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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원 Jul 20. 2022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32) ‘길’

서른두 번째 이야기, 좋아하는 것들 이야기 ‘길’


시어머니 명희의 '길' 이야기



글쎄다.

어떠한 ‘길’을 적어 내려가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주제다. 영어에서는 어떤 뉘앙스의 길을 말하는 것인지에 따라서 Way, Road, Path, Street 등 많은 다양한 길의 단어가 있다.

나의 ‘길’의 의미는 지나온 ‘인생의 길’을 생각해 보았다. (my way)


‘길’하면 작고하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오빠가 위로 한분 계시고 딸로 태어난 나는 성장해가면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자랐다. 인품이 좋으시고 생각이 깊으셨던 아버지시다.

“딸로 태어난 명희는 잠시 엄마, 아버지 밑에서 머물다 가는 거라고, 결혼과 동시에 너의 삶의 길이 펼쳐지는 거다.”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좋은 삶의 길이든 어려운 인생길이든 진정한 너의 인생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었다.


나는 사내 커플이다.

연애를 하면 집안 망신이라 하던 시대에 집안 반대를 뿌리치고 기어이 버진로드 Virgin Road 걸어 들어갔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기에 정성과 인내와   있는 것은  갖춘 자세로, 나침판도, 지도도, 내비게이션도 없는 삶의 길을 걸었다. 반대가 심하셨던 오라버니(작고) 눈물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말도   없었던, 인내로 물들여야 하는 삶이 나를 따랐다.

14살이나 많으신 오빠의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만들어드리기 위하여 나는 나의 인생길을, 나의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철저하게 걸어갔다.


시골길(?)이었을 때는 달구지를 타고,

비포장(?) 길 일 때는 먼지를 마시면서,

신호등이 있는 길에서는 신호를 지키면서,

아우토반(?) 일 때는 최고의 속력으로 삶을 길을 헤쳐나갔다.

이제는 모든 길들을 지나서 편안한 길로 신호를 지키면서, 순리에 맡기면서, 삶의 노년의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나 Myung hee 다.


“고맙습니다!

오빠의 눈물이 저의 삶에 훌륭한 나침판이었습니다.”


2022. 6월 27일 mon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며느리 채원의 '길' 이야기



사실 '길'이라는 주제는 5월 두 번째 주제였다. 5월에도, 6월에도 글 하나를 올리게 되면서 밀리고 밀려 두 달이 넘어서야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늦은 글들에 대한 핑계를 조금 하자면- 임신한 몸으로, 일을 하면서, 27개월 된 아이를 돌보는 일이 보통이 아니란 걸 체감하면서- 잠들기 전 혼자 즐기던 한두 시간을 잃은 채 픽픽 쓰러져 잠이 들어 버리니 글쓰기가 쉽지 않다. 헤헤

 

 두 달 남짓 '길'이라는 주제를 머릿속에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을 하다 보니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버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정말 '길', 내가 걷기 좋아하던 길, 잊히지 않는 여행지에서의 길 등을 생각하다 요즘 나에게 자주 들려오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결혼을 꼭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것도 돈이 있어야 하겠죠?"

 "저는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아요... 결혼을 하면 아이를 꼭 낳아야 할까요?"

 "자연 분만했어요?"

 "산후 우울증이 너무 걱정돼요."


 내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도 내 주변에서는 조금 빠른 편이 되어 이런 질문들이 자주 들렸다. 일을 복직하면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이십 대가 많다 보니 결혼, 출산에 관해 막연하니 유일한 유부녀이자 엄마인 나에게 자주 질문을 했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삶의 변화, 특히 생활 패턴과 가치관의 변화가 가장 많이 변하는 시간이 삼십대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 결심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의 시간)


 인생이라는 건 사소한 선택의 연속으로 만들어진다지만, 결혼과 출산에 있어서 만큼은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질문의 농도에 따라 나의 대답들도 너스레에서 진지한 이야기까지 다양하지만 "결정은 본인이 하는 거예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을 너무 고치려고 노력하지 말아요."라고 말한다.

 

 굳이 '결혼'이라는 행정 틀에 갇히지 않아도 평생 반려할 수 있는 사람, 동식물들을 만날 수 있고, 내가 '낳는 아이'를 통해서만 사랑과 희생을 배우는 것만은 아니다. 그 어떠한 선택에 있어서 '돈'이 벽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선택지의 의미는 없다.


 다만 결혼과 출산, 육아를 거친 부모님들의 이야기와 나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영화 <About time>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스포 주의)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 '톰'이 동생을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딸이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으로 다녀온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과거의 무언가가 바뀌면 현실의 어떠한 것도 바뀌게 되는 이치에 따라 딸은 아들로 변해있었다. 좌절한 톰은 다시 과거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톰'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었다. 나의 아이는 오로지 특별한 내 아이 하나라는 사실은 낳아봐야 안다. 내 평생 이 아이의 부모로 사는 길을 걷겠다는 다짐과 의지는 낳아봐야만 안다.


길은 걸어봐야만 안다. 허리를 구부리지 않아도 적절히 나무가 살랑이는 길인지, 돌이 많지 않아 걷기 편한 길인지, 기분 좋은 향이 가득한 꽃밭인지- 걸어봐야 안다. 글과 사진으로 간접 경험하는 길도 재밌지만 내가 걸으며 꽃도 심고, 나무도 심고, 잠시 앉아 쉬고 갈 수 있는 의자도 하나 만들며 가는 길이 더 값지다는 걸 경험해 본 사람들만 알 것이다. (적어도 결혼과 육아의 길에서 만큼은)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god-길>


오늘도 나는 피곤함은 가득 묻었지만 피식 웃는 행복이 넘치는 길을 걷고 있다. 어디를 걸어도 함께 걸을 수 있는 온전한 내 편이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꼭 잡은 손을 눈으로 한번 더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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