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터지는 오늘 하루, 내일은 소통 한방001
"에잇, 정말 김대리하고는 무슨 일을 도모할 수가 없어. 도대체가 말이 통해야지."
점심식사를 마치고 들어오시며 이팀장님이 투덜투덜 하시네요.
"내가 무슨 거창한 정치얘기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소소한 아이들 학원얘기, 공부얘기, 신문에 나오는 사건사고 얘기 하는 것 뿐인데, 말하는 족족 딴지를 걸고 생각이 다르다고 하니... 이건 나하고 한판 해보자는 거지!!"
주위사람들, 특히 가족이나 직장의 구성원 중에 유독 생각이나 성격, 취향이 완전 다른 사람이 있다면, 매일 얼굴 마주하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나가던 정이사님이 한마디 하시네요.
"이팀장,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김대리가 자네와 너무 달라서 불편할 때도 많겠지만, 가끔 자네가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놓친 부분을 김대리가 챙겨주기도 하지 않는가?"
아주 많은 분야에 통하는 원칙입니다. 다양한 것은 무조건 유리합니다.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가 매우 많습니다.
바나나이야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바나나는 세계 5대 식량작물중 하나로서, 사람들은 1950년대까지 '그로미셀'이라는 하나의 품종만을 위주로 재배하였습니다. 당도가 높고 맛도 좋아서 잘 팔렸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잘 안팔리는 맛없는 품종을 재배할 이유가 없었겠죠.
그런데 이 '그로미셀' 품종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곰팡이가 바나나 토마토 담배 등에 일으키는 '파나마병'에 너무 취약했습니다. 급기야 1960년대에 파나마병이 유행하면서 그로미셀 바나나는 멸종해 버렸습니다. 그 이후 파나마병에 강한 '캐번디시' 품종의 바나나가 새로운 강자로 등극하게 되고 바나나시장을 석권합니다.
이렇게 마무리되었다면 역경을 극복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불행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대만에서 파나마병의 변종인 '신파나마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캐번디시 품종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하였습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곰팡이에 강한 유전자를 조합하여 실험을 거듭하고 있으나, 다른 과학자들은 품종을 다양하게 재배하는 것만이 근본대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서울시립과학관의 이정모관장님도 "종의 다양성이 사라진 결과 바나나의 멸종위기를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질병이든, 적군이든, 환경이든 언제나 새로운 변수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미래를 확실히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불확실하고 변화무쌍한 변수에 잘 대처하려면 대비책도 다양해야 합니다. 남편이 대출을 확 땡겨서 아파트를 사자고 주장할 때, 부인이 가정의 경제상황과 부동산시장 등을 고려하며 치열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어야 큰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어휴, 이 사람은 한겨울에도 덥다고 창문열고 자요, 같은 방에 잘 수가 없어요."
가끔 진료실에서 부부끼리 싸우는 분들이 계십니다. 폐경기를 지나 갱년기를 맞은 부인은 온몸에 열이 펄펄나서 어쩔 줄을 모르시고, 남편분은 원래부터 수족냉증에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 경우입니다. 잘 지내던 부부가 갱년기를 맞으며 서로 몸상태가 안맞게 되어도 힘든데, 하물며 처음부터 체질상 열이 많고 성격급한 다혈질인 분이, 몸이 냉하고 침착하며 사려깊은 체질의 배우자를 만나면 하루하루가 전쟁통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 두분이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재미있는 실험이 있는데요, 무더운 여름날 건장한 남성들을 한참 뛰게한 뒤 땀에 흠뻑 젖은 런닝셔츠를 지퍼백에 담아, 격리된 여성들에게 땀냄새를 맡게 한 것입니다. 언뜻 엽기적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여성마다 취향은 다르지만, 땀에 찌들은 그 셔츠중 몇개에서 희한하게도 호감을 느끼니까요.
이번에는 말끔하게 단장한 뒤 그 남성과 그 여성들이 소개팅을 하도록 했는데요, 이후 호감도 조사를 해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옵니다. 외모와 대화등을 종합해서 여성들이 호감을 느낀 바로 그 사람이, 아까 셔츠 땀냄새가 웬지 끌렸던 남성과 일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죠. 더욱 놀라운 것은 땀냄새가 끌린 남성의 유전자를 그 여성의 유전자와 비교해보니 거의 정반대 타입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오랜세월 거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생명체는 자기와 다른 것이 좋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무의식적으로 '호감'을 느낄 정도까지 프로그래밍되어 왔습니다. 대단히 이기적인 생존본능입니다. 나와 달라야만 나의 결점을 보완하며 생존확률이 높아지고, 나아가 그 두사람의 유전자를 겸비한 자손은 부모에 비해 한층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답이 나왔습니다. 사사건건 이팀장의 말에 딴지를 거는 김대리가 있으니 이 부서가 드림팀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조직에는 소심한듯 꼼꼼하고 일처리가 확실한 사람, 강력한 추진력으로 들이대는 사람, 은근과 끈기로 지긋하게 밀어붙이는 사람, 전체를 조망하며 냉정하게 판단하는 사람이 모두 필요합니다.
"김대리, 아까 우리아이 영어학원에 대해 좋은 의견 말해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미쳐 그런 부분은 생각을 못해봤거든. 그런데 내 의견도 와이프와 일주일 넘게 고민한 결과였으니 다음부터는 조금만 살살 말해주면 더~ 고맙겠어. 허허허"
감사합니다.
이수역 사당동 경희은한의원
호르몬닥터 권영구 올림