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번째, 공백 기간 그리고 요즘 나를 지배하는 생각들
‘공백’
어머니께 주제를 전달하고 혼자 곱씹으며 생각해 보았다. 공백이란 단어의 아이러니, 글쓰기의 공백을 제외하면 내 삶은 가득 채움인데 말이다.
한 겨울에 태어난 둘째 아이 ‘래나’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했고, 까치발을 들어 식탁의 물건을 집던 첫째 아이 ‘래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쉽게 그 위를 눈으로 훑는다.
쉽지 않을 거라 각오하고 다짐했던 ‘두 아이를 키우기’는 우리 부부의 나름 세밀한 노력으로 이제 서로를 잘 받아들였고 조화롭게 지내고 있다.
래하에게는 자연스러운 질투 이외에 엄마와 아빠를 빼앗겼다고 느끼지 않게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집중해 주었다. 역시 애바애라고 조금 까다로웠던 래하와 달리 둘째 아이는 잘 먹고, 잘 자는 스타일이라 래하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넉넉히 선물해 주었고 덕분에 래하에게 래나는 사랑스러운 동생이 되었다.
래하는 둘째를 낳을 시기부터 현재까지 약 반년 동안 언어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어느 날은 방문을 열고 먼저 잠든 래나에게 다가가길래 ”래하야 나와서 엄마랑 놀자, 나와~“라고 하니
“인사를 못 했어!”
“응?”
“잘 자, 래나야. 우리는 가족이야~”
라고 귀에 속삭여 주었다. 래하의 언어에 놀랐고, 래하의 사랑에 놀랐다.
보통은 우악스러울 수 있다는 남자아이인 래하가 래나와 함께 하려는 모습은 참 감동일 때가 많다.
엄마, 아빠의 걱정을 뛰어넘어 아이들은 스스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어 감탄을 자주 하는 요즘이다.
래나가 성장함에 따라 남매의 격동기는 매 순간 오겠지만, 느낌 좋은 처음처럼 우리는 잘해나갈 것 같다.
내가, 우리의 선택으로 세상을 만나게 된 아이들에게 ‘아름답게 이 곳을 받아들이고, 단단하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다.
그냥 흐르는 대로 받아들인 많은 것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공부해 나눠줘야지. 언젠가 나이가 들어 남편과 마주 앉아 “우리 아이들에게 꽤 괜찮은 어른이었지?”라고 말할 수 있게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어봐야겠다.
요즘은 그렇게 어른이 되기 위해 내가 비워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에 대한 고민을 하며 지내고 있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머릿속에 맴도는 것들이 조화롭게 나오지가 않는다. 글쓰기 또한 열심히 다시 채워나가야겠다. 이제 다시 부지런히 만나봐요, 시어머니 명희님과의 생각 교환일기 :)
이 주제를 받고서 나는 행복했다. (글쓰기 공백이지만)
과연 나의 삶에 공백이란 단어가 차지할 만큼의 여유가 있었는지 자문해 보았다.
문득 ’ 장기하‘의 멋진 노래가… 공백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별일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 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도 없다.
작고하신 엄마의 말씀처럼 ‘죽음’이 아니라면 다 별일 아니라고 하신 말씀. 그 의미를 이제야 나는 깨달았음을…
주제의 답을 나열해 보아야겠다.
공백의 기간 동안 뭘 했는지?
나는 꾸준히 남편을 케어하며 지냈다. 나의 손자, 손녀들도 보살피면서 지내고.
언제나처럼 공연도 보고, 미술관도 가고, 음악회도 가고, 보건소에서 ‘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하고…
하루하루 현금보다 빳빳한(?) 지금을 아름답게 쓰고 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이렇다 할 고민 없이 시간 부자가 되어있다.
그 시간을 잘 사용하려고, 남은 삶을 잘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여유로웠던 시절이 없었기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어설프지만 연구의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
어제는 하얀 연꽃이 떨어져서 지은 절이라는 ‘백련사’를 찾았다. -강화 고려산에 위치한- 연애시절 엄마 몰래 갔었던 무주구천동 ‘백련사‘ 그 이름이 같아서 집에서 가까운 강화 ‘백련사’를 바라보면서 지나간 옛 추억을 살포시 꺼내어 내 마음속에 진열해 보았다.
우리를 이어준 ‘백련사’ 아름다웠다!!!
요즈음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well-living 건강한 삶
well-aging 활기 찬 노후
well-dying 아름다운 마무리
이다.
그중에서도 어떻게 well-dying을 할까 연구 중이다.
‘케이틀린 도티‘의 글처럼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ㅋㅋ
나는 노후에 한가히 별일 없이(?) 살면서 그 어떠한 것도 부럽지 않은 나의 인생길을 가고 있다.
노후에 남편도 있고, 손자 손녀도 있고, 채원이랑 브런치에 글도 쓰고…
‘장기하’ 노랫말처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도 괜찮어 한 개도 부럽지 않어…
시어머니, 며느리 브런치에서 coffee date를 하기에 …
P.S :
글을 재개하는 자부에게 경의를 표한다.
(예쁜 손녀를 안겨주고서)…
김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