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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 Aug 26. 2024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퇴사 이야기_3

불안이 가져온 것

민간인 D-1.


한 대 맞기 전까지는 어떤 적극적 대응도 쉬이 할 수 없는 곳. 안 되는 것을 안 된다 말하면 불친절한 태도를 보였다고 고발당해 도리어 제가 잘못했다 사과하기 십상인 곳. 내일이면 나는 더 이상 그곳의 일원이 아니다.


추위와 더위를 피해 쉴 공간을 마련하고 삼시 세끼를 챙길 수 있게 한 곳. 적어도 헐벗지 않고 사람 구실은 할 수 있도록 나를 감싸준 곳. 이제 당분간 그런 곳은 내게 없다.


밀려오는 불안.

구직 어플을 켜고 이력서를 작성한다.

업종과 지역을 검색하며 지원을 하지만 직업을 구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나는 우선 무엇이라도 하기로 한다.

이번엔 아르바이트 어플을 켜고 간단한 이력서를 빠르게 올려 공개 버튼을 누른다.


내 오랜 남자친구, 그러니까 전 직장과의 결별을 고민하는 동안은 새 직장을 구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오랜 남자친구의 예쁜(?) 점을 다시 찾고 계속 잘 지내보려는 마음 반,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에너지 방전으로 인한 추진력 부족 반을 핑계로 탐색을 유예하곤 했다.


전 남자 친구와 결별한 지금.

기왕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니 쉬면서 멀리 여행을 가보라는 말들도 많고, 보란 듯이 ‘사’ 자 들어가는 직업을 다시 가지라 말하는 이도 있다. 자신들의 내재된 꿈을 은연중 투영한다.


스스로 한계 짓지 않는다면 무엇도 문제 될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안다. 예전에 하지 못했던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고, 당분간은 멍 때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나를 기다려만 준다면 남들이 내게 시간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데 내가 나를 기다리지 못한다. 그놈의 조바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24시간이 240시간처럼 느껴진다.


콩닥거리며 따라오는 조바심에, 해야 하는 일을 만드는 작업에 돌입한다.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이 감정을 2024년에 다시 느끼게 될 줄이야.


아르바이트 애플리케이션에 공개한 이력서를 열람한 업체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곳이다. 

먼저 전화 오지 않았다면 절대 지원하지 않았을 곳.

낯설지만 나는 일단 ‘GO’하기로 한다.


원체 나는 1부터 100까지 계획을 세워야 실행이란 것을 겨우 하는 인간이지만, 이번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계획을 2까지만 세워본다. 불안이 가져온 새 옷을 입어 보려 불안을 안고 가는 계획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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