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거의 성인이 되어가는 21살, 18살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이가 점차 들어가면서 가끔씩 뒤돌아보면 꼭 나이를 먹는 것이 젊었을 때 막연히 두려워했던 것처럼 비단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가울 정도로 윗세대로부터 듣던 고전적인 잔소리이자 삶의 근간이 되는 근면, 성실, 진실 등등 이런 단어가 4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머리에서 가슴으로 비로소 내려오고 온 몸으로 이런 특정 단어들이나 문장의 참뜻을 진정으로 깨닫고 실감하게 되는 나이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나의 경우는 ‘정성’이라는 단어가 더욱 그러했다. 몇 년 전에 크게 흥행했던 '역린'이라는 영화에서도 많은 이에게 회자되었듯이 정성이란 결국 상대방을 향한 나의 반듯하고 귀한 마음과 에너지이며 그 진실된 마음의 정도에 따라 내가 행하고 있는 일들의 모든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SNS를 긍정적인 방향의 도구로 꾸준히 하면서 수많은 고수 부모들의 일상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며 그들이가족을 위해 늘 기울이는 지극한 정성을 본의 아니게 자주 엿보게 된다. 나의 경우 친정 엄마가 열혈 워킹맘이셔서 성장과정에서 살림에 대해 세세히 배우지 못했고 나 또한 조신하게 살림하는 주부 스타일의 얌전한 여성 스타일은 아니어서 큰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다. 2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갑자기 결혼 후 본의 아니게 전업 주부로 기본적인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남들이 다들 상대적으로 편하다고 여기는 이 주부라는 역할이 때때로 나는 너무 힘들게 느껴져서 종종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왠지 모를 깊은 우울감이 자주 밀려왔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더 이상 내 서툰 살림 솜씨가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 아닌 헌신에 초점을 맞추고, 보다 깊은 배려의 마음으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조금씩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대부분 주부들의 소비 패턴을 살펴보면 가끔 입는 고급 정장이나 명품가방 등에는 대개 돈을 아끼지 않고 적극 투자하면서도 되레 일상에서 매일 사용 빈도가 잦은 집 안의 각종 패브릭이나 그릇을 사는 데는 알뜰이라는 명목 하에 돈을 심하게 아끼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런 편이었는데 예전에 푸름이 교육법의 한 선배 고수맘의 책을 통해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책 잘 읽는 아이가 영어도 잘한다)는 책을 쓰신 대구의 카우걸님이라는 분이었는데 육아뿐
아니라 살림에도 깊은 조예가 돋보였다.
그 작가님은 일상생활에서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품위 있게 살면서 생활 속에서 모조품 소위 짝퉁을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해서 당시로서는 다소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남들 다 한 두 번씩 써보는 짝퉁에 대해 너무나 엄격한 기준을 가지는 게 다소 유별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니 이 또한 이해가 되었다.
데이비스 홉킨스 박사의 (의식혁명)이라는 책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진실은 거짓이나 가짜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세고 에너지 파장이 높다고 하고 우리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그걸 인지하게 된다고 한다.
짝퉁의 경우 설혹 내 주위에 누군가가 진품인지 가품인지 미처 알아채지 못해도 이미 나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진품을 대할 때보다 가품인 그 물건을 대할 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우선되기보다는 먼저 내 스스로의 행동 자체가 그 물건을 대할 때 가벼워지고 에너지가 달라지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이런 영향으로 막상 주방의 식기류를 다소 비싸지만 예쁘고 고급스러운 나만의 스타일로 바꾸고 나니 사소한 설거지를 하더라도 막연히 쌓아놓고 방치하기보다는 행여 이가 나갈까 봐 아기 다루듯이 내 손길이 더 조심스러워지고 평소 식사 후 자주 미루던 설거지를 바로바로 즐겁게 하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과 소중한 가족들은 한 가정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의 단순한 언어뿐만 아니라 이런 일상에서의 변화된 작은 몸짓과 어떤 것을 대해도 소중히 여기는 삶의 태도에서 알게 모르게 사랑을 배우고 느끼는 듯하다. 나도 살림에 관해 매너리즘과 우울에 빠졌을 때반신반의하다가 막상 예쁜 침구와 친정 엄마 취향의 혼수품이 아닌 내 취향이 확실한 평소 원하는 그릇들로 집안 살림의 기본적인 환경을 조금씩 바꿔 나가다 보니 단순히 가사 노동으로만 여겨졌던 많은 집안일들이 좀 더 즐거워졌고 특히 반복적이어서 너무나 힘들었던 매일 식사 준비가 조금씩은 더 즐거워졌다. 하루 종일 애쓰는 가족들을 위해 정성을 들인 맛있는 요리도 중요하지만 예쁜 그릇과 플레이팅을 더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부의 단순 반복 가사노동도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어느새 즐거운 놀이가 된다는 걸 최근 몇 년 사이에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주부로서의 이런 나의 배려와 정성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가족들을 조금씩 감동하게 만들게도 된다. 많은 책에서 집에서 라면 한 그릇을 끓여 먹어도 그냥 냄비 통째로 휘리릭 대충이 아닌 깔끔한 분식집에서처럼 제대로 차려 먹으라는 말이 이런 이유에서 연유된 듯하다.
어떤 힘든 사항에서도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 정성껏 대하는 사람은 제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나락으로 결코 떨어지거나 망가지는 법이 없다. 모든 일을 할 때 희생과 헌신의 에너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우리 자신들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흔히 역사적으로 유명한 수많은 위인들, 예를 들어 마더 테레사나 간디 등 우리는 단순히 그분들이 ‘희생’ 했다고 하지 않고 인류 역사와 증진에 ‘헌신’ 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도 늘 연출된 의도적인 앞모습이 아닌 자연스러운 뒷모습이 항상 노출되는 부모들의 경우 희생이 아닌 헌신의 에너지를 항상 사용하고 일상을 살아간다면 우리 아이들도 자연스레 그런 삶의 태도가 닮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