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얼마나 받나요?라는 질문

질문이 어긋날 때

by 온기

같은 동네에 사는 고3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올해 수능을 치렀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학은 아니지만
간호학과에 합격했다는 이야기였다.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질문이 이어졌다.


간호사 급여는 얼마인지,
병원 일은 그렇게 힘든데 왜 월급은 적은 지,
정말 물도 못 마시고 방광염을 달고 사는지,
신규 때 무조건 태움을 당하는지,
교대근무는 얼마나 힘든지,
남자 간호사는 취업이 불리하지 않은지.

질문 하나하나에 나는 최대한 사실대로 답했다.
병원 규모마다 다르고,
바쁘긴 하지만 물은 마신다.
방광염을 직업병처럼 달고 살지는 않는다.
신규 때는 배우는 태도가 중요하다.
교대근무는 힘들다.
남자라는 이유로 취업이 막히지는 않는다.

틀린 말은 아니었고,
무례한 표현도 없었다.
그런데 통화를 끊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질문들은 ‘간호사’에 대한 질문이라기보다
“우리 아이는 덜 힘든 길을 갈 수 있을까요?””

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힘든데 왜 돈을 적게 주느냐는 질문,
불리하지는 않겠느냐는 걱정,
미리 알고 시작하지 않아서

손해 보지는 않겠느냐는 불안.


그 모든 말들에는

세상에는 힘들지 않고 안전한 직업이

있을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간호사여서 힘든 게 아니라,
일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물 마실 시간 없는 직업은 간호사만이 아니고,
초년생이 박봉인 직업도 간호사만은 아니다.
야근, 교대, 감정노동, 책임의 무게는
형태만 다를 뿐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사회생활의 가장 중요한 수업은

입학 전에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는 것이다.

신규 시절의 배움은

‘돈’이 아니라 ‘학습’의 영역이다.
그걸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직업 적응의 일부다.


나는 그 엄마에게
“간호사가 힘들다”는 사실보다
“삶은 원래 편의점처럼 고를 수 있는 메뉴가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 전공을 택하든,
어느 직장을 선택하든
결국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은 같다.

불편함을 견디는 법,

불합리 속에서도 균형을 찾는 법,
그리고
모든 위험을 부모가 대신 제거해 줄 수 없다는 사실.

성인이 된다는 건
보호받는 위치에서 내려오는 일이니까.


그날의 전화가
유난히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아마도
내 아이의 안위만 생각한 질문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세상의 원리를 가르치지 않는 쪽으로 기울 때,
그 친절은 오히려 아이를 약하게 만든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건
완벽한 정보가 아니라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어느 직업이든,
그 힘은
부모의 질문이 아니라
아이의 경험에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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