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번째 이야기,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내 마음의 이야기
나는 마음이 고아(?)가 된 심정이다. 임인년 8月 나의 버팀목이셨던 오빠의 부인이신 언니께서 타계하셨다. 산수(80세)를 넘기셨지만 내가 많이도 의지 했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슬픈 감정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다.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면서...
내가 국민학교 때 새언니를 맞이했다. 깔끔하시고 예의 바르시고 생활의 지혜를 많이 알려주신 분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깨끗이 씻어야 하고, 빨래는 뒤집어서 널어야 하고 탈색되니까... 마당을 쓸을 때는 빗자루 끝에 힘을 빼야 하고. 어린 내가 무서워서 치과에 못 갈 때 보호자로 동행해 주시고, 우리 가문에 오셔서 수고하신 어르신!
보편적이면서 특별한 시누이와 올케라는 관계를 넘어서 지나 온 삶을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한'도 이야기하면서 노후를 서로 위로했었는데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쓸쓸하고, 허전하고, 아프고, 심장이 구멍 난 것 같다.
인생이란,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인가? 많이도 어려운 문제(?)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이야기. 나의 이야기다.
나는 3녀 1남을 모두 떠나보냈다.(?)
첫째 딸아이가 결혼해서 주민등록을 옮겨 갈 때 슬펐다. 둘째 딸은 결혼식도 하기 전에 주민등록을 옮겨가서 더 슬펐다. 주민등록상 아버지, 엄마 밑에 있던 나의 소중한 아이들의 이름들이 지워질 때에 심정은 왜 그리 눈물이 났었는지...
나 또한 부모님 곁을 떠나 남편 곁으로 왔는데...
셋째 딸이 "엄마 나 옮겼어, 주민등록" 그때도 슬피 울었다. 이제 다 가는구나(?) 하면서...
마지막으로 아들이 우리의 주민등록 등본에서 삭제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왠지 마음이 초라해졌다. 허전했다. 심장이 구멍 난 것 같았다.
주민등록등본에 두 부부만 남은 것을 확인하면서 눈물 흘렸던 기억. 서류상으로 떠나보내는 것도 많이 슬펐다. 나이 많은 우리 부부는 소풍(?) 갈 날 만 고대하고 있는 그런 심정이었다. ^^
떠나보내는 것(?)들은 모두, 가을, 가을 하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를 읊조려본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떠나보내는 마음은 나그네 같은 심정이다.
9月 25. sun
‘떠나보낸다.’라는 말의 의미가 조금 무거워진 건 최근 들어서 이다. 삼십 대 중반이 넘으면서 지인들의 결혼 소식과 생명의 탄생의 소식 못지않게 들리는 것이 부고이다.
얼마 전 한 살 아래 후배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본인상’이라는 단어가 마냥 어색해서 오타로 까지 보였다. 여름휴가를 떠났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살갑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기간 학교를 다녔고 흐릿하게 한 장 정도의 추억은 있는 사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김상욱 물리학자가 <유 퀴즈 온더블럭>에서 ‘죽음’ 관해 한 말이 생각났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각해요. 기이한 현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물리학자의 눈으로 이 우주를 보면 이 우주에는 죽음이 자연스러운 거예요. 산다는 것, 생명이 더 이상한 거예요. 지구의 돌과 땅과 바닷물 다 죽어있어요. 사실 지구 바깥에서 생명체를 본 적이 없어요. 즉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고, 죽음이 오히려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고 했으니까(양자역학 이야기), 원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죽은 상태로 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이유는 모르지만 모여서 이렇게 살아있는 상태가 돼요. 생명이라는 정말 이상한 상태로 잠깐 머물다가 죽음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내가 살아있다는 이 찰나의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게 돼요.
...
원자는 영원불멸해요. 지금 모여서 내 몸을 이루고 있지만 죽으면 다시 뿔뿔이 흩어져서 나무가 될 수도 있고, 가벼운 원자는 지구를 떠날 수도 있어요. 다른 별에 가서 별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우린 원자의 형태로 영생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원자 형태로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위안을 주더라고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자연스러운 흐름 가운데 ‘삶’이라는 짧으면서도 긴 시간들이 그 자연스러움에 미련과 욕심,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한 인간의 감정 또한 찰나를 살아내는데 자연스러운 감정들이겠지. 그 감정은 떠나는 이의 마지막 숨일까, 남은 이들이 만들어낸 흔적일까.
조현철 배우가 백상 예술 대상 수상 소감에서 아버지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며 남긴 말이 가슴에 남는다.
“아빠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 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
<너와 나>를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김상욱 박사님도 진짜 죽음 앞에서, 내 앞에서 존재가 사라진 상황에서 양자역학 이야기가 사실 위안이 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과학자로서 의미를 찾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찾은 거라고 했다. 나는 '존재 양식의 변화'라 생각해야겠다.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여 곁에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계절마다 다 다르게 볼 끝을 스치는 그 바람들로 내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길쭉하게 예쁜, 말라서 보드랍지는 않았던 할머니의 손이 생각난다. "우리 예쁜 채원이"라고 수줍게 웃으며 말하던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지는 밤이다. 올해는 조금 천천히 찾아온 가을바람이 우리 할머니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