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TECH - BEHIND THE SIMPLICITY (2021)
<목차>
1. 토스는 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을까?
2. 금융 스타트업이 아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기업이다
3. 위기는 드라마를 만든다: 팬덤을 만드는 스토리
4. 다시, 문제 해결의 관점으로
5. 후기
토스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내가 토스를 처음 썼던 게 2015년이었다. 아무도 모르던 시기에 초기 사용자로 이걸 썼던 건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당시 스타트업에 일하면서 새로운 서비스는 뭐든 일단 써보고 익혀보고 그걸 통한 내 관점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 또 하나는 정말로 너무나 편했다. 1천만원, 1억도 아니고 몇 만원을 송금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당시 아이폰에는 은행 앱이 잘 깔리지도 않고 에러도 많아서 굳이 인터넷 뱅킹을 하곤 했다, 그게 겨우 5년 전...) 울화가 치밀던 걸 토스가 한 번에 해결해줬다.
물론 같이 일하던 동료들, 대체로 20대 중후반의 동료들에게 이거 믿을 만 한 거냐며 걱정하긴 했지만 쓸수록 만족도가 높아지는 서비스였다. 그때 '핀테크'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해외 사례들도 찾아보며 아하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금융의 신세계를 제공하는 비즈니스구나, 정도로만 이해했다. 이후 카카오뱅크, k뱅크가 나오면서 간편송금이니 신용조회니 등등 부가 서비스는 일반화되었고 그로부터 토스나 카카오뱅크에 대해선 더 특별한 생각을 하진 않았다. '젊은 금융 회사'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매우 흥미로운 부분을 몇 군데나 찾게 되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저희는 금융을 하려는 생각이 있지는 않았고요, 그냥 사람들이 살면서 제일 자주 하는 건데 너무 불편한 게 뭐가 있지? 이런 거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 이승건 토스 리더
다큐멘터리 초반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여기서 조금 흥미로운 것 두 개. 일단 이승건 대표의 공식 직함이 '토스 리더'라는 것. 표기는 '토스 리더', 말할 때는 '토스 팀 리더'라고 하는 걸 보면, 그 둘을 병행해서 쓰는 것 같다. 아무튼 회사, 대표 등의 표현을 지양하는 게 인상적이다. 나는 말의 힘, 이름의 힘을 믿는 편인데,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정확한 언어와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토스는 외형적으로는 회사가 분명하지만 스스로는 '팀'이라는 정체성을 지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100명, 200명이 되어도 우리는 한 팀이야'라고 하는 것. 이게 인상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서 기업의 구조,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장, 사업 영역 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두번째 이유를 언급할 차례다.
토스는 '사람들이 불편한 게 뭐가 있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회사다. 그래서 '간편 송금'이라는 서비스는 리서치 과정에서 발견한 문제다. 창업 당시, 5명의 초기 멤버들이 서울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하루 종일 사람들의 삶을 관찰했고, 그 과정에서 '결제의 어려움'을 발견한 것. 이렇다보니 비즈니스 과정 자체가 좌충우돌, 드라마틱했다. 그런데 왜 포기하지 않았을까?
'문제를 발견했다 ->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 ->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의 프로세스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토스를 금융회사로 보는 건 너무 좁은 시각이다. 이 회사는 솔루션 팀이다. 이런 정의를 하기까지 꽤 많은 고민이 있었으리라 본다. 다만 그 결과, 더 넓은 카테고리를 지향하면서 작은 카테고리를 선점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약간 옆길로 새자면, 나는 최근 몇 년 '음악 산업'으로 포커스를 맞추면서 스포티파이의 오디오 퍼스트 전략이 이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스트리밍 회사'라고 할 때의 성장 가능성과 '오디오 플랫폼'이라고 할 때의 성장 가능성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다. 기업/팀의 비전은 상위 카테고리로, 현재의 업무는 하위 카테고리로. 작은 영역에 집중하면서 큰 세계를 상상하는 일. 이게 바로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가슴이 뛰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다큐멘터리도 만들 수 있다. 혹자는 이걸 단지 '브랜드 영상'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본인들이 이 영상을 '다큐멘터리'라고 정의한 이상 다큐멘터리라는 관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상의 구성이나 질감, 방향성은 <매거진B>와도 유사하다. '핀테크'라는 큰 개념을 '토스가 일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여기서는 어떤 사람들이 일하나, 어떻게 일하나에 좀 더 집중하면서 큰 개념을 설명한다. 구성원들의 인터뷰, 자료 화면, 내부 회의 과정도 일부 등장하면서 '아하 포인트'를 제공한다. 이걸 보는 동안 아하, 토스는 이런 회사였구나, 깨닫게 된다.
