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 Jul 02. 2018

귀를 파다가


처음엔 엄마의 무릎에 누워 귀청소를 받았다. 엄마는 내 귓불을 사정없이 당기며 아파도 참으라고 했다. 끔찍한 시간이었다. 울며불며 거부해도 놔주지 않았다. 내 연약한 귀는 포크레인으로 마구 들쑤셔졌다. 열두 살이 된 어느 날, 나는 귀이개를 들고 혼자 귀청소를 시도했다.
"어우~"

사우나에 들어간 중년 아저씨처럼, 나도 모르게 걸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작은 독립을 이룬 것이다. 귀지를 파내는 시간은 달콤했다. 듣기 싫었던 말들이 귀지에 딸려 나오는 것만 같았다. 정교하게 파낸 귀지를 하얀 휴지에 옹기종기 올려, 엄마나 아빠에게 보여주곤 했다. 엄마는 더럽다며 얼굴을 찡그렸고 아빠는 웃으며 좋아했다. 엄마의 잔소리가 심해질수록 나는 더 열심히 귀를 팠다. 하도 파서 상처가 났는데, 딱지가 앉으려는 간질간질한 순간에 파야 제맛이었다. 아물기 전에 자꾸 긁어내자 피와 고름이 흘러나왔다. 귀에서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병원에서 외이도염 진단을 받았고, 가운을 입은 의사가 엄숙하게 선포했다.


"이제 귀 파는 거 금지야." 
 
나는 귀를 파는 시간이 좋다. 코딱지를 꺼내면 시원하긴 하지만 뿌듯함은 없다. 그러나 섬세한 손놀림으로 긁어모은 귀지는 발굴의 기쁨이 있다. 두루마리 휴지 한 칸에 그간 거슬렸던 말들이 모인다. 그것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변기나 휴지통에 던져 넣는다.








엄지 umji.letter@gmail.com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 직업이 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