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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 Aug 27. 2024

내가 좋아했던 것들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잊었냐고

미안하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너를 잊은 지 오래다.

너를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한 때는 심장이 두근거려서 사랑인 줄 알았고, 사랑해서 심장이 뛰었던 너를, 나는 감쪽같이 기억에서 지웠다. 너를 생각하면 숨 쉴 수 없었기 때문이었나? 숨 쉴 수 없게 되면서 너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나?


이제 와 지우개 무덤에서 새까매진 너의 팔다리를 끄집어내고 검정을 털어내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너는 다시 내 곁으로 바싹 다가와 숨을 쉬고 내 심장을 콩닥거리게 할까.


창덕궁 후원,  창경궁  온실, 덕수궁 수양벚나무, 국립중앙박물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정독도서관 연못, 유도 공원, 동십자각 거리, 퍼스의 오르막, 봄날의 달밤, 5월의 느티나무, 울 아이스크림, 목련 아래 낡은 벤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데 네 팔다리가 쉬이 찢긴다. 돌돌 말린 채 너무 오래 삭았나 보다. 너무 오래 기다렸나 보다.


내가 가루가 되기 싫어 버티던 시간에 네가 대신 가루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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