내가 요즘 주로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콘텐츠와 팬덤 분야다. 최근에 워낙 큰 관심을 받는 분야라서 굳이 말을 더 보태야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가만히 보니 이 두 분야에 대한 (언론이나 전문적인) 관점이 의외로 좁고 편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마음 먹고, 음악과 콘텐츠 분야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팬덤과 콘텐츠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토스의 다큐멘터리는 '팬덤을 만드는 스토리'의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45분 분량의 이 영상에는 발단-전개-위기-절정-해소가 있고, 열린 결말로 끝난다. 그래서 보는 동안 살짝 가슴이 두근대기도 하고, 다 보고 나면 토스 관련 스토리를 검색해보게 된다.
과연, 팬은 어떻게 생기는가? 이 자료는 내가 여러 강의나 트레바리 클럽 등에서 팬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보여주는 내용이다. 팬 정체성은 마음의 문제고, 이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에 대해 설명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핵심은 '재발견'되는 단계고, 그걸 가능케하는 것은 '스토리텔링'이다. 콘텐츠 자체만으로 팬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들은 콘텐츠에서 스토리를 (재)발견하면서 팬이 된다. 이게 단지 음악이나 아이돌 그룹에 해당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비스나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그점에서 가장 인상적이던 부분은 바로 여기다. '우리 서비스에 미친듯이 열광하는 100명'을 만드는 것. 토스가 스스로를 '금융 회사'라고 정의하고 그 카테고리에서 비즈니스를 진행한다고 했다면 이런 시도들이 가능했을까? 토스 팀이 대단하다거나 멋지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유니콘 기업이라서도 아니고, 그걸 위해 상당히 드라마틱한 과정을 거쳐와서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를 남들과 다르게 정의하고, 그 정의 아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어려움, 정부 당국의 규제는 당시에는 이러다가 망하나,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뭐 그런 생각을 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위기가 드라마를 만든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이런 인식이야말로 그 당시의 위기를 극복하는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일을 할 때 우리가 가져야하는 마인드 셋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자기 정체성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토스 팀의 스토리는 여러가지 인사이트를 준다. 인사이트까지 아니더라도 여러 자극과 힌트를 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할까, 나는 어떤 일을 할까, 아니 다시 말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힌트.
결국 핵심은 '문제 해결'이다. 이런 관점으로 토스를 보면, 이제까지 이 기업과 서비스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바꾸게 된다. 토스는 젊은 금융 스타트업이다? 아니다. 토스는 문제를 해결하는 팀이다. 문제 해결이란 테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기업이 아니라 팀으로 정의한다.
무엇보다 문제 해결이 가능한 영역이라면 그게 금융이든 무엇이든 가능해진다. 지금은 금융의 혁신을 가능케하는 팀이지만, 나중에 토스가 어떤 영역에서 무엇을 하든 이상하지 않다. 금융으로 시작해서 스마트홈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토스가 왜? 라고 생각하다가 아하 금융 솔루션의 관점에서 부동산에도 진출할 수 있겠지, 납득하게 된다. 토스가 하는 일이 '금융을 라이프스타일로 재정의하고 문제를 해결한다'고 본다면 그렇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 초반에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 잡플래닛의 황희승 대표, 직방의 안성우 대표 그리고 본드 캐피털의 채대원 제너럴 파트너, 페이팔의 피터 샌본 부사장(Vice President) 등이 스타트업과 핀테크에 대해 진행한 인터뷰의 메시지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비슷한 스타트업의 대표, 관계자가 아니라 그들이 사업과 기업, 비즈니스 환경을 보는 관점이 바로 '문제의 발견, 재정의, 해결'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역시 '토스는 문제를 해결하는 팀'이라는 관점이다. 문제를 발견하는 일,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 한편 금융을 재정의하는 일, 그로부터 혁신을 이뤄내는 일이 모두 일관된 메시지다.
이 다큐를 보면서, 뭐랄까 살짝 설랬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결국 '나는 이 일을 왜 하느냐'에 대한 질문의 힌트를 얻었다는 인상 때문이었다. 요즘 내가 이런 고민이 많다. 왜 쓰는가, 무엇을 위해 쓰는가, 나는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대해 고민 중이고 그게 바로 결과적으로 내 삶의 방향을 정할 것이라고 본다.
최근 5년 동안 이런저런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기획을 하고, 동시에 하던 대로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가 2020년 초에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회사에 갈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단 하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로부터 삶의 비전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만 그 과정에서 좋은 팀을 만날 수도 있을 거고, 새로운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거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일을 끊임없이 재정의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토스에서 처음 '다큐 시사회' 참석을 요청받았을 때 뜻밖이라고 생각했지만 덕분에 매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시사회 현장에서도 모인 분들의 면면이 흥미로웠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분들 중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나로서는 뜻밖의 힌트를 찾아낸 기분이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고.
*토스의 초대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후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