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단편소설

우리는 돈을 삼등분하기로 했다

by 행복의 진수

우리는 돈을 삼등분하기로 했다.

1,180회 로또 1등 당첨금, 2,535,566,421원.


얼마 전 어렵게 박사 학위를 받은 선아를 축하하고 돌아오던 길.

장난처럼 각자 두 개씩 숫자를 골랐다.


“이거 되면 우리 셋이 딱 1/3씩 나누는 거다.”

평소에도 박사 타령을 입에 달고 사는, 매사에 철두철미한 선아였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박사와 비박사.”

역시, 아무나 박사하는 게 아니었다.


뉴욕 집값이 너무 비싸서 뉴저지에서 유학했던 지혁은 술기운에 울분을 토했다.

“야! 세금 떼면 강남에 아파트 한 채도 못 사. 그냥 한 명한테 몰빵하자.”


“그럼 불공정하지! 우리 우정이 몇 년인데. 진짜 군말 없이 삼등분. 오케이?” 정식 박사 학위는 없지만,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쩝쩝박사 진수가 거들었다.


결국 2:1로 진수와 선아의 의견이 채택됐다. 민주주의의 승리,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었다.

누가 공무원 아니랄까봐, 진수는 곧장 제법 그럴싸한 각서까지 만들어왔다.


흔한 술자리 이벤트였지만, 그게 진짜로 일어났다.

8억 373만 원의 세금을 내고, 실수령 약 17억 3천.

삼등분하면 1인당 5억 7천만 원. 정확했다.

그걸 실제로 나눴다면 말이다.


진수가 “공평하게 나눈다.”라며 당첨 복권을 세 조각으로 찢어버리지만 않았더라면.

그걸 본 지혁이 흥분해서 소주병으로 진수의 머리를 내려치지만 않았더라면.


감옥에 간 지혁, 요단강을 건넌 진수.

당첨금은 모두 선아 손에 쥐어졌다.


얼마 후, 강남 한복판에 책방연희 3호점이 오픈했다.

역삼점 책방연희 간판 한 귀퉁이에는 진수·지혁·선아.

세 이름이 딱, 1/3씩 나란히 박혀 있다.


공평했다. 어쩌면, 정말로.



* 이 작품에서 등장한 모든 이름, 인물, 사건들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장소, 건물과는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 [길 위의 인문학-스토리텔링의 경계를 넘어] 문지혁 소설가의 <스토리텔링으로 우리의 소설 쓰기>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돈을 삼등분하기로 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짧은 소설 쓰기 시간에 끄적인 이야기입니다.


1.jpeg
2.jpeg
KakaoTalk_20250720_221232909.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모든 것은 한 장의 종이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