원의 공감을 얻으면, 그걸 시도해볼 기회가 생기는 구조이죠. 물론 그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기도 합니다. 수평적 조직문화 속에 움직이다 보면, 수직적 조직문화보다는 시행착오의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핀테크>는 토스의 시작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토스는 늘, 왜 이렇게 난리인지, 이 서비스는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담고 있어요. 아직 다큐를 보지 않은 분을 위해 자세한 내용은 굳이 언급하지 않을게요. 다만, 한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This will never work.
이 말은 넷플릭스의 공동 창업자 마크 랜돌프가 쓴 책의 제목인 동시에, 영국 자동차 브랜드 미니의 2017년 광고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내레이션이기도 합니다.
당시 토스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베타 서비스 출시 두 달 만에 규제로 인해 운영이 어려워졌고, 그즈음 토스의 이승건 대표는 청와대 업무보고 자리에 참석하게 되죠. 영상만 봐도 분위기가 무겁습니다. 실제로 이승건 대표의 짧은 발표 후에는 몇 초간 정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 같은 자리에 있었던 임정욱 TBT 공동대표의 회상을 통해 정적이 무얼 의미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고위공직자 중에서 ‘아, 그때 그 사람. 거의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한계는 새로운 기회의 재료이기도 합니다. 각종 법규와 규제 안에서도 얼마든지 기능적이면서 멋진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는 것처럼요. 다행히 토스는 첫 번째 위기를 넘겼고, 우리는 여전히 이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015년 2월 서비스를 다시 런칭한 이승건 대표는 다큐 속 인터뷰를 통해 덧붙였습니다.
“규제를 바꾼다, 규제를 부순다기보다는 이해관계자 모두가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축을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시대가 바뀌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새로운 편익이 있다’, ‘그럼 이것에 맞는 규제 환경은 이렇게 다시 디자인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이해관계자분들이 잘 공감해 주셨기 때문에 규제도 변화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토스가 굳건히 나아갈 수 있을지, 이 글이 실리는 ‘토스피드’라는 블로그가 지속 가능할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한편 입사 4개월차 에디터로서 관찰한 게 또 있답니다. 바로 손편지이죠.
손편지, 이제 좀 식상하지 않아요?
요새 다들 하잖아요.
비공개 다큐 시사회를 준비할 때 다른 팀원이 한 말입니다. 시사회에 참석하는 분들께 저희가 어떤 걸 더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손편지 아이디어가 나왔거든요. 돌이켜보니 저도 입사 첫날 손편지를 받았고요. 그러나 식상할 것 같다는 팀원의 말에 저도 그 아이디어를 잊었습니다.
그런데 시사회 당일, 손편지를 두 번이나 마주쳤습니다. 다큐 제작에 참여한 이지영 에디터가 초대된 분들을 위해 하나하나 손편지를 썼더군요. 다른 손편지는 다큐에 등장합니다. 안지영 프로덕트 오너가 2014년 간편 송금 서비스 준비를 위해 전국 각지의 은행 지점장에게 손편지 수백 통을 보낸 적이 있거든요.
“토스는 핀테크 산업에 속하지만, 점점 팬을 늘려나가는 기업 같기도 해요. 은행 지점장들을 설득하고자 손편지를 쓰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오늘도 이렇게 손편지를 쓰셨네요.”
이날 자리에 참석했던 콘텐츠 기획자이자 음악/산업 평론가 차우진님의 코멘트입니다.
토스가 여러모로 흥미로운 회사임은 분명합니다. 안팎으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라고 말해도, 비록 속사정은 난리법석이더라도 누군가는 더 나은 고객 경험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거든요. 심지어 이 다큐멘터리조차 모든 혼돈과 시행착오를 거쳐 나왔으니까요.
제가 짧게나마 관찰해온 일터의 풍경, 동료들의 초심을 느낄 수 있는 손편지, 지난 여정을 압축적으로 담은 <핀테크>를 통해 다시 이 문장을 떠올려봅니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 글쎄요, 토스의 모험은 이제 시작입니다.
* 이 글은 토스의 첫 다큐멘터리 공개를 알리기 위해 토스피드(Tossfeed)에 게재한 글입니다.
다큐멘터리가 공개된 2월 18일 저녁, 아버지에게 다큐 링크를 보냈고 새벽 1시 20분에 카톡이 왔습니다. 참고로 아버지는 30여 년을 외환은행(현 하나은행)에 몸담고 정년 퇴임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감상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대마다 상황이 다른 것도 사실이니까요. 아버지 말씀처럼 저도 더 잘 해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핀테크>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모든 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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