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다시 모터사이클을 탈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온몸을 환기시키는 바람이 그리워 오랜만에 시동을 걸고 남쪽으로 향했다. 전주, 진도, 순천, 광양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팽목항의 거센 바람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아무 말 없이 잔잔한 바다와는 대조적으로 그곳의 스산한 풍경을 잊기 힘들다.
간간이 사람들도 만났다. 전주의 게스트하우스 <오래된 미래>에 들러 주인 어르신께 지난 1년 간의 안부 인사를 드리고, 순천에서는 선배와 저녁을 먹었다. 바로 광양으로 넘어가 두 밤을 자는 동안, 블라디보스톡에서 함께 출발했던 형제 중 형을 만났다. 마침 세월호 인양 작업에 참여 중이라며 현장을 구경시켜 주시기도 했다. 플로팅 도크를 선체 길이만큼 더 늘려 개조하는 작업인데, 일정이 촉박해1 부지런히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이셨다.
‘세월호’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다만 이런 상황을 만든 것도 사람이고, 그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이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모순적인 인간은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나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양에 계신 형님께 인양 작업을 하시는 동안 꼭 안전을 챙기시라고, 그저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만 드리고 작별 인사를 했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차분히 기다리는 것뿐이다. (4월 19일~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