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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토끼 Jun 12. 2022

아이는 책을 무조건 잘 읽어야 한다?

부디 책에 걸려 넘어지지 말자

푸름이 교육법에 관한 큰 오해 중에 하나가 푸름이식의 교육법을 따르는 아이는 대부분 또래보다 높은 수준의 책을 쉽게 잘 읽고 또 주위가 놀랄 정도로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천성적으로 책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이런 사실을 의심치 않고 오랜 기간 믿어왔는데, 15년 가까이 별 다른 사교육 없이 오롯이 엄마표 유기농 육아로 두 아이에게 전념하다 보니 아이에 성향에 따라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나름의 결론이 나왔다.      


돌이켜 보면 제발 "책이라는 도구에 걸리지 말라"는 푸름이 부모님의 수많은 강의들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정작 책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의 눈빛 맞추기, 즉 제대로 된 소통이 핵심인데 수많은 부모들이 책 욕심

(엘리트, 학벌주의 등)에 걸려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이 세상이 많이 오염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아이들을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는 것일까? 오염은 비단 기후

변화를 앓고 있는 지구와 우리네 먹거리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환경 및 사람들의 가치관 또한 정신없이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각자 제 갈 길을 잃는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유기농 육아란 비싼 유기농 제품을 먹이고 유명 오가닉 의류, 원목 장난감, 명품 유모차 등 돈을 중심으로 하는 물질적인 환경 조성에 포커스를 맞추는 육아가 아니라, 어떤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주양육자가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가지고 외부에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내 아이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내면이 꽉 찬 육아인 것 같다.     


2002년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난 안타깝게도 푸름이 교육법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고 육아에 관해서도 아주 무지했었다. 돌 때쯤 아이랑 외출이 가능하자 답답한 마음에 근처 백화점 문화센터에 나갔다가 우연히 EBS 뿡뿡이 비디오와 자연관찰 책을 아이에게 첫 책으로 보여주면 좋다는 이야기를 귀동냥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불안정한 남편 회사도 다소 힘들었고 경제적인 상황이 불안해서 우리 가정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대형 사이트에 입점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느라 바쁜 나머지 다소 순한 첫째가 반나절 동안 얌전히 정신없이 빠져드는 뿡뿡이 비디오가 초보 엄마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고마웠다. 돌이 갓 지난 너무나 어린 나이에 영상물을 장시간 접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 비디오가 단순히 시간 때우기 식의 아이의 사고를 멈추게 하는 단순한 의미 없는 만화가 아니라 유치원 과정에 따른 4-7세의 생활 습관 비디오라서 영상물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꽤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세수하기, 양말 신기, 인형 옷 갈아입히기, 걸레 빨기, 물건 크기별 분류 등등의 내용이었는데 아이가 좀 더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도록 내가 늘 준비물을 함께 미리 준비해 준 것 같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TV 앞에서 혼자서 세수를 한다고 도전하다가 거실이 한강이 된 기억도 이제는 소중한 추억이 된 듯하다.      


유명한 ○사의 자연관찰 책의 경우 큰 마음을 먹고 중고로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별 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아서 실패했던 첫 전집으로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요령이 없었던 엄마인 것 같다. 과일이나 채소의 경우 실물을 먼저 충분히 접했어야 하고 동물의 경우도 동물원이라도 가보고 아이에게 책을 접하게 했어야 했는데 그냥 어린아이를 앉혀 놓고 너무나 이과적인 스타일의 자연관찰책을 그림책처럼 스토리로 읽어주려고 하니 제대로 된 흥미를 유발했을 리가 없다.      


후배 맘들에게 가끔 아이가 책을 싫어한다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책을 각자의 성향에 따라 적게 읽거나 많이 읽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책을 싫어하는 아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내가 그동안 많이 들었던 질문을 하나 보자.     


Q. 책을 읽어주면 관심이 없어요     

우선 책과의 친숙기가 충분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 아이들의 경우 감각이 너무나 섬세해서 새로운 물건이나 책을 접하면 적극적인 흥미를 보이는 아이도 있지만 성향에 따라서는 일정 시간의 친숙기가 필요한 첫 만남에서 익숙해지기까지 내향적인 아이들의 경우도 많다. 우리 집 또한 후자에 속한다. 많은 엄마들이 절대적으로 바라는 하나, 즉 독서가 교육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려면 우선 자연 속에서 감각적으로 풍부한 자극을 받는 말랑말랑한 두뇌가 먼저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그 전제 조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감 발달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주 양육자인 부모의 체취를 포함한 무한한 스킨십이 이루어져야 하며 아기 때부터 엄마에게 업히거나 안겨서 느꼈던 공원의 숲 냄새, 각종 새소리를 들은 다양한 감각 경험이 이후 두뇌에서 언어를 처리하는 가장 큰 잠재력이 된다고 많은 뇌과학자들이 언급하고 있다. 시각이나 청각적인 자극의 경우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대부분 부모들의 전매특허인 수다로, 소위 긍정적인 언어 샤워로 충분히 자극이 가능하다. 사실 후각이나 촉각, 미각의 발달은 멀리 가지 않아도 인근의 전통 재래시장이나 1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아파트 내 장터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비싼 돈을 내고 인위적인 놀이 학교나 유명 유치원에 그냥 맡기기보다는 이렇게 평범한 일상에서 편안하게 시나브로 이루어지는 것이 소중한 우리 아이들 교육의 첫 단계인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경험상 이렇게 접한 다채로운 낮의 경험들을 저녁 시간에 잠깐 책으로 재확인하게 되면 대다수의 아이들은 반드시 관심을 보이게 되어 있다.     


강남의 한 유치원에서 활동 시간에 여름을 주제로 수박을 그리라고 했더니 한 입 크기의 바둑판 모양을 그리고 수박 색깔만 겨우 칠한 아이가 있다고 한다. 이 아이의 경우 엄마가 먹기 편하게 씨도 다 빼고 한 입 크기로 자른 수박만을 늘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아이의 경우 시간을 내서 수박 재배를 하는 농가를 가본다거나 부득이한 경우 책을 통해 사진으로 함께 보거나, 무거운 수박을 트럭에 환상적으로 실어 내는 생활의 달인 같은 TV 다큐를 보거나 다양한 종류의 수박을 마트나 재래시장에서 접하게 된다면 수박에 대한 이해도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또한 수박을 먹으며 수박씨를 뱉어 얼굴에 붙이기 놀이를 하거나 화분에 심어보기도 하고, 귀찮은 수박씨를 입으로 발라내며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위인전까지 수박 인한 한 단어로도 아이의 관심 확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생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에는 정확한 정답은 없지만 각자의 지혜가 늘 필요하다. 육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소위 누군가의 육아의 정답이 아닌 참고는 하되 내 스타일대로 소신을 가지고 용기 있게 나 아가다 보면 어느새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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