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프리랜서
우리 아빠는 예순 둘이다. 공대를 나와서 반도체 회사에서 십 년 정도 일했다. 그리고 프리랜서로 쭉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탈회사했기 때문에, 내 기억 속의 아빠는 회사원이었던 적이 없다. 아빠는 주로 노트북으로 일했고, 항상 웃으며 집에 들어왔다. 나는 아빠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어느 날 중학교에서 부모님의 직업을 적어낼 일이 있었다.
엄마 - 전업주부
아빠 - ...??
책상 밑으로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 직업이 뭐야?"
"자영업이라고 적어."
음, 그렇구나.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느 날 거실 탁자 위에 카드고지서가 올려져 있었는데,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동생이 그걸 보더니 내게 말했다.
"누나, 우리 식구가 지난달 생활비를 이렇게나 많이 썼네."
나는 어쩌라는 거냐고 바라봤다. 일찌감치 철이 든 동생은 웃으며 말했다.
"이 돈을 아빠가 매달 벌어온다는 소린데, 대체 어디서 벌어오는 거지?"
나는 그제야 말귀를 알아듣고 함께 웃었다. 우리는 맥없이, 멋쩍게 웃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며칠 후 살금살금 안방에 들어갔다. 책상 위의 명함 수첩을 넘겨보고 서류뭉치를 뒤적였다. 음... 전혀 감이 오질 않네. 심문해야겠다.
아빠, 무슨 일 해?
다 큰 딸이 사뭇 진지하게 묻는다. 우리 아빠 수상한 사람은 아닐까? 일정하게 출퇴근하지도 않고, 어떤 날은 엄청 일찍 들어오고. 그러고 보니 뭐하는 사람이지? 나는 어서 이실직고하라는 눈으로 쏘아본다. 아빠는 재미있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얼굴이 벌게지도록 웃는다. 온 얼굴에 주름이 잡히도록 큭큭대며 웃는다. 예끼, 지금까지 그것도 몰랐냐며 핀잔을 준다. 침까지 흘릴 기세로 웃더니 컨설턴트란다. 컨설팅을 한단다.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뭘 컨설팅하는데."
중소기업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인증을 딸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아빠는 서류를 보여주며 눈을 빛냈다. 너도 배우면 할 수 있어. 궁금하면 내 조수로 한번 따라다녀 볼래? 아빠는 그 뒤로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명함을 받으면 어떻게 보관하는지, 왜 회사를 그만뒀는지, 회사원과 프리랜서의 차이는 뭔지, 여러 회사를 다니며 들은 이야기들, 일에 대한 만족도 등등.
회사원으로 십 년, 프리랜서로 이십 년을 산 아빠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조언을 해주곤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가 슬며시 힌트를 던지고 사라졌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고도 도움을 줬다. 아들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할 때도, 갑자기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사업자등록을 할 때도, 딸이 첫 직장에 들어갔다가 한 달 만에 사직했을 때도, 두 자식이 탁구공처럼 튀어다니는 동안 아빠는 놀라울 만큼 침착했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남의 자식 보듯이'.
딸과 아들이 모두 아빠를 닮아서인지 '탈회사' 상태다. 굳이 분류하자면 프리랜서다. 이제는 아빠가 우리에게 묻는다.
너네... 무슨 일 하냐?
엄지 umji.let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