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로
갈 곳이 없어서 또 여기로 왔다. 물얼룩진 거울 안에서 25의 내가 보인다. 예전과 다른 점은 이건 자기혐오가 아니라는 것이다. 난 천천히 25을 바라본다. 하루만 놓쳐도 까슬까슬해지는 수염이 소도의 솟대처럼 지저분한 곳에 우뚝 서 있다. 머리카락은 깎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지만 금방 자라나 곱슬머리가 되어 버렸고, 눈은 여전히 짝눈이다.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니 한 쪽 눈은 쌍꺼풀이 있고 다른 쪽은 없다. 속눈썹은 이상하리만큼 길게 자라나 있고, 어울리지도 않는 눈물점이 눈 아래에 박혀 있다. 이런게 나의 25일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데 시기가 꼬이기 시작하면서 결국 좀 더 기다린 뒤 해야할 것 같다. 계획을 잘 세우는 편은 아니지만 계획되로 되지 않는다면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성격이라 가만히 오늘 안에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시기를 놓쳐버렸다. 정확하게 어떤 일인지 밝히지 않아 비유처럼 들릴수도 있겠지만 그냥 말 그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늦게 해야할 뿐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날린 것 같아 뭔가 해야할 것 같았다.
돈이 많으면 좋은 점은 여유가 생긴다는 점이다. 돈이 많을 때는 bbq와 굽네치킨 중에서 고민하게 되지만, 좀 쪼달리면 그것보다 가격이 적은 치킨을 생각하게 되고, 그것보다 돈이 더 없다면 치킨은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돈이 적을 수록 더 신중하게 물건을 고르게 된다는 말이다. 음식점을 고를 떄도 마찬가지다. 저 가게의 음식은 가격이 어떤지, 맛은 괜찮을지 고민하게 되고, 그 때문에 가게의 외관이나 음식가격을 밖에서 확인할 수 있는지, 평점은 어떠한지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가게가 오래 살아남고 있으면 더 좋다. 적어도 평타는 친다는 뜻이다.
내가 살고있는 집 근처에 수제맥주집이 하나 있다. 가게가 그리 많이 분포한 곳도 아니고, 밖에서는 저 집이 운영하고 있는지 잘 확인할 수도 없어서 여태 가보진 않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2년동안 그 집 근처를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오늘 무언가 해야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됬고, 그와 동시에 그 맥주집이 생각났다. 난 노트와 볼펜을 들고 맥주집에 들어섰고, 혼자서 330ml짜리 맥주를 안주도 없이 시키면 눈치보이지 않을까 잠깐 생각하다가 나 말고는 손님이 거의 없어서 그냥 그거 하나만 시켰다. 맛은 생각보다 좋았다.
내가 뭐라도 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 하는 짓은 딱 둘 뿐이다. 노트와 펜을 들고 무언가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가서 뭐라도 끄적이거나, 노트북에 한글프로그램만 키고 깜빡이는 화면의 수직선을 바라보며 무언가라도 쓰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때 썼던 글들을 100%버려진다. 노트 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가 그냥 잊혀지거나, 바탕화면을 채우다가 습작이라는 폴더에 버려진 뿐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시작해 나는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동기를 정확히 말하지만 조금 부끄러울 수 있어서 말할 순 없지만, 나는 그 동기 때문에 무언가를 꾸준히 하게 되었고, 대부분은 실패했지만 그 중 몇몇은 내 기준에서 꽤나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서 아마 내 간이나 폐 사이에서 지존감이라는 결석이 조금이나마 생겼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고, 강박과 충동으로 써낸 내 글도 예전처럼 금방 버려질 것이라는 생각은 그리 크게 들지는 않는다. 적어도 한 번 쓰고 버리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나는 분명히 어렸을 때부터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게 뭐였는지, 그리고 지금 목표는 무엇인지 여기서 정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