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원 Jul 25. 2021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11) '비'

열한 번째 이야기, 비


며느리 채원의 '비'



 올 해는 장마 전에 비가 자주 내렸다. 이미 장마 아니야?라고 할 정도로 하늘이 구멍 뚫린 듯 비가 오다가도 화창 해지는 게 스콜 같기도 하고 이상 기후라는 말이 자꾸 붙어 다니니 무섭기도 하다. 막상 무더위가 지속되니 금세 더위를 식혀주는 단비가 자주 내렸으면 좋겠다.


감성도 꾸준히 키워 나가야 하는 거라고- 육아로 인해 감성적인 것들로부터 강제 분리(?)가 되어 버리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비'에 대한 감성을 잃었다.


 부추전, 감자전, 두부김치에 막걸리, 엄청 진득진득하게 얼큰한 김치찌개에 소주, 장화보다는 샌들, 장마여도 왠지 긴팔에 반바지, 출퇴근길 축축해서 짜증 나겠다...라는 생각, 비에 관련 노래들로 플레이리스트를 맞추고,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보면서 멍 때리기 -와 같이 비 오는 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있었다.


 지금은 백색소음, 아이 우비 입혀서 나가서 놀아볼까?, 베란다에서 빨래 잘 안 마르겠다, 오늘 비 와서 아이가 칭얼칭얼 짜증이 많은 걸까?라는 생각.. 음.. 이 정도? (하하하)  비 오는 날이 유독 좋거나 싫다기보다는 그날이 주는 분위기가 좋았거나 아니었던 정도. 매장 관리직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날씨에 매출이 좌지우지되니 날씨 자체에 민감하게 살았다. 어떤 매장은 비가 와서 매출이 반으로 줄고, 어떤 매장은 비가 와서 매출이 폭발해서 날씨 탓과 덕을 보았다. 이제는 일과 멀어지니 날씨에 대해 무디다. 비 오는 날에 유독 생각나는 사람도, 떠오르는 장면도, 귓가에 맴도는 음악도 없다.


이제는 그냥 맑은 하늘이 좋다. 파란 하늘에 눈부신 햇살, 하얀 구름. 그냥 그게 딱 좋다. 무더위가 며칠 째 이어져서 현관문을 열면 숨이 턱턱 막히지만 집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예뻐서 기분이 좋다. 육아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 거라는 예상을 안고 집을 구할 때 남편과 가장 고민했던 것은 하늘이 맛깔나게 보이는 뷰였다. 그렇게 우리 집이 된 우리 집은 높은 건물이 가리는 시야 없이 뻥- 뚫린 베란다가 있어서 참 좋다. 그렇게 오늘도 아이와 파란 하늘 구경을 했다.


감정 팔이가 될 줄 알았던 주제에 막상 열어보니 아무런 인연이 없다. 그냥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남편이랑 둘이 노포에서 쏘주 마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 오는  사진도 없다. 주제에 대해 고민을  해야겠다. 하하하…)





시어머니 명희의 '비'



비 RAIN

좋아했던 단어다.

내가 살아왔던 세월 위에 걸터앉아 비에 관한 것들을 조명해 볼까 한다.

소녀 시절 언제였던가...

비만 오면 비를 맞으며 걷던 뭐 그다지 삶이 슬프다고 고뇌하면서...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걸었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그때다.

나는 비 사이로 가야 해 하면서... ㅋㅋㅋ


나의 집은 농사를 하는 집안이라서 비만 오면 많이도 바빴다.

농작물을 거둬드려야 하고 논에 가서 수로를 점검해야 하고.

가을 철에 비는 많이도 힘들게 했다.

벼를 논두렁에다 올려야 하고, 콩을 거둬드려야 하고, 고추를 따야 하고...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야 하기에 비만 오면 참 싫었다.

그 시절 그다지 하기가 싫은지

나는 농사 안 하는 집안으로 시집간다면서...

부모님 한테 화냈던 그때...

생각해 보면 아름다운 그때 그 시절인 것을...

부모님의 그 힘든 농사일로 인하여 지금 내가 존재하는데 그때는 참 많이도 철없는 딸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비라는 단어는 아이들에게 강인함을 만들어 주는 단어로 사용(?)했다.

비가 많이 와도 학교로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았던 나였다.

우리 아이들은 그래서인지 모두 강인하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재밌는 희극(?) 드라마 같다.

울고 있어도 웃는, 웃고 있어도 우는...

그래서 비를 좋아한 것 같다. 비로 나를 숨기려고... ㅋㅋㅋ


지금은 비를 좋아하지 않는다.

살아가야 하는 날이 살았던 날들보다 짧기에 따사로운 태양을 많이 좋아한다.

나의 인연들과 행복을 같이 하려면 비는 불청객이기에...

채원이와 같은 주제에 글을 쓰고 있는 것, 나름대로 시어머니와 며누리의 벽을 허무는 Perestroika(?) 인 것이라고 자부해 보면서...


7月15

A.M 6시 6分

-明熙-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이전 10화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10) '내 인생이라는 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