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돌아보면 푸름이교육법을 비롯해서 다양한 부모교육과 양육서로 의식이 깨어 있다고 나름 자부하는 부모님들도 맹목적인 사교육과 지나친 교과 선행에는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정작 아이 수준에 맞지 않는 책선행에 관해서는 별 다른 비판 의식이 없는 듯하다. 오히려 또래 아이와 의연중에 내 아이를 비교하면서 상대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책을 그 아이가 읽고 있으면 막연히 책선행을 뛰어난 발달 과정으로만 인식하고 부러워하는 실정이다. 부끄럽지만 과거에 나 또한 그랬다.
오감중에서 시각이 가장 발달하고 관찰능력이 뛰어난 첫 아이는 초 6때까지도 항상 그림책을 반복적으로 즐겁게 읽었다. 독서를 너무나 중요시했던 내 입에서 사실 늘 애가 탔다. 언제쯤 남들이 칭찬할 정도록 글자 많고 두꺼운 책을 읽게 될까? 그래서 간혹 서점에 갈 때도 여전히 초등 저학년들이 읽을 법한 그림책을 사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아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그 당시에는 나의 마음이 너무나 힘들었다. 언제쯤 이 아이가 글줄로 된 두꺼운 책을 읽을까? 언제쯤 이 아이가 나의 교육관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줄까? 하는 욕심으로 가득찬 초보 양육자 시절이었던 것 같다.
첫째 초3 무렵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하다가 엄마로서 아이 독서 교육에 상당히 신경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독서력이 깊지 않은 것 같다는 나의 고민상담에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다. 오히려 아이는 그 자체로 너무 잘 크고 있는데 그런 수준 높은 수준의 책을 읽기 바란다는 것은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라며 되레 위로해 주신 기억이 있다. 첫째는 개성이 아주 강한 아이었다. 전국의 아이들이 다 정신없이 빠져다고 읽는다고 일컬어지는 WHY라는 책조차 통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속으로 많이 답답해하던 중에 오히려 초독서증으로 학교라는 기본적인 사회생활 공간에서도 타인과의 관계맺기 보다는 책만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들은 극소수이며 그들을 절대 부러워하지 말라는 게 선생님의 요지셨다.
사실 "책선행"이라는 단어는 서천석 박사님의 강의를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일례로 명작이나 전래 동화의 경우 선악 및 권선징악의 개념이 어느 정도 잡히는 취학 전후의 나이에 읽는 것이 아이의 발달 단계상 가장 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이 분께도 모 출판사가 판매와 마켓팅의 목적으로 3-4살 아이가 들어서 단박에 이해할 수 있는 2-3줄의 짧은 명작, 전래 전집 감수를 요청 받았다는 것이다. 결국 본인의 양육관과 가치관에 맞지 않아서 정중히 거절하셨다고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씁쓸해하셨다. 사랑 가득한 부모와 아이의 소통의 끈으로 그저 즐거워야 할 베드타임 독서(머리맡 독서)가 주입식 학습의 판박이처럼 해치워야 할 숙제로 한국 부모들에게는 변질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어 하는 말씀이었다. 푸름이 부모님도 누차 강조하셨지만 아이들은 자기 수준보다 살짝 아래인 책들을 좀 더 편안하게 읽는다. 간혹 계단식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며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높은 수준의 책에 관심을 보일 수도 있지만 항상 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의 발달 과정마다 주양육자로서 나의 이해도가 딸려서 힘들 때마다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주옥같은 육아서와 강의였다. 예전에 강남역 부근 국립 청소년 어린이 도서관에서 매달 좋은 특강을 했는데 그림책 특강 때 “그림책은 아이 손에 담겨진 작은 갤러리이다. 가능한 뺐지 말고 최대한 늦게까지 허용하라!” 순간 전율했다. 이 문장을 듣고 반성하면서 비로소 아이에게 글밥 많은 글줄책을 서둘러 읽히고픈 욕심을 간신히 내려놓게 되었다.
또한 학교에서 선정해주는 추천 독서 목록은 어른이 내가 봐도 그 나이에 비해 꽤나 높은 수준이 많다. 그래서 책을 잘 읽는 아이의 경우는 상관이 없지만 성향상 책에 그다지 몰입하지 않는 아이의 경우는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팁이라면 오히려 내 아이에 관심사에 따른 권장 도서 목록을 따로 고유하게 만들어서 관심사 분야를 두루 섭렵한다면 아이의 독서에 있어 더 성공적일 때가 많다. 각종 미디어와 영상 등 늘 시각적인 것에 관심이 많던 딸이 다시 책으로 빠져든 건 중1 자유학기제였다. 주말에 서점을 갔다가 책을 늘 가까이하라는 나의 애정 어린 잔소리에 우연히 서가에서 "가연 컬처 클래식 시리즈"가 꽂혀 있는 곳을 유심이 살피는 딸아이를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기존에 상영되었던 영화의 각본을 소설집처럼 시리즈물로 역은 것인데, 평균 300페이지가 넘었다. 책이라서 당연히 사주긴 했지만 별 기대는 없었는데, 아침 자습시간에 "7번 방의 선물", "써니", "수상한 그녀"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독서에 빠져들더니, 처음 기대와 달리 빠른 속도로 완독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마 책 잘 읽는 초등 고학년 아이들이 글밥 많은 책으로 이끌 때 판타지물로 빠지는 것과 비슷한 변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소설 읽기가 밑바탕이 되었는지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늘 평범했던 국어 점수가 그 다음 해 중학교 중간, 기말시험에 만점 가까이 점수가 나와서 본인도 우리 가족도 무척 놀랐다는 기억이 있다. 아마도 소설을 접하면서 전체적인 글의 어감과 맥락을 이해하게 된 것이 국어 성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결국 나의 요지도 이렇게 고유한 우리 아이들은 본인들 각자의 철저한 발달 과정에 따라, 책을 좋아하면 하는 대로 좋아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나름의 독서법으로 잘 커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 한글책이든 영어책이든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옆으로 펼쳐 읽으라는 경구가 있다. 욕조의 물이 밑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르듯이 우리 아이들 스스로 본인의 취향으로 다양한 책을 채워 나갈 수 있게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로운 부모의 마음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