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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원 Oct 31. 2021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18) '산책에 대하여'

열여덟 번째, 산책


시어머니 명희의 '산책'


 산책 (명사)

 ① 가벼운 마음으로 이리저리 거닒

 ② 지팡이를 짚고 산보하며 다님

 ③ 휴식을 취하거나 천천히 걷는 일


 <새우리말 큰사전>에서 찾은 산책이란 낱말의 정의다.


산책이란 말을 자세히 생각해보니 나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고급진 단어로 다가왔다. 살면서 살아오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이리저리 거닐어 본적이 과연 있을까?... 사느냐고 바빠서 나의 삶에 많은 업무(?)를 처리하느냐고 참 많이도 뛰어다닌(?) 기억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휴식을 취할 만큼 육체적, 정신적 여유가 내 앞에 놓이지 않은 삶이었기에...


그런데

노년에 접어든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여유롭게 걷고 있다. 가까이에 있는 둘레길도 걷고,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근린공원도 거니는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찾아왔다. 감사하게도...


공원을 걸으면서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며 "낙엽이 지네. 나도 저무네" 하며 큰 손자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할머니 할머니 삶은 이제 시작이에요" 하며 보낸 답글을 보면서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져서 걷기도 하고...


낙엽 지는 것을 보고 '시작'이라고 따뜻하게 전하는 손자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마음에 휴식을 취하면서 천천히 걷고 있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산보하며 다닌다는 의미에 공감하면서... 의학적인 산책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세월 사용했던 몸은 제 기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혈압도 상승하고.


지팡이를 짚고 산보하지 않으려면 걷기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매일매일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다. 지금의 나의 산책에 의미는 스스로 몸을 보호하는 걷기다. 작고 하신 시어머님의 명언(?)을 생각하면서...


"자기 팔, 자기 다리만 흔들고 다니면 되는 거란다."


그때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었는데 노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니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이셨다. 나도 타계하는 그날까지 내 팔을 흔들며 내 다리로 걷기 위하여 오늘도 다장르로 산책을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리저리 거닐고 있다. ㅎㅎㅎ


2021 10月 28 木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며느리 채원의 '산책'



 사실 나는 자타공인 집순이었다. 지금도 상황만 된다면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24시간을 잘 수도 있다. 나는 잠과 집에서의 충분한 쉼이(항상 충분 그 이상이었지만) 일상의 에너지를 채워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남편과 같이 살게 되면서 조금 달라졌다.


남편은 산책으로 에너지를 채우는 사람이다. 한 번은 나를 따라서 하루 종일 집에서 머물러 있다가 오후에는 한층 더 피곤해진 얼굴로 쳐져있었다. 결국 내가 "한강으로 산책 갈까?"라고 말하자 안 보이는 꼬리를 마구 흔들며 냉큼 나왔다. 그제야 남편의 얼굴이 뽀송해졌다. 그 이후로 움직이고 싶지 않은 주말에도 한 번은 꼭 남편을 따라 나왔다. 우리끼리만 아는 깍짓손 잡고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재밌었다. 그렇게 남편과의 삶의 부분이 맞춰져 가는 게 좋았다.


아이를 낳고 한참을 밖에 못 나갔다. 아이도 어리고 나의 몸도 몸이지만 코시국 초창기라 움직 일 수가 없었다. 칠십여 일 만에 집 밖을 제대로 나갔었는데 초 여름의 공기도, 한 겨울 찬 공기가 콧구멍 깊숙이 들어가는 게 하나하나 느껴지듯이 마스크를 뚫고 쏵~ 닿았다. 아 나도 참 바깥공기를 좋아했구나?

 

지금은 걷고, 뛰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19개월 아들 덕분에 매일 산책을 한다. 유모차를 곱게 타 준 날은 나와 남편도 여유롭게 이리저리 고개도 돌려보고, 조잘조잘 수다 떨며 걷는다. 아이가 현관에서부터 본인이 꼭 걸어 나가야 한다고 하는 날은 아이의 뒤통수와 손만 계속 쫓기는 하지만 "하늘 좀 봐! 우아~" 하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라서 같이 감탄하며 옹알이로 대화할 수 있어 참 좋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 여행을 가면 정말 많이도 걸어 다녔다. 남편은 프로산책러답게 이른 아침 혼자 일어나 숙소 주변 산책을 한번 하고, 내가 일어나면 먼저 산책하면서 봐 둔 카페로 데리고 가고는 했다. 골목골목 걸어 다니고,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는 그냥 걷고, 길이 예뻐서 걷고, 햇살과 바람이 행복해서 걸었었다.


아이와도 그렇게 걷고 싶다. 잘 닦인 길보다 흙 길, 짚 길, 바위 계단 들을 더 재밌게 걷는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하나 둘 셋 쩜프! 하면 이겨낼 수 없는 게 없단다 라고 말하며 함께하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매일 같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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