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7) '신이 나를 만들 때'

일곱 번째 이야기, '신이 나를 만들 때 덜 넣은 것과 더 넣은 것은?

by 채원

며느리 채원의 답변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면 흥미로운 공통 질문들이 나온다. 오- 질문 신선한데?라고 생각하고 막상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어머니께 글 주제를 전달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신은 무슨 생각을 하며 나를 만들었을까? 더 어릴 때는 왜 나에게 이렇게 비율 안 맞는 굵은 허벅지를 (운동할 때는 유용했지만) 주었냐고 한탄하기도 했고, 이리저리 새로운 걸 찾아내고, 배우는 걸 좋아하면서 막상 비즈니스로 펼쳐내는 추진력이 약한 것 같다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서른 중반 정도가 되어서야 생각해보니 신이 나에게 더 준 것은 '기다릴 줄 아는 능력' 같다. 크게 보자면 남편과 오래 만나는 것도 이 능력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만난 지 12년째 되는 해에 결혼했다. 그동안 군대, 어학연수, 해외근무 등 장거리 연애의 집합체였다. 그런데 이런 거야- 꽤 많은 굳건한 사람들이 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첫 직장부터 직책이 있는 매장 관리직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이 능력이 발휘된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직책은 있었고, 빠르게 습득하고 움직이며 지도까지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 기다려준 동료들에게 참 고마웠다. 이후에는 끊임없이 교육하고 교육하고 교육하고를 반복하면서 그때 나의 동료들처럼 끊임없이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기대하는 아웃풋이 나올 때까지 지속적인 인풋을 하는 기다림이란 지루하지만 보람이 크다. 지금 내가 육아를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한 것 같다.


신이 덜 준 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해도 모르겠다. 지독하게 부족한 걸 모르겠다. 내가 잘났다기보다 나 자신에 대해 적당한 만족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난히 키가 작거나 크지도, 유난히 못생기거나 절세미인이어서 피곤하지도 않고, 유난 떠는 성격도 딱히 아닌 것 같고- 이 정도면 적당하지 않은가 라는 혼자 생각. (ㅎㅎㅎ)

사실 '덜'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능성'으로 생각하려는 노력이 커서 인 것 같다. 열린 마음과 노력으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나이니까, 천천히 조금 둔했던 '덜 가진 부분'을 생각해봐야겠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이 공통 질문할 때, 초등학생 친구의 시 한 구절 같은 답변

"신께서는 저에게 전부 남김없이 다 주신 것 같아요..!"


조금씩 잃어 갈지언정 사실, 정말, 우리는 모두 남김없이 받고 태어난 게 아닐까.

잠든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대체 부족한 게 보이 지를 않는다. (나는야 고슴도치ㅎㅎㅎ)






시어머니 명희의 답변



神 이 나를 만들 때 더 넣은 것과 덜 넣은 것?


생각 안 해 본 주제다.

사느냐고 바빠서...

나에게 더 넣은 것은 무엇일까?

심오하게 생각해 보았다.

심사숙고해서 얻은 결론은


'배려'


배려인 것 같다.

나 자신을 깊은 곳에 숨겨 두고서 상대방 입장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친정 모친의 가르침이 밑바탕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는

남을 생각하는 배려, 걱정, 우려...


결혼하기 전, 직장 생활에서 일화가 있다.

나는 한 사람의 삶을 조금이나마 책임(?) 져 주었다고나 할까.

神이 많이 넣어준 배려라는 성분 때문에

같은 동료였던 J양을 해고시킨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상사에게 찾아가서 "제가 그만두겠습니다."라고 했던 이야기.

지금 같아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1970년대니까.


그 상사는 나에게 "왜 대신 그만두겠다고 하느냐고"...

그 친구는 소녀 가장이기에 회사가 꼭 필요하다고...

모두가 무사히 다니게 됐지만...

과한 배려심...


석양(?)으로 지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상대방 입장만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神이 과하게 첨가한 성분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에게 해가 될 것 같았던, 해가 됐던 배려들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은 모든 이들이(?) 나를 배려해주고 있다.

손자, 손녀들 까지도......!!!


나에게 덜 넣은 것은 무엇일까?


여성이지만 여성다움이 부족한 것 같다.

여자 여자스러워하고

사랑 사랑스러워야 하는데 그것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살면서 이 시간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배역(?)에 충실하다 보니

여자라는 배역은 조연(?)이었다.

삶을 통틀어 조금 등장하는...

이제는 끝나가고 있는 나의 여자 여자 역할이다.


MYUNG HEE

2021.5月. 17 monday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