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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토끼 Apr 28. 2022

“나를 살게 했던 따뜻한 말 한마디”

타인에게 스며든 나의 다정한 말 한마디

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왠지 향긋한 꽃내음이 나는 말과 날카롭게 서로의 영혼을 베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툭 튀어나와 당황하게 되는 경우를 일상 생활에서 종종 보게 된다.


예전엔 내 기분대로 내뱉고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상황에 잘 맞는 시의적절한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옛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나 또한 어렸을 때는 사실 민족의 가장 뛰어난 창조품 중에 하나인 국어, 즉 모국어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잘 몰랐다. 오히려 그저 남들처럼 맹목적인 스펙을 쫓아 외국어 공부에만 힘을 쏟았다. 40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글과 말도 보다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늘 경청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종종 이슈가 되는 핫한 셀럽이나 리더의 인터뷰를 보며 자기 분야의 전문성은 기본이며 더불어 고도로 정제된 수준 높은 모국어 실력이 타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 따르면 나는 철저하게 E성향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내가 꽤 외향적이고 적극적이라고 하지만 나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와 동시에 마음이 여리고 감수성도 풍부한 면도 많다. 그래서 늘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힘껏 노력하고 애쓰지만 굳은 결심과는 상관없이 그날 그날 바이오리듬에 따라 나의 특유한 섬세함과 예민함이 부지불식간에 타인에 대한 과민함으로 번지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무심결에 타인이 건넨 무뚝뚝한 말 한마디에도 크게 곡해하고 상처를 받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인류 역사 이후 사는 게 녹록한 시절은 한 번도 없었다고 어른들은 늘 말씀하시지만 최근에는 다소 긴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깊은 고통 속에서 신음 소리를 내고 있다.


본디 사람들의 마음과 내재된 기운은 움직이는 생물처럼 오묘해서 에너지와 열정이 각자의 삶 속에서 불타오르다가도 때론 한순간 그냥 다 포기하고 싶고 기분이 다운될 때가 있다. 그런 개개인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떤 선물이나 위로보다 진심 듬뿍 담긴 말 한마디는 우리를 또다시 일으켜 세우곤 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강의도 듣고 책을 읽는 것이다.     


두 아이를 20년 가까이 양육해보니 사람들이 대부분 젊을 때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 자아의식이 유달리 강한 나 또한 이 세상에서 나 홀로 심하게 고통받고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오해를 했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철저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나이가 점점 들고 성숙해지면서 알게 되었다. 더불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확장되면서 생활 속에서  나만의 개별성을 고단한 삶의 보편성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모든 부모들은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개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녀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인플루언서가 된다. 가족애가 유달리 깊고 진취적인 삶을 살아오신 친정 부모님이 나에게는 그런 존재이다. 흔히 제대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아무런 육아 도움도 받지 못하고 때론 혼자 통곡하면서 속으로 삭히며 육아 우울증에 극심하게 시달릴 때 친정아버지가 공자의 3년 상례의 유래를 알려주신 것도 큰 위로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이 다음에 주위 보호자 없이 한 사람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 3년간의 필수적인 돌봄, 양육, 애착 기간이 필요하고 자식은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되갚는다는 의미로 예로부터 부모가 돌아가시면 무덤 옆에서 시묘살이를 최소 3년을 했다고 한다. 브런치에도 얼마전에 올렸어요^^)       


또한 만만치 않은 인원의 막중한 책임감이 필요했던 대가족 맏며느리로서 4남매의 자애로운 어머니로 바쁜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하며 늘 강인하게 삶과 맞선 친정어머니는 나의 또 다른 영웅이다. 삶은 그저 대충대충 닥쳐오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집중력을 가지고 각자 나름의 성실함으로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당신 스스로가 실제 본보기가 되어 자식들에게 몸소 보여주셨다.     


결국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내 입에 늘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꽃을 물 것인지 날카로워서 자칫 잘못하면 타인을 벨 수 있는 칼을 물 것인지 우리 각자의 선택이다. 간혹 칼을 물더라도 그 날카로운 칼이 오히려 섬세한 도구가 되어 각자의 운명을 멋지게 조각할 수 있도록 내부에서 부지불식간에 흘러나오는 말과 글에 우리 모두는 항상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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