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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 Aug 20. 2024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퇴사 이야기_1

너(라고 믿었던 존재)를 위한 변명

할 말은 많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리라. 하지만 이번에도 하고 싶은 말은 꾹 눌러 삼키고 그들이 이해할 만한(그렇지만 이해받지 못할) 말들로 두루뭉술 포장을 한다.

역시나 다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왜 이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거야? 네 판단은 틀렸어. 설사 네가 말하는 이유가 타당하다고 해도 이 방법은 아니야. 그건 너무 섣부른 판단이야. 넌 후회하고 말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그래 나도 안다. 나는 후회할 거다. 100%의 확률로 후회할 거다.


“알고 있습니다. 제 결정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요. 그리고 저는 분명 후회할 겁니다. 그렇지만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가는 게 맞아요.”


매일 아침에 눈 뜨며 생각했던, 그리고 잠들기 전에도 뇌까렸던, ‘지금 나가는 게 맞다.’는 문장을 나는 기어코 국장 앞에서도 내뱉고 만다. 철저히 내 안에서 밖으로 향한 문장. 역시 이해를 바라고 던진 말은 아니다.

가만히만 있으면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 열심히 하지 않아도 (욕은 들을지언정) 월급은 나오는 직장. 


‘그런데 그걸 못 견디고 나가겠다고? 바깥세상이 얼마나 추운지 모르는 거야?’


음성으로 지원되는 비난. 내 안에서 쏘는 건지 외부의 누군가가 쏘아대는 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 화살을 맞으며 나는 어깨를 옹송그려 인사를 한다. 마지막 순간에도 여전히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온다.



사람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원치 않는 것은 잘 알 수 있다. 원하는 것을 모르면 일단은 욕망할 일도 참을 일도 없지만, 원하지 않는 것에는 찰나의 시간에도 인내가 끈적하게 따라붙으니까.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는 인내를 반복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실은 처음부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이 틀렸을 거라고, 내가 아직 지혜롭지 못한 거라고 치부했다. 그런데 나에겐 그게 답이 아니었단 걸 늦게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런 대책 없이 회사와의 결별을 통보했다.


오래되었지만 나와는 죽도록 맞지 않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는 데 있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 안의 비난의 목소리를 들려주자면) 10년을 미처 채우지 못했다는 것? 반대로 1년 만에 나왔어야 할 곳에서 꾸역꾸역 참으며 나를 바꾸려 노력해 왔다는 점? 심지어 그것은 나를 포함해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은 노력이었다는 사실? 정도 되겠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정해진 길이 없는 것 치고는 아쉬운 점이랄 게 크게 없다. 어쩌면 더 잃을 것을, 그러니까 더 큰 손해를 막고자 지긋지긋한 남자 친구와의 이별을 택한 것이니까.


내 직관과 경험 그리고 생각을 무시하고 남들이 말하는 삶의 기준에 맞추려 노력했던 시간은 때론 그럭저럭 참을 만했지만 결론으로 보자면 처참했다. 

내 감각을 죽이고 살면, 남들 눈에는 보이는 삶의 정수를 담은 상자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은 자기부정의 시간. 여기 지금 선 자리에서 그 상자를 찾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곳을 가도 고통은 반복될 뿐이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날들. 무얼 하든 중도포기는 부끄러운 것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의 훈시. 네 말은 틀린 거라는 목소리.......

나(라고 믿었던 존재)는 어디로 가고, 스스로 내린 순수한 결정과 행동을 비하하고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존재만이 남았을까? 만족하지도 포기하지도 못하는 짐을 머리에 인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이 그렇게 비장할 일인가 싶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갇혀 더 불운한 맺음을 상상하는 매일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왜 자신에게 손쉬운 결정 하나 허하지 못하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할 100%의 후회는 그저 감내하면 될 일이었다. 


돈이 없고 나이도 적지 않은 현실적인? 불안을 안고 있지만, 1시간 후의 삶도 장담할 수 없는 오늘, 나는 단순해지기로 한다.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은 포기하기로 한다. 너에게 인정받기를 포기한다. 


내 결정은 먼지같이 작고 가볍다. 단 4초면 선택할 수 있는 무거움이다. 


나는, 나답게, 혹은 나답지 않게 먼지같이 작고 가벼운 선택을 종종 하기로 마음먹는다. 불완전함의 당위를 선물한다.


선택한 이상 그저 새로 생긴 길을 걸어가면 그뿐이라고. 후회도 짊어지고 가다가 어느 적절한 날 길에 '툭'하고 내려놓으면 그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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