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 시절을 돌이켜 보면 아침에 일어나면 늘 낡은 책상 앞에서 아버지께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새벽에 배달된 신문을 보고 계셨다. 빡빡한 글자와 한문으로 뒤섞인 잉크 냄새나는 종이를 보며 어린 소녀의 마음에 도대체 어른들은 무슨 재미로 저런 걸 읽을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20년 전 아이가 없던 신혼 초에는 나름 회사도 다녔고 대부분의 하루 일과를 회사에서 보내다 보니 생활비도 아낄 겸 굳이 집에서 따로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가 집에 들르셨다가 신문을 찾으시길래 더 이상 구독하지 않는 이유를 나름 자랑스럽게 설명드렸더니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며 다소 안타까워하셨다. 사실 성인이 되면 우리 인생에서 더 이상의 교과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개인만큼 수많은 각자가 나름의 참고서가 있을 뿐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굳이 공부라는 것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신문과 잡지가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좋은 교과서가 될 수 있다고 꼭 구독하라는 말씀을 남기고 아버지는 내려가셨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15년 넘게 종합신문 1개, 경제신문 1개, 기타 교육, 여성, 요리, 영화 매거진 등을 다양하게 잡지들을 정기 구독해서 시간 날 때마다 읽으려고 늘 노력 중이다. 더불어 이런 다채로운 읽을거리에서 나오는 좋은 표현이나 마음에 와닿는 문구, 참고할 만한 글귀가 나오면 늘 스크랩을 해서 아날로그 스타일의 다이어리에 형광펜으로 표시해서 붙이고 요즘 MZ세대 마냥 다꾸도 종종 한다. 그래서 어느 약속 장소에 가던지 그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면 자투리 시간에 다시 읽어보게 되고 주옥 같이 발췌된 내용들을 곱씹어 보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해마다 빼꼭히 채워지는 다이어리가 나만이 공감할 수 있는 한 권의 인생 책이 되는 리추얼을 밟고 있다. 요즘은 다이어리 속에 기록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나 혼자만이 알고 있기에는 아까운 이런 좋은 글들을 여러 사람들과 좀 더 나누고 싶어 내가 운영하는 각종 SNS에도 자주 올린다. 어떤 글이라도 독자가 한정되어 있는 오프라인 지면에서 온라인 플랫폼에 올라가게 되면 다양한 사람들과 저마다 느낀 점을 댓글로 소통하며 느끼는 재미와 기쁨도 또 쏠쏠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다소 부끄럽지만 처녀 시절의 나는 아이들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나름 인기직종이었던 영어 학원 선생님 커리어도 고사하고 늘 독신을 꿈꾸고 항상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을 염두에 둔 20대의 나만 아는 이기적인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런 나에게 두 아이의 육아는 마치 형벌과 같은 너무나 크고 힘든 숙제였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멀리 떨어져 계셔서 육아에 실질적인 도움은 거의 못 받고 혼자서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했었다. 한 번은 친정아버지가 오셔서 공자님의 3년상 (제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으로서 너무나 슬프기도 하지만 굳이 3년이라는 특정 기간의 애도를 강조한 상례 전통이 생긴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한 아이가 이 세상에서 처음 홀로 태어나서 오롯이 3년 가까이 어미(부모)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아야지 비로소 제대로 밥도 먹고 의사소통도 하고 기저귀도 떼고 소위 사람다움을 구사할 수 있어서 그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의 차원에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상(제례)의 유례가 되었다고 한다. 울림이 큰 이야기였다.
그때부터 나도 이를 꽉 물고 3살 터울 남매를 온전히 신랑과 둘이서 협심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히 키웠다. 친정아버지의 그 이야기는 나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되었고 최소한 3년은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즐겁게 육아를 하며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동네 놀이터에서 강의장에서 가끔 옆 자리에 앉은 초보 후배 맘들이 육아에 지쳐서 힘들어하면 나도 모르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20대 초 피 끓는 청춘들이 군대 입대를 하기 전에 단단히 각오하는 것처럼 육아라는 다소 힘들 수 있는 마라톤도 시작 전에 나름의 이런 심기일전이 필요한 듯하다.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때로는 곁에서 파이팅이나 단순히 힘내라는 말보다 같은 처지로서의 작은 공감의 말이 더 큰 힘이 된다는 건 나도 이제는 아는 나이이기 때문일까? 친절도 연습이라고 한다. 내가 무심히 던진 한 마 디나 이야기가 타인에게는 예상치도 못한 큰 위안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 시국처럼 더욱 예민해질 때면 더 절실할 수도 있다.
나와 내 아이만 성공하면 되고 이기면 되는 단절된 세상이 아닌 진정 서로 격려하며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좀 더 꿈꿔보며 오늘도 나는 친절을 장착하고 누군가의 SNS에 정성껏 댓글을 달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