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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떰브 Oct 09. 2020

계란

매번 계란 구우며 생각하는 것인데, 나는 왜 유독 이걸 이렇게 못할까? 단 한번도 예쁘게 구워본적이 없어. 오히려 이것보다 더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은 맛있게 썩 보기 좋게 할 줄도 아는데 왜 매번 이모양이지? 싶은거야. 그러니까 말이야. 불이라는 것이 무서운거란 개념이 생길 그 나이 때 말이지. 아무 도움 없이 혼자 처음으로 해 본 게 달걀프라이인데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실력이 똑같아. 그러다가 문득 기본이란 게, 간결하다는 게 사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거 같단 생각이 드네. 틀이나 덮개 없이 불이랑 기름만 두고 예쁘게 계란을 구워내는 건 정말이지 너무 어려운 일이야. 동그랗기는 커녕 삐뚤빼뚤 하고 노른자는 결국 터져서 갈 길을 잃고 여기저기 흰자에 섞여버려. 가장자리는 바싹 구워지고 중간은 덜 익어버리고. 그래도 어쨌든 이건 내가 한거니까 이것도 결국 내 기본 인거야. 그치? 이것저것 양념, 조미료, 향신료, 채소들을 넣어가며 내 서투른 시작점을 숨기는 건 오히려 훨씬 더 쉬운 일이구나 싶어. 냉장고 열어보니 아직 남은 계란이 6개 정도인데 솔직히 이거 다 먹고 100개를 더 굽는다고 해도 난 여전히 못생긴 계란만 구울 것 같아. 그래, 그래도 노력은 해야지. 그런데 말야. 노력한다는 게 계란틀을 산다거나 예쁘게 굽기 위한 기술을 연마하겠다는 그런건 아니고, 나 아닌 누군가 서툴게 구워낸 것을 건넬 때 세상 최고라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게 사실 내 진짜 목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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