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우연히 시민 교양 강좌로 서울시 심리지원센터에서 주최하는 덕성여대 심리학과 김정호 교수님이 하시는 명상 수업 워크숍과 긍정 심리학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다. 아마 그 때가 코로나전이어서 우리 사회에 긍정심리학이라는 단어가 초창기로 유입되던 때였던 것 같다.
수많은 외신들이 한국의 놀라운 발전을 설명할 때 흔히 한강의 기적을 많이 일컫는다. 그 이면에 숨어 있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살펴보면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 때문인지 한민족 고유한 특성으로 불리는 부지런함과 성실함,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각자 맡은 일에 대한 놀라운 업무 집중력 등이 있는데 나 또한 그런 성향이 꽤 강한 것 같다.
누가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가 내가 막연하게 설정해 놓은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해 자꾸만 내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재촉하는 성향이 늘 있어서 종종 힘들었는데 이 심리학 수업을 통해서 그런 성향이 폭군적인 자아의 우세라고 불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내가 자란 가정환경을 살펴보면 전형적으로 부지런하고 자수성가하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인지 여유시간이 간혹 생겨도 그 시간을 그냥 흐지부지 보내기 보다는 뭐든지 알차게 보내야 하는 한 번도 빈둥거려본 적이 없는 내면 아이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꿈 많은 20대에는 유학, 취직, 갑작스런 결혼, 첫아이 출산으로 바빴고 30대에는 연이은 둘째 출산, 두 아이 양육을 오롯이 홀로 하면서도 언젠가 다시 사회로의 복귀를 꿈꾸며 각종 기업체 모니터링 및 글쓰기 등 파트타임 주부로 열심히 살아왔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세상살이의 전체적인 흐름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는, 믿기지 않는 40대 후반이라는 나이를 향해 치닫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배우자나 친구를 고를 때 은연중에 나와 반대 성향의 사람을 선호하는 듯하다. 늘 일상생활을 무한 성실하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성실하게 보내는 나에 비해 신랑을 종종 유유자적하고 여유가 있는 편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오래 같이 살아보니 정서적으로 늘 바쁜 나의 일상에서 삶의 숨 고르기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심리학 수업 이후로 나는 나를 좀 더 잘 보살피기로 결심했다.
자주 찾아오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후배들에게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을 자주 추천하곤 한다. 이 책을 보면 여성 특유의 호르몬 때문인지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심리적 우울증이나 허기를 자주 느끼는 편인데 좋은 치유 방법으로 3가지 정도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몸을 따뜻하게 한다.
둘째 달콤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으로 자신을 달랜다.
셋째 좋은 음악과 향기 좋은 양초나 아로마 테라피를 통해 좋은 향을 맡는다.
인생은 결국 자신에게 꼭 맞는 옷, 자기 취향을 찾아가는 긴 여정 같다.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착한 딸이고 모범적인 딸이였다. 아빠엄마 기대에 무조건 부합하려는 좋은 딸 콤플렉스가 은연중에 있었던 것 같다. 20년 넘게 친정 엄마 취향 위주로 일방적으로 고른 내 가정의 한 켠을 여전히 차지하고 있는 혼수용 세트 그릇, 이불, 옷 들을 용기를 내서 조금씩 정리하고 대신 평소 내가 설레임을 느끼거나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나만의취향인그릇들로 싱크대를 채웠다. 새색시 같은 꽃무늬 대신 좀 더 모던하면서도 쨍한 색감과 감촉이 좋은 이불과 내 스타일 특유의 다소 튀어보이는누군가는 또 유치하다고 할 수 있는 주방소품들로 모두 바꾸고 나니 그토록 지겹게 느꼈던 살림에도 조금씩 더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흔히 동양의 정서는 본인에게는 상당히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것을 옳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요즘 같은 초경쟁 사회나 바쁜 일상에서는 본인에게 오히려 좀 더 관대해지고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어줄 필요도 있는 듯하다.
객관적으로나 물리적인 상황으로 인한 특별한 이유없이 자주 우울하다면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를 신경쓰기에 앞서 나 자신과의 관계를 내가 잘맺고 있는지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올 한 해도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천천히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더 나은 어른이 되어가고자 항상 고군분투하며 노력하는 나 자신에게 셀프 응원도 더욱 열심히 보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