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9) '코로나19'

아홉 번째 이야기, 코로나19 관한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

by 채원

며느리 채원의 코로나19에 관한 이야기



지난 2020년 1월 나는 출산 준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코로나19가 터졌다. 서울 한복판 광화문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던 터라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한참 코로나19에 예민하던 3월 말 아기를 출산했다. 분만실에 누워 밤새 진통을 하면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던 게 기억이 난다. 병원 면회도 제한, 조리원은 나와 아기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눈으로만 표정을 읽어야 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코로나19가 아니었어도 꼬물거리는 아이 덕분에 집에만 있어야 하는 시간이었어서 고마웠다. 불안한 마음에 산후도우미를 부르지 않았고, 간호사로 일하는 엄마는 본인이 위험하다며 못 오셨다. 오로지 아이와 남편 셋이 알콩달콩 지지고 볶는 시간들을 보냈다.


아이가 백일이 지나고 사람을 마주 할 수 있을 수 있던 시기부터는 소소하게 친구들이 집으로 놀러 왔다. 오히려 또 다른 돈독한 것들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아이 덕분에 외식을 할 수 없었는데 배달 문화는 또 얼마나 멋지게 발달했는지!


이렇듯 나에게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보다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과 후의 차이가 더 극명하게 다가온다. 원래도 손 닦는 것에 민감한 스타일이었어서 사람들이 각자의 위생을 신경 쓰는 모습은 진짜 좋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멀어졌다고들 많이 말하지만, 지나친 관섭의 표현이 불편했는데 적당한 거리가 생긴 것도 좋았다. 예를 들면 아이가 요즘 걷기를 좋아해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는데, 길을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안으려고 한다거나, 손을 잡고 만지려는 할머니들을 마주치면 놀라서 멋쩍게 웃으며 아이를 얼른 안는다.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그 얼마나 많은 어르신들이...ㅠㅠ 예뻐해 주시는 건 참 고마운 일이지만 거리를 두었으면 좋겠다.


한참 발달을 하고 있는 24개월 이하 아가들에게 마스크는 심장에 부담을 주고, 저산소 허혈증이 나타나는 등의 심각한 위험에 빠트릴 수 있어 국가에서 착용하지 않도록 권고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정말 필요할 때는 잠깐 하고, 되도록이면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한다. 그래도 마주친 누군가는 옆에서 "마스크 채우지.. 마스크 해야 해요, 마스크 왜 안 하지? 아가야 엄마한테 마스크 해달라고 해~"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들. 염려는 고마우나 내 아이 걱정은 엄마가 제일 많이 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오히려 마스크를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마스크를 더 철저하게 쓰고 위생에 신경 쓰면 되는 것 아닌가!!! 말하다보니 푸념이 되어버렸지만 이 또한 자중된 것이라니 고맙게 생각 할 따름이다.


원체 사람 많은 것을 즐기지 못하는 우리 부부는 코로나19 이후에는 더 열심히 사람 없는 곳을 찾아다녔다. 서칭 능력이 좋은 남편 덕에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한적함과 자연을 즐기며 잘 보내고 있는 중이다.


열심히 버티며 지나온 시간들을 즐겁게 기억하려고 합리화를 지나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진 건가.

물론 마스크의 답답함, 피부 트러블, 사람 많은 곳에 대한 거부감, 가족들과도 쉽지 않은 모임, 마음 편히 여행을 못 간다는 것 등은 정말 힘들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처음 보고 인지한 세상의 어른들은 모두 마스크를 끼고 움직인다는 것이 참 마음 아프다.


마스크를 하면 외출을 한다고 인지하고 있는 아이와 마스크를 하지 않고 같이 외출하는 날,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지 않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는 날, 나의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우리 가족 모두 다~ 같이 멋진 가족사진 찍으러 가야지!





시어머니 명희의 코로나19에 관한 이야기


나에게 코로나19로 인하여 변화된 삶의 부분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모든 삶의 과제(?)를 끝내고 휴식기에 접어든 삶을 살고 있다. 남편과 동행하면서...


결혼과 동시에 나는 언제나 늘, 항상, 끊임없이, 줄 곧 나는 없다. 나는 죽었다(?)를 새기며 살았다. 대가족의 맏며느리라서, 나의 사랑하는 남편의 안사람으로서, 사 남매의 엄마로서,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했으므로...


나는 늘 소설을 넘기며 고단한 삶을 잊었고, 처세서를 읽으면서 나의 자리를 확인했고, 역사책을 보면서 과거를 걸었다. (외부활동은 전무후무) 나의 고단했던 삶이 지금 코로나19 시점에서는 커다란 행운(?)이다. 며누리 채원이와 함께 공감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코로나가 가져다준 선물(?)이다.


노후에 나는 채원이로 인하여 행복하다. 긴 세월 위로로 써 내려갔던, 써 내려가야만 했던 나의 글들이 지금 채원이로 인하여 밖으로 표출(?)되고 있다.


안쓰러운 것은 나의 며누리 채원이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2020년 탄생한 나의 손자. 코로나19의 만연으로 인하여 외출을 자제하고 있어서 그것이 할머니로서 blue blue 하다. 나의 손자를 케어하면서 글을 쓰고, 브런치에 기재하는 나의 자부에게 고마움을 피력한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3대가 같이 아름답고 의미 있는 곳으로 떠나가 보고 싶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면서...!!!



2021.6.10. 목

AM 02:25

- 명희 -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