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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토끼 Jul 01. 2022

지나친 체험 학습도 독(毒)이다


최근의 학습 트랜드중 하나가 <메타인지>의 중요성이다. 과거에 비해 사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상당히 똑똑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시험을 보면 이미 알고 있음에도 순간 틀리거나 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 부분을 메타인지로 설명하고 있다. 메타인지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판단해서 본인 스스로가 인식하는 일이다. 소위 메타인지가 높은 아이일수록 똑같은 시간과  노력 대비, 학습 결과도 뛰어나고 성공할 확률도 높다고 한다.                


메타인지는 아이뿐 아니라 주 양육자인 부모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소중한 생명을 제대로 키워내는 세상의 모두 육아가 훌륭하지만 각자 양육자의 성향에 맞는 육아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나의 경우 성격이 외향적이며 에너지가 있고 언어지능이 발달한 편이라  아이들과 함께 책을 장시간 읽어주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는데, 교구를 이용하거나 역할놀이처럼 다정하고 꼼꼼하게 아이들을 배려하면서 함께 놀아주는 것은  맞지 않아서 다소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이 주로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동네 체험 학습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랑 함께 집 근처부터 다니기 시작했다. 푸름이교육에서 배운 대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슬링으로 품에 안고 매일 잠깐씩 나가서 온통 신비로운  세상을 부모의 언어로 아이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른들에게 다소 지루하고 새로울 것이 그닥 없는 당연한 일상이지만 아이들은 항상  경이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집 근처 재래 시장도 좋았고    다양한 직업군이 공존하는 동네 가게 순례도 항상 흥미로워했다. 요즘은 사실 과거에 비해 아이들이 귀한 편이라 아주 바쁘지 않은 이상, 대부분 가게 어른들은 아이를 반가워하고 되레 환영해 주셨다.      

다행히 전업주부라 아이들을 곁에 두고 가정 보육이 어느 정도  가능했는데, 두 아이가 3년 터울이라 구립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보낼 시기가 다가왔을 때 큰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강남의 유치원의 경우 대부분이 영어 학원에 가까운  비싼 놀이학교와 유치원이 포진해 있어 평범한 외벌이 남편의  정해진 월급으로 두 아이를 그런 유치원에 보낸다는 것이  가계에 상당히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다소 어려운 가정 경제 여건에서도 배움에 열정이 강했던 나인지라 당장 아이들을 보내진 못해도 유명하다는 유치원의 설명회는 일단 다 다녀보았다. 커리큘럼이 훌륭한 곳도 사실 몇 군데 있었지만, 교환학생 등 다양한 외국 경험이 있는 나의 눈에는 교육의 질에 비해 거품이 심한 측면이 분명히 보였다.  미국, 캐나다 등 현지의 고급스러운 어학 연수원을 알라딘 램프의 요정 지니가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외관이나  학부모들에게 보여지는 면에만 신경을 쓰는 업체들의 상술과  거품이 느껴져서, 아쉽지만 기관에 보내는 것을 접기로 했다.                


살면서 내가  몸소 깊이 체험한 옛 말 중에 "궁즉통"이 있다. 확실히 경제적으로 궁하면 불편한 점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나름의 지혜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고심 끝에 아이들을 비싼 유치원에 보내는 대신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집 근처 삼성동의 아쿠아리움과 동물원, 놀이공원 등의  연간 회원권을 끊었다. 유치원을 보내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반복되는 일상에 무료할 수 있고 부모인 우리 스스로도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선택한 작은 이벤트였다. 돌이켜보면 도시형

인간이고 자연친화지능이 낮은 나에게는 늘 비슷비슷한 물고기라 아쿠아리움 자체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는데 순수한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아쿠아리움에 갈 때마다 너무나 황홀해 하고 몇 시간씩 넋을 잃고 관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아쿠아리움을 다녀온 날 저녁에는 자연관찰 책을 통해 낮에 봤던  생물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더욱 더 기뻐했다. 대부분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동물을 좋아해서 신당동 지하철 역사에서 하는 "생물 체험전"도 정말 많이 갔었다.  이런 다양한 환경에 관한 노출 덕분에 두 아이 모두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더 깊어진 것 같기도 하다.  이렇듯 사실 우리 집의 체험 학습은 교육의 목적보다는 나들이나 놀이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고 나서는 남편이 쉬는 주말에는 다 같이 서울 시내에 있는 각종 박물관을 수없이 다녔다.  처음에는 아이들 교육이라는 목적 아래 열심히 다녔는데,  계속 다니다 보니 되레 신랑과 내가 배우는 점이 더 많았다. 가끔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 지나온 생을  다시 한 번 더 살아보는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세상이 전부인 냥 늘  타성에 젖어 살았는데, 아이들과 함께 알아가는 과정에서    다시금 내 어설픈 지식을 점검하게 되고 어느 순간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좀 더 성숙해지는 내 모습도 발견하게 되었다.  초등 고학년 이후 두 녀석 모두 본격적으로 사춘기에 접어들어  더 이상 함께 다니는 체험 학습에 좀 시큰둥한 편지만  한 번씩 지나온 앨범이나 블로그를 들춰 보면 빙그레  웃음 지어질 때가 많다.                


선배맘으로서 요즘 좀  안타까운 건 체험 학습도 부모의 일방적인 강요에 의해  억지로 다니면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현장에 만날 때이다. 소위 박물관 수업이라고해서 아이의 성향이나 관심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보내서 온 것이다.  특히 어느 연령이 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다소 추상적인 역사나 미술 프로그램들의 경우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부모가 강제로 수업에 집어 넣어서  아이는 아이대로 하기 싫어하고, 다른 아이들의 소중한 수업 기회마저 방해를 하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를 현장에서 종종 마주치게 된다.  시청각 교육처럼 체험 학습을 통해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 대화하며 왜 이 체험을  하는지, 가서 뭘 배우고 올 것인지 서로 소통하는 일일 것이다. 지나친 사교육이 우리 아이들과 가정 경제를 힘들 게 하듯이      

부모의 지나친 의욕으로 시작된 체험 학습도 아이들에게 득보다는 실로 남을 가능성이 사실 더 크다. 아주 어린 나이에 비싼 돈을 들여 유럽을 다녀온 가족이 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큰 다음 물어보니 애써 보여준 수많은 유명 박물관은  기억조차 안 나고 오히려 잠깐의 자유 시간에 건물 뒤쪽  잔디밭에서 그냥 뛰어 놀던 게 더 기억이 난다고 해서  어이가 없어 웃었다고 한다.               


적시 학습, 적소 체험!!  어찌 보면 이 평범한 진리가 스스로 잘 커는 아이 양육의 비결 중 또 하나라고 얘기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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