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년이라는 집단으로 불리며 우리 사회의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나를 포함한 부모 세대들이 대부분
태어난 70-80년대에는 명배우 이순재, 최민수 씨 부자가 나오는 추억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처럼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대다수이고 대세였다. 하지만 요즘은 프렌디나 라테 파파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친구처럼 때론 다정하며 삼촌처럼 친절하고 아이와 거리감 없는 아빠가 주위에 많아졌다. 잠깐 외출을 해도 아기 띠를 매거나 유모차를 몰고 혼자서도 당당하게 오히려 육아를 즐기며 다니는 아빠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구나 싶다.
개인적으로 남편의 육아 참여도나 가사 돕기는 개개인의 남편들 성향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크게 보면 남편의 어린 시절 상처 즉 내면 아이와도 많이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세대가 어린 시절에는 안타깝게도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폭언, 폭력이 공공연히 인정되는 시기였고 가족도 군기를 잡아야 한다는 구시대적 사고 및 다소 경직된 사회여서 상대적으로 이런 환경에 노출되어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은 아빠들도 꽤 많은 듯하다.
20대 중반에 결혼해서 어느새 결혼 생활을 한지도 올해로 22년째 접어들게 된다. 돌이켜보면 20-30대 때는 나도 다소 미성숙한 어른이라서 그랬는지 꽃다운 나이에 괜히 결혼이란 제도로 인해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가정이라는 공간에 갇혀 나만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손해 보는 것 같아 결혼 생활을 열심히 해나가면서도 순간순간 우울해지거나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봄맞이 대청소 겸 아이들 방 정리를 하면서 한동안 바빠서 보지 못했던 아이들 어린 시절이 담긴 가족 사진첩을 우연히 들춰보게 되었다. 그 속에는 나만 억울하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풋풋하고 파릇했던 남편의 얼굴도 순간 눈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학교 서향숙 님의 책을 보면 주부들이 꼭 명심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소중한 아이를 키우듯이 내 옆에 늘 함께 있는 남편도 반드시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남편을 키운다는 말이 처음에는 나 스스로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는데 이제는 조금 알 듯하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어버이날이 되면 양가 부모님뿐만 아니라 남편에게 일부러 가끔 문자를 보내거나 카드를 쓰게 되었다. 난 완벽한 성인 혹은 어른이 되어서 당신한테 시집왔다고 혼자 생각했는데 20년 이상 함께 살아보니 철없는 20대 천방지축 아가씨인 나를 한 가정의 주부 및 아내로 키우느라 제2의 부모 혹은 조력자로 그동안 당신이 정말 애썼고 고맙다는 내용의 문자이다.
과거에 비해 조금이라도 성숙한 현재의 내가 있다면 그건 비단 나 스스로가 잘나서 성장한 것이 아니라 보이진 않지만 남편의 무한한 사랑과 배려였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조금씩 깨닫게 되어서 일까?
잉꼬부부로 연예계에서 유명한 중년 부부의 최근 인터뷰를 얼마전 tv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오랜 기간 결혼생활을 통해 개성이 강한 연예인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싸움 없이 그리 잘 지내는 비결을 사회자가 묻자 남편은 아내의 허물이 보일 때마다 자기의 배우자가 아닌 친정아버지의 심정으로 아내를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라고 해서 방송을 보면서 새삼 놀랐다. 그리고 순간 작은 깨달음이 왔다. 한편으로는 서로를 먼저 늘 배려하는 그러한 안정적인 부부 관계에서 자란 아이들은 당연히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굳건할 수밖에 없고 잘 자랄 것이 분명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후배 맘들에게 무조건 남편에게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육아 분담을 단독 직입적으로 요구하기보다는 보다 지혜롭고 현명하게 남편의 어린 시절 내면 아이부터 찬찬히 살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사람이 어떤 상처가 있는지, 남편은 어린 시절에 부모와의 관계가 어땠는지 등등 다양하게 듣고 우선적으로 파악하길 바란다.
시댁의 경우 가만히 앉아서 하는 정적인 공부를 하기보다는 예체능 쪽으로 감각이 있고 축구를 무척 좋아해서 운동선수 쪽으로 능력이 뛰어나 전공까지 생각하던 남편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완고하고 가부장적인 사고로 전통적인 엘리트들의 직업을 간절히 원하시던 시부모님과의 갈등 속에서 남편의 성장 과정에 다소 아픔이 있었던 듯하다.
그런 탓인지 남편은 두 아이를 키우면서 푸름이 닷컴식의 방목 교육을 찬성하면서도 책을 지속적으로 읽어주기보다는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운동이나 다양한 음악 장르 쪽으로 아이들에게 환경을 제공해주고 많이 이끌어 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런 양육 방식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정서적 바탕이 되어 준 듯하다. 다행히 아들 또한 아빠의 뛰어난 운동신경을 닮아서인지 각종 체육 및 구기 종목 쪽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우리 부부도 초등 시절 내내 각종 국내외 경기를 쫓아다니며 사커대디, 사커맘으로서 삶을 기꺼이 즐겼다. 몇 년 전까지도 남편은 초등 고학년들이 참여하는 토요일 새벽 축구에 함께 기꺼이 함께 라이드도 하고 준 코치 자격으로 아이들 연습 경기 파트너가 되어 주는 등 아들의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또한 스스로 용돈을 아껴 스포츠 아웃렛이나 중고시장에서 각종 축구용품이나 관련 용품들을 사면서 스스로 부모로부터 미처 인정받지 못한 운동 능력에 대한 내면 상처를 스스로 많이 씻어낸 듯하다. 그런 탓인지 사춘기 진입하는 아들과 아빠의 사이는 여전히 상당히 친근하고 좋은 편이다. 또한 고등학생인 딸과는 젊은 패션 감각과 각종 아이돌들의 최신곡 섭렵으로 그 거리를 늘 좁혀가고 있다.
또한 남편을 육아의 장으로 적극적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선배맘들이 늘 강조하시듯 모든 생명에게는 사랑이 듬뿍 담긴 칭찬이 필수적이다. 사실 동양의 문화에서는 칭찬은 좋은 행동을 했을 때 보상차원으로 하는 것일 경우가 많은데 나의 의견으로는 오히려 바람직한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지혜로운 도구로 넘치지 않게 적절히 일상생활에서 소위 쿠션 워드로 사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우리 집 주방 한편에는 김미경 강사님의 매일매일 뜯을 수 있는 일력이 있는데 그저께 본 문구가 사람을 키우는 법 3가지였다.
1. 먹인다. 2. 재운다. 3, 칭찬한다.
보는 순간 이 글들이 너무 와닿았다. 때론 나의 시각으로 가족들이나 남편이 못마땅해 보여도 결점을 먼저 보기보다는 칭찬 할 거리를 찾아서 나무라기보다는 오히려 칭찬을 먼저 해주면 미안해서라도 가족들의 행동이 자연스레 교정되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되었다. 노란 프리지어의 향긋한 향과 함께 만물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봄이다.
올 한 해도 아이만 성장시킬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남편도 서로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보다 늘 그렇듯이 더 멋진 가정으로 일구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