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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토끼 Jun 16. 2022

묻지마 책선행에 관하여

책 선행을 아십니까?

주위를 돌아보면 푸름이교육법을 비롯해서 다양한 부모교육과 양육서로 의식이 깨어 있다고 나름 자부하는 부모님들도 맹목적인 사교육과 지나친 교과 선행에는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정작 아이 수준에 맞지 않는 책선행에 관해서는 별 다른 비판 의식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또래 아이와 의연중에 내 아이를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책을 그 아이가 읽고 있으면 막연히 책선행을 뛰어난 발달 과정으로만 인식하고 부러워하는 실정이다. 부끄럽지만 과거에 나 또한 그랬다.


오감중에서 시각이 가장 발달하고 관찰능력이 뛰어난 첫 아이는 초 6때까지도 항상 그림책을 반복적으로 즐겁게 읽었다. 독서를 너무나 중요시했던 내 입에서 사실 늘 애가 탔다. 언제쯤 남들이 칭찬할 정도록 글자 많고 두꺼운 책을 읽게 될까? 그래서 간혹 서점에 갈 때도 여전히 초등 저학년들이 읽을 법한 그림책을 사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아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그 당시에는 나의 마음이 너무나 힘들었다. 언제쯤 이 아이가 글줄로 된 두꺼운 책을 읽을까? 언제쯤 이 아이가 나의 교육관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줄까? 하는 욕심으로 가득찬 초보 양육자 시절이었던 것 같다.


첫째 초3 무렵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하다가 엄마로서 아이 독서 교육에 상당히 신경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독서력이 깊지 않은 것 같다는 나의 고민상담에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다. 오히려  아이는 그 자체로 너무 잘 크고 있는데 그런 수준 높은 수준의 책을 읽기 바란다는 것은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라며 되레 위로해 주신 기억이 있다. 첫째는 개성이 아주 강한 아이었다. 전국의 아이들이 다 정신없이 빠져다고 읽는다고 일컬어지는 WHY라는 책조차 통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속으로 많이 답답해하던 중에  오히려 초독서증으로 학교라는 기본적인 사회생활 공간에서도 타인과의 관계맺기 보다는 책만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들은 극소수이며 그들을 절대 부러워하지 말라는 게 선생님의 요지셨다.      


사실 "책선행"이라는 단어는 서천석 박사님의 강의를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일례로 명작이나 전래 동화의 경우 선악 및 권선징악의 개념이 어느 정도 잡히는 취학 전후의 나이에 읽는 것이 아이의 발달 단계상 가장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이 분께도 모 출판사가  판매와 마켓팅의 목적으로 3-4살 아이가 들어서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2-3줄의 짧은 명작, 전래 전집 감수를 요청 받았다는 것이다. 결국 본인의 양육관과 가치관에 맞지 않아서 정중히 거절하셨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씁쓸해하셨다.  사랑 가득한 부모와 아이의 소통의 끈으로 그저 즐거워야 할 베드타임 독서(머리맡 독서)가 주입식 학습의 판박이처럼 해치워야 할 숙제로 한국 부모들에게는 변질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어 하는 말씀이었다. 푸름이 부모님도 누차 강조하셨지만 아이들은 자기 수준보다 살짝 아래인 책들을 좀 더 편안하게 읽는다. 간혹 계단식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며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높은 수준의 책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지만 항상 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의 발달 과정마다 주양육자로서 나의 이해도가 딸려서 힘들 때마다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주옥같은 육아서와 강의였다. 예전에 강남역 부근 국립 청소년 어린이 도서관에서  매달 좋은 특강을 했는데 그림책 특강 때 “그림책은 아이 손에 담겨진 작은 갤러리이다. 가능한 뺐지 말고 최대한 늦게까지 허용하라!” 순간 전율했다. 이 문장을 듣고 반성하면서 비로소 아이에게 글밥 많은 글줄책을 서둘러 읽히고픈 욕심을 간신히 내려놓게 되었다.


또한 학교에서 선정해주는 추천 독서 목록은 어른이 내가 봐도 그 나이에 비해 꽤나 높은 수준이 많다. 그래서 책을 잘 읽는 아이의 경우는 상관이 없지만 성향상 책에 그다지 몰입하지 않는 아이의 경우는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팁이라면 오히려 내 아이에 관심사에 따른 권장 도서 목록을 따로 고유하게 만들어서 관심사 분야를 두루 섭렵한다면 아이의 독서에 있어 더 성공적일 때가 많다.  각종 미디어와 영상 등 늘 시각적인 것에 관심이 많던 딸이 다시 책으로 빠져든 건 중1 자유학기제였다. 주말에 서점을 갔다가 책을 늘 가까이하라는 나의 애정 어린 잔소리에 우연히 서가에서 "가연 컬처 클래식 시리즈"가 꽂혀 있는 곳을 유심이 살피는 딸아이를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기존에 상영되었던 영화의 각본을 소설집처럼 시리즈물로 역은 것인데, 평균 300페이지가 넘었다. 책이라서 당연히 사주긴 했지만 별 기대는 없었는데, 아침 자습시간에 "7번 방의 선물", "써니", "수상한 그녀"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독서에 빠져들더니, 처음 기대와 달리 빠른 속도로 완독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마 책 잘 읽는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글밥 많은 책으로 이끌 때 판타지물로 빠지는 것과 비슷한 변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소설 읽기가 밑바탕이 되었는지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늘 평범했던 국어 점수가 그 다음 해 중학교 중간, 기말시험에 만점 가까이 점수가 나와서 본인도 우리 가족도 무척 놀랐다는 기억이 있다. 아마도 소설을 접하면서 전체적인 글의 어감과 맥락을 이해하게 된 것이 국어 성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결국 나의 요지도 이렇게 고유한 우리 아이들은 본인들 각자의 철저한 발달 과정에 따라, 책을 좋아하면 하는 대로 좋아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나름의 독서법으로 잘 커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 한글책이든 영어책이든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옆으로 펼쳐 읽으라는 경구가 있다. 욕조의 물이 밑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듯이 우리 아이들 스스로 본인의 취향으로 다양한 책을 채워 나갈 수 있게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로운 부모의 마음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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